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곡 ; 가을은 묻는다 ··· 내가 제거해야 할 구태의연은 무엇인지
며칠 전에 만난 농부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그는 쿠보타Kubota 탈곡기를 신나게 몰며 가로세로 50m나 되는 논마지기를 왕복하고 있었다. 내가 지난 여름에 보았던 그가 아니었다. 나는 그가 지난 일 년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알고 있다. 그는 봄에 모종하고 김을 매고 근처 북한강 물을 끌어다 물을 대고, 여름 내내 뙤약볕에서 병충해가 침범하지 않도록 땀을 흘렸다. 내가 한 달 전에 말벌에 물린 오른 손과 팔뚝을 보여주니, 그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이 논길에 땅벌집이 7개, 말벌집이 10개정도 있어요.” 그러더니 오른쪽 바지를 걷어 벌침에 시커멓게 된 종 단지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는 말한다. “나는 땅벌이나 말벌에 하도 많이 쏘여, 이제 아무렇지도 않아요.
벌에 많이 물려야, 벼를 추수해요.” 추수는 수고의 대가다. 나는 가만히 소매를 내리며 벌에 쏘인 부위를 가렸다. 탈곡기에 올라탄 그의 얼굴은 로마 캄피돌리오 광장에서 말을 탄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얼굴보다 태연하고 의연하고 환희에 차 있었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행복한 인간으로 변신시켰을까? 자신의 노동의 대가를 가감 없이 거두는 자는 기쁘다.
인류는 기원전 8500년경, 우연히 보리와 밀을 발견하여 농업을 시작하였다. 옥스퍼드 학자 고든 차일드(1892-1957)는 인류의 생존을 위해 신석기 도구를 개발하고, 농업이라는 사회경제적인 체계의 발명을 ‘신석기 혁명’이라고 불렀다. 그는 이 물질혁명으로 도시, 문자, 문명, 종교, 그리고 예술이 생겨났다고 주장한다. 그의 유물사관은 물질이 정신을 구축하며, 육체적인 풍요는 정신적이며 영적인 안녕을 위한 기반이라고 해석하였다.
최근 터키 남부 궤베클리 테페Goebekli Tepe와 같은 정교한 신전은 농업의 발견이전에 건축되었다. 캠브리지 대학의 인류학자 이안 호더Ian Hodder나 독일고고학자 클라우스 슈미트Cluas Schmidt(1952-2014)의 판단은 다르다. 특히 슈미트는 궤베클리 테베의 연대를 재측정하여 신석기 시대 이전에 등장한 것을 증명하였다. 그는 농업은 종교적 축제를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우연히 발견한 선물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은 정신적이며 영적인 훈련으로 자신들의 눈을 개안開眼시켜, 자연의 섭리를 살피고, 그 안에서 농업이라는 신비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가평 임대 농기계’라는 명찰이 붙은 쿠보타 탈곡기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안다. 탈곡기는 대략 70cm정도 되는 벼의 하단을 정확하게 절단한다. 뿌리와 밑줄기 부분은 논에 그대로 쓰러져 있다. 탈곡기는 머리에 낱알을 품은 50cm정도 줄기를 잘라 탈곡기 통으로 삼킨다. 모든 식물들이 다 그렇지만, 오늘 아침에 본 벼도 새삼스럽게 신비하다. 벼의 줄기는 신기하게 하늘로 높이 솟아오른다. 아무리 비바람이 쳐 와도, 쓰러지거나 눕지 않는다. 한참 줄기를 위로 솟구쳐, 자신이 태어난 땅과 심지어는 자신을 만들어 준 줄기로부터 멀찌감치 도망한다. 한 30cm정도에 도달하면, 두 줄기와 마주친다.
