은행장 만나 12차례 '소비자' 언급···내부통제 강화 당부 가계부채 관리부터 생산적 금융·혁신까지··· 6대 과제 제시인센티브 제도화·중복 제재 완화 등 은행권 건의 이어져
(앞 줄 왼쪽 네 번째)이찬진 금융감독원장과 (앞 줄 오른쪽 세 번째)조용병 은행연합회장을 비롯한 내빈들이 28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은행장 간담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강민석 기자 kms@newsway.co.kr
이 원장은 28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은행장 간담회를 열고 20개 국내은행 은행장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는 이 원장을 비롯해 박충현 은행부문 부원장보, 김형원 은행감독국장이 참석했고, 은행권에서는 조용병 은행연합회장과 시중은행·지방은행·특수은행·인터넷은행 등 20개 은행장이 자리를 함께했다.
이번 간담회는 은행권의 당면 현안과 은행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논의하고 은행권의 건의사항을 청취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소비자'를 수 차례 강조한 이 원장은 금융사고와 불완전판매 재발을 막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날 일정은 사진촬영과 이 원장의 모두발언 이후 비공개로 진행됐다. 이 원장과 은행장들은 생산적 금융 공급 활성화와 가계부채의 안정적인 관리,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 금융지원 활성화에 대해 폭넓게 의견을 교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원장은 모두발언에서 "금융소비자 보호를 대폭 강화하고 금융범죄에는 엄정 대응하겠다"며 감독 기조를 분명히 했다. ELS 불완전판매 사태 등 더 이상 대규모 권익침해는 없어야 한다는 게 이 원장의 생각이다. 이는 취임 초반부터 금융권에 대한 제재와 검사를 강화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금감원은 책무구조도 점검과 고난도 상품 판매관행 개선, 전담 TF 운영으로 선제적 감독체계를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내부통제는 비용 아닌 신뢰 위한 투자"
이 원장은 "은행은 국민이 재산을 맡기는 금고이고, 금고의 자물쇠가 깨지면 돈을 맡기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며 "단지 비용절감을 위해 허술한 자물쇠가 달린 금고를 사용한다면 국민의 믿음을 저버리는 결과가 초래될 뿐"이라고 비판했다. 금융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사고 개연성이 높은 업무를 중심으로 근본적인 내부통제 강화가 필요하다는 말도 곁들였다.
권한관리 고도화와 자금인출 단계별 검증 등을 주문한 이 원장은 "내부통제는 비용이 아니라 신뢰를 위한 투자"라고 강조했다. 또한 담보·보증 위주의 손쉬운 영업 관행을 비판하면서 인공지능(AI)·신산업 등 미래 성장 토대로 자금이 흘러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앞으로 금감원은 건전성 규제 개선과 모험자본 공급 활성화를 통해 생산적 금융을 적극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이날 이 원장은 코로나19 피해 차주의 만기연장 종료를 앞두고 상환부담이 늘지 않도록 관리할 것도 당부했다. 가계부채 역시 '금융안정의 핵심 리스크'로 규정하며 상환능력 기반 심사와 6·27 대책 준수도 강조했다. 이는 가계·부동산 중심 포트폴리오에서 기업·혁신대출로 무게중심을 옮기라는 압박으로 해석된다.
은행장들은 '소비자 보호'에 대해 공감하면서도 세금·규제·제재가 겹친 현실을 호소하며 제도 개선을 요청했다. 소비자 신뢰 확보와 혁신 자금공급 확대를 위해서는 금융당국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날 조용병 은행연합회장은 "국내외 경제 여건이 엄중한 상황에서 은행산업이 국가 경제 대전환에 기여해야 한다"며 "그간 경제의 혈맥이자 방파제로서 생산적 자금공급과 소비자 보호에 힘써온 은행권은 앞으로도 변화와 혁신을 통해 국가 경제 도약을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은행장들도 고객 입장에서 금융소비자 보호를 대폭 강화하고 내부통제 체계를 고도화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와 더불어 신성장 산업에 대한 자금공급을 통해 소비자 보호와 산업 지원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수행하겠다는 뜻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장들, 자본 규제 완화 및 정책자금 활성화 건의
특히 이날 은행장들은 현실적 부담을 덜어줄 감독 차원의 지원도 요청했다. 은행 건전성 규제 개선 TF에서 논의 중인 자본 규제 완화와 정책자금 활성화를 거론한 은행장들은 중개기능이 위축되지 않도록 제도적 여유를 달라고 건의했다.
상생금융을 충실히 이행한 금융회사에는 실적에 걸맞은 인센티브를 부여해야 한다는 요청도 있었다. 상생금융 실천이 단순한 의무에 그칠 경우 현장의 피로감만 커질 수 있어서다. 사회적 요구에 따른 금융지원이 가능하려면 일정 수준의 동기부여 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특히 금융소비자보호법 위반 시 과징금과 과태료가 동시에 부과되는 중복 제재는 은행권의 대표적인 우려사항으로 지적됐다. 은행장들은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는 방향성에 동의하면서도 제재가 과도하게 중첩될 경우 금융사의 리스크 관리 역량과 자본 운용에 부담이 가중된다고 호소했다.
이 원장이 '소비자 보호'를 거듭 강조하면서 은행장들의 고심은 한층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세금·규제·제재로 수익성과 자본을 방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소비자 보호 장치까지 강화해야하는 숙제를 떠안게 돼서다.
앞으로 상품 판매부터 내부통제, 가계부채 관리 등 은행의 모든 경영활동은 앞으로 소비자 관점에서 평가될 가능성이 높다. 소비자 보호 중심의 감독 강화가 은행의 비용 부담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금융권 관계자는 "소비자 보호 강화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지만 세금·규제·제재가 동시에 누적되면서 은행권의 자본 여력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며 "은행들은 신뢰 회복을 위한 투자를 늘려야 하는 상황이지만 당장의 수익성 훼손이 불가피하다는 점이 부담"이라고 말했다.

뉴스웨이 박경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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