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대출 확대 요구에 연체율·자본규제 이중 부담상생·집값 해결 골몰···은행권 자율성·리스크는 외면 관건은 RWA 부담 완화···"자본 유연성 확보해야"
1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정기획위원회는 민간 자금의 부동산 쏠림을 완화하고 생산적 부문으로의 전환을 유도하기 위해 '중소기업 상생금융지수'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이 지수는 은행의 중소기업 지원 실적을 수치화해 평가하는 방식이다. 담보 위주 대출 관행을 개선하고 성장 잠재력이 높은 중소기업에 대한 자금 공급을 강화하라는 요구가 담겨 있다.
하지만 시장 안팎에선 정부가 은행 자산운용의 양손을 동시에 묶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부동산 쏠림을 차단하기 위한 가계대출 규제를 시행하면서도 은행에는 중소기업 대출 확대를 유도하고 있어서다. 정부가 '상생'과 '집값'에만 매몰돼 은행권의 자율성이나 리스크 부담을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연체율이 높은 중소기업 대출에 지수 방식으로 목표를 부과할 경우 은행권의 자본비율 부담은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결국 내부 리스크 기준을 낮추거나 자본여력 이상의 대출을 취급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지수 평가가 연체율이나 리스크 수준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단순 실적 중심으로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실무 현장에서 이상적인 성과를 위해 고위험 대출을 무리하게 취급하게 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얘기다.
은행권 관계자는 "영업 일선에선 평가점수를 맞추기 위한 대출 취급 압박이 커질 수 있다"며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지원은 정성적 평가와 리스크 요인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은행권 자산건전성 관리 집중···기업금융 한계
내수 회복 지연 탓에 중소기업 연체율은 지속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4월 말 기준 기업대출 연체율(0.68%)은 전월 대비 0.06%포인트(p) 상승했고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0.07%p 오른 0.83%에 달했다. 은행들이 자산건전성 관리를 위해 대출 속도 조절에 나설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실적 중심의 정량지표를 도입하는 것은 현장과 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의 기대와 달리 중소·벤처기업의 자금줄이 점점 더 말라붙고 있다. 정부의 '밸류업'과 주주환원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은행들이 기술신용대출을 보수적으로 취급하고 있어서다. 기술신용대출은 재무상태가 열악한 벤처 및 중소기업이 기술력을 담보로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대출상품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4월 말 기준 4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기술신용대출 잔액은 134조652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6조7439억원(약 11.1%) 감소했다. 기술신용대출 등 위험가중치가 높은 대출을 늘리면 배당 여력이 줄어들기 때문에 대형 은행일수록 자본 규제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규제 완화 기대감···자산건전성 및 자본비율 균형 관건
실제로 중소기업 대출은 담보 부족, 업황 변동성, 거래 실적 미흡 등으로 인해 부실 가능성이 높고 가계대출에 비해 리스크 관리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중소기업 익스포저에 대한 평균 위험가중치는 45.88%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체 일반기업 대출(51.82%)보다는 낮지만 주담대 평균(16.33%)보다는 훨씬 높은 수준이다.
다만 중소기업 익스포저의 상당 부분이 표준등급법이 아닌 내부등급법을 적용받을 경우 위험가중치가 낮아져 자본비율에 대한 부담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철저한 리스크 관리와 일정 수준 이상의 내부 데이터 축적이 선행돼야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모든 은행이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기는 어렵다는 한계도 있다.
김영도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은행 입장에서는 건전성 규제를 충족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기업대출을 늘리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현재의 주담대 등에 대한 강화된 관리정책과 함께 자본확충을 유도하는 정책을 함께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고 제언했다.
기업대출 확대의 관건은 자산건전성과 자본비율을 어떻게 균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느냐다. 금융당국은 스트레스완충자본 유예, 바젤Ⅲ 산정방식 재해석 등을 통해 위험가중자산(RWA) 부담을 완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규제가 완화되면 은행권이 자본비율에 대한 부담 없이 생산적 부문 대출을 늘리는 데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될 전망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정부가 기업대출 확대를 요구하면서도 자본규제는 그대로 둔다면 이중압박이 불가피하다"며 "지속 가능한 기업금융 확대를 위해선 자본확충 유도책과 규제 완화가 병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웨이 박경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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