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도 등 글로벌 광폭 행보···직접 투자보다는 '동맹' 발판모험보단 '안정' 초점···역대급 조선업 호황에도 냉철한 판단 요구"위기와 심각성 간과 말라"···'장기적인 경쟁력' 경영 원칙 재확인
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HD현대의 조선 중간 지주사 HD한국조선해양은 최근 인도 최대 국영 조선소인 코친조선소(Cochin Shipyard Limited, CSL)와 '조선 분야 장기 협력을 위한 포괄적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정기선 수석부회장도 '인도' 주목···연평균 60% 성장세
국내 조선업계가 인도 현지 조선소와 협력에 나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HD현대는 인도 시장의 성장성에 주목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켄 리서치에 따르면 2022년 약 9000만 달러(약 1200억원) 규모였던 인도 선박 건조·수리 시장은 2024년 기준 11억2000만 달러(약 1조5000억원)로 12배 이상 성장했다. 2033년까지도 연평균 60% 이상의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도 최근 링크드인 계정을 통해 "중국의 인구는 2020년대 정점을 찍고 감소세에 접어들지만, 인도는 성장세를 이어가 2062년 정점을 찍을 것"이라는 내용의 인구 예측 시뮬레이션 동영상을 공유하면서 높은 성장 가능성을 시사했다.
현재 세계 조선 시장 점유율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인도는 정부 주도 하에 조선업 역량을 2030년 세계 10위, 2047년엔 세계 5위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야심찬 로드맵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인도가 점찍은 파트너는 한국이다. 앞서 지난해 12월 인도 항만해운수로부 알 락슈마난 차관보, 인도 최대 국영 조선사 코친조선소의 마두 나이르 CEO, 인도 최대 국영 선사 인도해운공사(SCI)의 비네시 쿠마르 티아기 CEO 등 인도 조선업 대표단이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를 방문해 '러브콜'을 보낸 바 있다.
HD현대 관계자는 "이번 협력은 HD현대와 코친조선소 모두에게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자, 인도의 해양산업 국가 비전 실현을 앞당기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코친조선소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지원하는 동시에 국내 기자재 업체와의 동반성장을 모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HD현대, 일관된 '위기의식'···리스크 줄인 '냉철한 판단'
당초 업계에서는 HD현대의 인도 직접 진출설까지 제기됐다. 실제 인도 현지 매체에선 "한국의 HD현대중공업이 인도에 조선소 건설을 위해 부지와 협력사를 물색 중"이라고 보도가 나온 바 있다. 남부 타밀나두주(州)와 안드라프라데시주, 마하라슈트라주 등 구체적인 후보지까지 거론됐다.
하지만 이번 인도 시장 진출에서도 이전 미국 사례와 마찬가지로 협력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하기로 한 모이다. 경쟁사인 한화그룹과 달리 공격적인 투자에 대해서는 장고를 거듭하며 '동맹'을 통한 현지 진출을 모색하겠다는 방침이다. 모험보다는 안정에 초점을 맞춰 인적·기술 교류 내지 협업 수준의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행보는 "눈앞의 실적에 자만하지 말라"는 HD현대그룹 수뇌부의 발언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당장 눈앞에 기회를 잡기보다는 장기적으로 불확실성을 줄이려는 움직임이다.
권오갑 HD현대그룹 회장은 이달 초 주요 계열사 사장단을 소집해 "우리가 눈앞의 실적에만 편승해 위기의 심각성을 간과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며 "외부 변수에 흔들려 너무 조급해 말고 법과 원칙에 따라 경영에 임해야 한다. 가장 냉정하고 현실적으로 판단해 소신을 갖고 자신 있게 행동해달라"고 강조했다.
위기와 불확실성을 일관되게 강조하는 HD현대의 기조는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특히 올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직접적인 '러브콜'을 받은 상황에서도 HD현대는 "미국과의 관계는 불확실성이 많다"며 줄곧 보수적인 입장을 고수해왔다.
시장에서는 HD현대의 또 다른 사업 축인 건설기계와 정유 사업이 장기 침체의 골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믿을 구석'인 조선 사업마저 무너지면 안 된다는 위기의식을 깔린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조선업 실적 고공행진이 자칫 자만과 모험으로 이어질 우려를 미연에 방지한 것으로 풀이된다. 권 회장이 "지금의 인적·물적 자원으로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냉정하고 현실적으로 판단해달라"고 당부한 이유다.
특히 조선업의 경우 업황 사이클을 타는 특성상 현재의 호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장담할 수 없다. 실제로 당장 올해만 하더라도 1~5월 세계 선박 수주량이 1592만CGT(515척)로 지난해 같은 기간(2918만CGT) 대비 절반 수준에 머무르는 상태다.
HD한국조선해양과 HD현대중공업 등을 포함한 주요 계열사 사장단은 연초 수립한 사업 목표를 집중 점검할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HD현대는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하던 '조선업 협력'을 이어가면서도 무리한 사업 확장 계획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며 "단기 성과에 안주하지 말고 위기에 대비하는 장기적인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경영 원칙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뉴스웨이 김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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