줄기 안에 있는 ‘벼’라는 비가시적이며 영적인 힘은 두 개의 줄기중 하나를 선택한다. 그것은 갈림길에서 주저하지 않고 한 줄기만을 선택한다. 우왕좌왕하는 법이 없다. 한 쪽 줄기는 점점 얇아져 곧 시들게 되고, 다른 한 쪽에는 또 다른 줄기들을 내면서 드디어 쌀 껍질 안에서 쌀알을 주렁주렁 맺는다. 한 줄기에 쌀알이 족히 100개는 될 것이다. 농부는 탈곡기를 조작하여 낱알과 줄기를 분리한다. 그는 논가에 정차해 놓은 트럭위에 낱알들을 커다란 푸대 자루에 담는다. 내가 논길을 산책하는 동안, 그는 트럭을 몰고 읍내 어디론가 가버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탈곡脫穀은 봄에 씨를 뿌린 자, 여름에 김을 맨 자, 일조량과 강수량을 책임지는 하늘에 간절히 기도한 자에게 신이 허락한 노동이다. 우주를 운행하는 보이지 않는 원칙인 ‘인과응보’가 탈곡을 통해 여실이 증명되었다. 탈곡脫穀이란 한자에서 탈脱은 ‘벗어나다’라는 의미로 원래는 살에서 뼈를 제거하는 행위다. 과거의 연속인 현재의 자신은 폭력적인 단절이 개입하지 않는 한, 미래에도 그대로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응시하고, 자신을 지탱시켜줄 수 있는 한 가지를 추려내는 ‘탈곡’은 시작을 의미한다. 자신을 배태시키고 자양분을 준 뿌리와 줄기에 연연하여, 그것으로부터 적당한 시기에 자신을 분리하지 못한다면, 그 벼는 썩고 말 것이다. 곡穀은 禾(벼 화)자와 殼(껍질 각)자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글자다.
자신을 단단하게 감싸고 있는 껍질을 벗겨야 벼가 등장한다. 껍질이란, 자기-자신이 아니라 타인을 위해 자기-자신을 숨기려고 쓴 가면假面이다. 가면이란, 남들이 나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 붙여준 이름이다. 사회라는 무대에서 나에게 맡겨진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생의 어느 시점에 도달하여, 되돌아보면, 그 일이 나의 적성에 맡는가. 그 일이 나의 소질을 확장하는가를 심오하게 고민하게 된다. 나는 껍질이 아니라 벼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지닌 껍질 속 벼를 발견하여, 나라는 정체성에 심겨질 때, 열매를 맺을 것이다.
‘탈곡하다’란 의미를 지닌 영어단어 ‘쓰래쉬’thrash는 ‘사정없이 때리다; 곡물을 도리깨질하다’란 의미다. 이전에는 농부가 알곡과 쭉정이를 구분하기 위해 도리깨를 들고 추수한 곡식을 사정없이 쳤다. 10월은 탈곡의 시간이다. 타인의 눈에 안달하는 나의 껍질을 벗고, 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응시해야할 시간이다.
남들이 아는, 남들의 비위를 맞추려는 삶에서 탈출하여, 문지방에 서서 본연의 자신을 찾아야한다. 가면을 벗어 던지고,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고민할 시점이다. ‘쓰래쉬’thrash에서 파생된 ‘쓰래쉬홀드’threshold라는 영어 단어는 ‘문지방; 한계점’이란 뜻이다. ‘쓰래쉬홀드’ 즉 가을이란 문지방은 나에게 묻는다. 내가 제거해야할 구태의연은 무엇인가? 내가 벗어야할 가면과 껍데기는 무엇인가? 나는 나-자신이란 알맹이를 가지고 있는가? 나는 멀리서 들어오는 ‘나-자신’이라는 희망의 노래를 듣고 있는가?
<필자 소개>
고전문헌학자 배철현은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셈족어와 인도-이란어를 전공하였다. 인류최초로 제국을 건설한 페르시아 다리우스대왕은 이란 비시툰 산 절벽에 삼중 쐐기문자 비문을 남겼다. 이 비문에 관한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인류가 남긴 최선인 경전과 고전을 연구하며 다음과 같은 책을 썼다. <신의 위대한 질문>과 <인간의 위대한 질문>은 성서와 믿음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었다. 성서는 인류의 찬란한 경전이자 고전으로, 공감과 연민을 찬양하고 있다. 종교는 교리를 믿느냐가 아니라,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고, 연민하려는 생활방식이다. <인간의 위대한 여정>은 빅히스토리 견지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추적하였다. 이 책은 빅뱅에서 기원전 8500년, 농업의 발견 전까지를 다루었고, 인간생존의 핵심은 약육강식, 적자생존, 혹은 기술과학 혁명이 아니라 '이타심'이라고 정의했다. <심연>과 <수련>은 위대한 개인에 관한 책이다. 7년 전에 산과 강이 있는 시골로 이사하여 묵상, 조깅, 경전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블로그와 페북에 ‘매일묵상’ 글을 지난 1월부터 매일 올리고 있다.
뉴스웨이 안민 기자
peteram@newsw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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