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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화(昇華) ⑩영감

[배철현의 테마 에세이] 승화(昇華) ⑩영감

등록 2019.09.10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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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화(昇華)  ⑩영감 기사의 사진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다.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국민 한명 한명이 선진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다. 애벌레가 고치 안에서 일정한 시간을 보낸 후에 나비가 되듯이, 인간은 과거의 자신을 직시하고 개선하기 위해 자신이 마련한 고치에서 변신을 시도해야한다. 그 변신은 정신적이며 영적인 개벽이다. 필자는 그 개벽을 ‘승화’라고 부르고 싶다. ‘더 나은 자신’을 모색하는 열 번 째 글의 주제는 영감(靈感)이다.


영감(靈感) ; 나에게 귀 기울이는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진정한 목소리

귀뚜라미는 가을이 도래했다는 표시다. 귀뚜라미는 동일한 소리를 재빠르게 반복하여, 나에게 묻는다. 이번 추석秋夕에 내가 내놓아 사람들의 오감을 즐겁게 만들 과실果實은 무엇인가? 나는 무슨 과실을 내놓기 위해 지난봄과 여름에 수고했는가? 나는 어떤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 나의 손과 발이 이렇게 피곤해졌는가?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헌신獻身했는가? 나는 이런 질문에 속 시원히 대답할 수 없어 항상 아련한 답답함에 시달린다. 이런 아쉬움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유가 있다. 내가 목표를 명료明瞭하게 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명료한 목표’란 자신의 최선을 유발시킬 수 있어야 하며, 자신이 처한 상황을 고려하여, 독보적이며 사적私的이어야 한다. 만일 그 목표가 내가 아닌 타인들도 능히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나의 신명神明이 작동하지 않는다. 우리가 하는 일이 그저 그런 이유는, 자신만의 숨겨진 아우라가 드러날 수 있는 지극히 독창적인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목표가 명료하다는 말은, 과수원을 운영하는 농부에게 품종品種을 정하는 작업이다. 농부는, 토양, 강우량, 바람, 토지경사도 등을 고려하여, 자신이 심어야할 씨앗을 결정한다. 옆 동네에 출시한 과일을, 자신이 소유한 땅의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심었다가는 낭패다.

목표의 명료성뿐만 아니라. 인내忍耐가 필요하다. 만일 내가 깊은 성찰과 묵상을 통해, 품종을 정했다면, 씨를 뿌리고 보살피고, 병충해가 침범하지 못하도록 조치하고, 적당한 물과 거름을 주어야한다. 그럴 수고를 각오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원하는 훌륭한 과실을 얻을 수가 없다. 한마디로, 훌륭한 과실은 지속적인 관심關心과 정성精誠이 빚어낸 작품이다. 만일 농부가 훌륭한 과실보다는 이윤을 많이 남기는 과실을 많이 생산하길 원한다면, 그(녀)는 정성보다는 효율效率을 최우선으로 삼을 것이다. 대부분의 농부들이 돈을 많이 벌 목적이기 때문에, 효율을 담보로 한 경쟁은 제로섬 게임이며, 결국 비슷한 품질의 과일을 생산하는 농부가 된다. 그러나 정성이 들어간 과일은 당장 가격 경쟁에서 유사한 과일들과의 경쟁에서 당장에는 뒤쳐질 지도 모르지만, 결국 한 개의 과일이 담고 있는 정성을 사려는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다. 우리는 그럼 과일을 ‘명품名品’이라 부른다. 명품이란 다른 물건들이 가질 수 없고 보이지 않는 내재적인 가치의 가감이 없는 화신이다. 소비자는 그 제품에 담겨져 있는 이야기를 구매하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과실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나의 일상이 자유自由롭고 독립獨立적이어야 한다. 자유롭다는 표현은 소극적이며 부정적으로는 ‘타인의 억압으로부터 탈출’이다. 자유의 적극적이며 긍정적인 의미는 ‘자신이 간절懇切히 원하는 것에 몰입하는 마음가짐’이다. 어떤 사람이 자유로운 이유는, 자신이 흠모하는 한 가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흔들림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운명으로 여기고, 그 길을 매일 매일 정진할 뿐이다. ‘독립’이란 네발로 걷는 사족보행이 아니라 두발로 걷는 이종보행을 통해 자신의 몸에 벤, 삶에 대한 태도다. 사복보행에서 이족보행으로 진화한 인간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사족보행의 습성들이 남아있다. 사족보행 동물들은 눈이 머리의 정면이 아니라 정면과 측면에 걸쳐 붙어있다. 다른 동물이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여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결정한다. 독립적이지 않는 사람의 특징은 눈치, 아첨, 부러움, 시기, 그리고 뒤통수다. 자신을 독립적인 인간으로, 타인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지 못하고, 항상 비교를 통해 우위를 결정하여, 자신의 위치를 확고하게 구축하기를 시도한다.

