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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화(昇華) ㊴생활 속 거리두기

[배철현의 테마 에세이]승화(昇華) ㊴생활 속 거리두기

등록 2020.05.13 14:27

수정 2020.05.13 14:28

안민

  기자

승화(昇華) ㊴생활 속 거리두기 기사의 사진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다.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국민 한명 한명이 선진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다. 애벌레가 고치 안에서 일정한 시간을 보낸 후에 나비가 되듯이, 인간은 과거의 자신을 직시하고 개선하기 위해 자신이 마련한 고치에서 변신을 시도해야한다. 그 변신은 정신적이며 영적인 개벽이다. 필자는 그 개벽을 ‘승화’라고 부르고 싶다. ‘더 나은 자신’을 모색하는 서른아홉 번째 글의 주제는 ‘생활 속 거리두기’다


생활 속 거리두기 ; 나에게 이익이 되는 공동체를 위한 명예로운 의무


인간은 홀로 존재할 수 없다. 인간뿐만 아니라, 우주 안에 존재하는 어떤 생명 개체도 다른 개체와 동떨어져 존재할 수 없다. 만일 전혀 다른 특질을 지닌 개체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아직 아무것도 아닌 존재일 수밖에 없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3-322년)는 인간을 다른 인간과 어울려 유기적으로 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인간을 그리스어 문구 ‘쪼온 폴리티콘’으로 표현하였다. ‘쪼온 폴리티콘’을 직역하자면 ‘도시 안에 거주하는 짐승’이다. 인간은 자신의 본능과 욕망대로 살고 싶은 ‘동물’이지만, 법과 질서의 가시적인 테두리인 ‘도시’안에 다른 인간들과 조화롭게 살기 위해 애쓰는 존재다.

인간은 딜레마를 안고 산다. 개인은 숭고한 자신을 발견하고 발휘하는 자유를 만끽하고 싶다. 그(녀)는 동시에 다른 존재들, 특히 동료인간들과 동료동물들, 더 나아가 우리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는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야 한다. 인간을 가장 그답게 만드는 개성個性을 구축하기 위한 필수적인 행위가 있다. 다른 존재와의 유기적인 관계를 모색하려는 ‘묵상默想’이다. 플라톤은 최선의 삶을 지향하는 개인의 가장 훌륭한 취미로 묵상을 뽑았다.

플라톤은 묵상의 역할을 운동경기를 보는 관람자의 ‘관찰觀察’과 비교한다. 경기에는 세 부류의 인간들이 존재한다. 첫째, 경기에 직접 참가하는 선수選手들이다. 이들은 자신이 속한 팀이 우승하기 위해 상대 팀의 약점을 공격한다. 둘째, 자신의 고향 팀에 내기를 건 관람자觀覽者이다. 그들은 전체경기를 공정하게 관찰할 수 없다.

자신의 팀이 이겨 자신에게 금전적인 이익을 가져다주기를 바란다. 세 번째 부류는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는 중립적인 관찰자다. 그는 평점을 유지하며 해당 경기의 진면목을 즐길 수 있다. 이 세 번째 부류의 관람자의 경기를 보는 방식, 즉 이익이나 이해와는 상관없는 허심탄회한 심정으로 경기를 관찰하는 방식이 깊은 관찰인 ‘묵상’이다.

2020년에 느닷없이 등장한 COVID-19는 인류에게 자신에게 시간을 투자하는 ‘묵상의 삶’을 실천하라고 요구한다. 묵상을 실천하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이 ‘거리두기’다. 인간이 도시 안에서 다른 인간들과 조화롭게 살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이 누구인지 가만히 고민해 보는 ‘묵상의 삶’을 생활 속에서 연습해야한다. 이 감염병은 우리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헤아리고 자신의 고유한 임무를 모색하는 ‘묵상하는 동물’이 되기를 요구한다.

‘묵상하는 동물’이 되기 위한 ‘거리두기’에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사회적 거리두기’이며 다른 하나는 ‘생활 속 거리두기’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외부가 정한 기준에 따라 개인이 자신의 생활반경을 결정하는 수동적이며 물리적인 거리두기다. ‘생활 속 거리두기’는 ‘사회적 거리두기’와 그 주체와 방식이 전혀 다르다.

‘생활 속 거리두기’의 주체는 외부가 아니라 내부인 ‘나 자신’이다. 이 거리두기는 방역주체가 국가나 사회가 아니라 개인이다. 개인이 자신이 가야할 곳과 가지 말아야 할 곳을 결정한다. 그는 COVID-19의 증상症狀을 스스로 판단해야한다. 만일 자신에게서 그런 증상이 조금이라도 발견된다면, 그는 스스로 자신의 발을 억제해야한다.

우리는 지난 5월 6일 ‘사회적 거리두기’가 소정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판단하여, ‘생활 속 거리두기’로 전격 전환하였다. 그 날, 예기치 못한, 아니 우연치고는 필연적으로 ‘집단감염’이 다시 시작하였다. 자신이 감염되었는지 알지 못한 ‘한 사람’이 5월 2일 서울 이태원에 위치한 클럽들을 방문하였고 정부가 ‘생활 속 거리두기’로 전환한 5월6일, 바로 그날에 그는 감염 확진자로 판명되었다. 이 감염병은 ‘이태원 사건’을 통해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 생활 속 미궁으로 꽁꽁 숨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하는가? ‘생활 속 거리두기’ 기간에 우리의 생활방침은 무엇인가?