자유롭고 독립적인 인간에 대해 19세기 미국 초월주의 사상가인 랄프 왈도 에머슨은 <저립>이란 에세이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당신 자신을 신뢰信賴하십시오.
세상의 모든 마음은 그 강한 쇠줄에 전율戰慄합니다.
당신 마음의 고결高潔함보다 이 세상에서 더 거룩한 것은 없습니다.
인간이 배워야할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심연에서 우러나와 마음속에서
잠시 번쩍이는 한 줄기 섬광閃光을 감지하고 관찰하는 법을 배워야합니다.
그 섬광은 음유시인들이나 현자들의 저 하늘에 수놓은 별들보다 더 반짝입니다.
우리는 천재들의 작업에서, 우리 자신이 이전에 무시하고 거절한 생각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천재의 작업은 우리에게 우리가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위엄을 가지고 다가옵니다.천재의 마음속에 거주한 힘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전혀 새로운 것입니다.
천재만이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해야 할 지 압니다.
천재도 자신이 시도試圖하기 전에는 모릅니다.”


천재란 자신의 마음속에 갑자기 떠올랐다 사라지는 생각을 흘려보내지 않고 포착捕捉하는 자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천재가 아닌 이유는 그런 아이디어를 아무 생각도 없이 흘려보내기 때문이다. 천재란 이런 자신의 사적인 생각들을, 예수, 노자, 셰익스피어, 아인슈타인, 스티브잡스의 생각보다 가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런 사적인 생각이 바로 ‘영감靈感’이다. 이 영감이 가치가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기원전 10세기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한 유대시인이, <창세기> 2.7에서 인간이 다른 동물과는 달리 인간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주 하느님께서 땅의 흙으로 인간을 만드셨다.
그리고 그의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셨다.
그랬더니, 아담이 살아있는 영이 되었다.”

인간도 흙이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들은 시간이 지나면 모두 흙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인간을 ‘붉은 흙’이란 의미를 지닌 히브리어 ‘아담’으로 불렀다. 신은 육체만을 지니고, 육체의 지배를 받는 인간에게 특별한 것을 선물한다. 바로 ‘생명의 숨’이다. 영감을 의미하는 ‘인스퍼레이션’inspiration은 ‘숨을 불어 넣다’란 의미를 지닌 라틴어 동사 ‘인스피라레’inspirare에서 파생되었다. 인간의 내면에서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인간의 오감을 초월하는 ‘생명의 숨’이 존재한다. 또 다른 초월주의 사상가 헨리 데이빗 소로는 <영감>Inspiration이란 시에서 그 숨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자 보십시오.
구하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 어떤 것이 다가옵니다.
그것은 명료하고 신적인 시럽입니다.
나는 이전에 오감으로만 느꼈습니다.
이제 신과 같이 감각하며, 주위를 살핍니다.

나는 귀가 아닌 것으로 듣습니다.
나는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봅니다.

나는 일 년 단위로 살다, 이제는 순간을 삽니다.
나는 진리를 구분하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전해들은 것이 아닌 것을 알게 됩니다.

나는 청력의 한계를 넘어선 것을 듣습니다.
나는 시력의 한계를 넘어선 것을 봅니다.
새로운 땅, 새로운 하늘, 새로운 바다를 보고 듣습니다.
내가 지나는 하루에는 태양도 자신의 빛을 희미하게 만듭니다.
....
하늘의 소녀 뮤즈입니다.
인간이 가야할 길을 안내해 주는 별입니다.
뮤즈는 삶의 진정한 정수가 있는 곳을 보여줍니다.”

영감은 자신에게 온전히 귀를 기울이는 연습을 감행하는 자의 마음속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자신의 ‘진정한 목소리’다. 영감은 조용을 훈련하는 나를 찾아오는 뮤즈이며, 나의 ‘진정한 모습’이다. 이번 가을 귀뚜라미 소리 뿐만 아니라, 내 마음 속 귀뚜라미 소리도 듣고 싶다.

미국 메사추세츠 콩코드에 위치한 ‘월든 호수’미국 메사추세츠 콩코드에 위치한 ‘월든 호수’


<필자 소개>
고전문헌학자 배철현은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셈족어와 인도-이란어를 전공하였다. 인류최초로 제국을 건설한 페르시아 다리우스대왕은 이란 비시툰 산 절벽에 삼중 쐐기문자 비문을 남겼다. 이 비문에 관한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인류가 남긴 최선인 경전과 고전을 연구하며 다음과 같은 책을 썼다. <신의 위대한 질문>과 <인간의 위대한 질문>은 성서와 믿음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었다. 성서는 인류의 찬란한 경전이자 고전으로, 공감과 연민을 찬양하고 있다. 종교는 교리를 믿느냐가 아니라,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고, 연민하려는 생활방식이다. <인간의 위대한 여정>은 빅히스토리 견지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추적하였다. 이 책은 빅뱅에서 기원전 8500년, 농업의 발견 전까지를 다루었고, 인간생존의 핵심은 약육강식, 적자생존, 혹은 기술과학 혁명이 아니라 '이타심'이라고 정의했다. <심연>과 <수련>은 위대한 개인에 관한 책이다. 7년 전에 산과 강이 있는 시골로 이사하여 묵상, 조깅, 경전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블로그와 페북에 ‘매일묵상’ 글을 지난 1월부터 매일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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