로마 철학자이자 정치가인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는 인생의 말년인 62세(기원전 44년)에 자신의 조국 로마공화국이 왕정주의자들에 의해 허물어지고 있는 것을 목도하면서 <의무에 관하여De Officiis>라는 책을 저술하였다. 율리어스 카이사르 장군은 골 지역과 오늘날 영국인 브리튼을 정복하여 로마제국의 경계를 대서양까지 확장하였다.

그는 비상시 모든 권력을 장악한 딕타토르Dictator, 즉 독재관獨裁官이 되어 황제가 될 야망을 품었지만 기원전 44년 3월 15일 암살당하고 만다. 키케로는 자신도 곧 정권을 잡은 마크 안토니에 의해 암살당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운 불안한 시기인, 기원전 44년 10월에 4주 만에 <의무에 관하여>를 완성하였다. 이 책은 키케로의 유언장이다.

이 책은 세권으로 구성되어있다. 제1권은 ‘명예로운 것’ 제2권은 ‘이익이 되는 것’ 제3권은 ‘명예로운 것과 이익이 되는 것이 상충되는 경우’다. 키케로는 아테네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있는 아들에게 보는 서간형식으로 책을 썼다. 하지만 이 책은 당시 공동체를 위해 명예와 자신의 개인적인 이익 사이에게 갈등하는 모든 인간들을 위한 인생 안내서다. 제1권과 2권은 키케로의 스승인 파나이티우스Panaetius의 저서 <의무에 관하여>에 큰 영향을 받아 유사한 주제를 기술하였다. 그러나 제3권은 키케로의 독창적인 주장을 담고 있다.

키케로는 공동체의 삶에서 공적인 명예와 사적인 이익이 충돌할 경우 취해야할 최선의 선택을 기술하고 있다. 인간에게 ‘사적인 이익’, 즉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최선의 활동은 ‘묵상’과 ‘여유’이며, 이것이 가져다주는 선물은 평정심과 행복이다. 반면에 ‘명예’란, 자신의 희생을 통해 기꺼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헌신할 때 생기는 공적인 인정과 칭찬이다.

키케로는 기원전 5세기 아테네 정치가 테미스토클레스의 예를 들려 이 충돌의 상황을 설명한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스파르타와의 전쟁에서 스파르타 함선이 귀테이온Gytheion에 정박되어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 배에 몰래 방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테미스토클레스는 불명예스러운 행위는 최선의 선택이 아니며 사적인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짓고 방화하지 않았다. (3권 49.317) 키케로는 아들에게 명예로운 행위가 결국 최선의 이익을 가져다주며, 부도덕한 행위는 결국 그것을 행하는 자에게도 해를 끼칠 것이라고 조언한다.

우리는 일주일전 COVID-19를 거의 정복했다고 자화자찬하였다. 그리고 우리가 마치 K-방역으로 선진국으로 진입한 것처럼 착각하였다. 지혜로운 자는 항상 최악의 상황을 미리 상상하고 준비하지만, 어리석은 자는 행운을 자신의 실력이라고 착각한다. 우리는 지금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적인 ‘무증상 감염’과 대결하고 있다.

앞으로 펼쳐질 기나긴 감염병과의 대결에서 승기를 굳게 잡는 주체는 개인이다. 그(녀)가 이 위기 상황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위해 취할 수 있는 가장 명예로운 의무義務인 ‘생활 속 거리두기’를 실천해야한다. 이번 이태원 감염사건이 공동체를 위한 명예로운 행위가 결국 나에게 이익이 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카틸리나를 정죄하는 키케로, 이탈리아 화가 케사레 마카리 (1840–1919) 프레스코, 1889, 400 cm x 900 cm 이탈리아 국회 팔라쬬 마다마 ‘마카리 홀’카틸리나를 정죄하는 키케로, 이탈리아 화가 케사레 마카리 (1840–1919) 프레스코, 1889, 400 cm x 900 cm 이탈리아 국회 팔라쬬 마다마 ‘마카리 홀’

<필자 소개>
고전문헌학자 배철현은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셈족어와 인도-이란어를 전공하였다. 인류최초로 제국을 건설한 페르시아 다리우스대왕은 이란 비시툰 산 절벽에 삼중 쐐기문자 비문을 남겼다. 이 비문에 관한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인류가 남긴 최선인 경전과 고전을 연구하며 다음과 같은 책을 썼다. <신의 위대한 질문>과 <인간의 위대한 질문>은 성서와 믿음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었다. 성서는 인류의 찬란한 경전이자 고전으로, 공감과 연민을 찬양하고 있다. 종교는 교리를 믿느냐가 아니라,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고, 연민하려는 생활방식이다. <인간의 위대한 여정>은 빅히스토리 견지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추적하였다. 이 책은 빅뱅에서 기원전 8500년, 농업의 발견 전까지를 다루었고, 인간생존의 핵심은 약육강식, 적자생존, 혹은 기술과학 혁명이 아니라 '이타심'이라고 정의했다. <심연>과 <수련>은 위대한 개인에 관한 책이다. 7년 전에 산과 강이 있는 시골로 이사하여 묵상, 조깅, 경전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블로그와 페북에 ‘매일묵상’ 글을 매일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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