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질 개선 위한 신성장 동력 확보 나서투자금 조달 위한 EB 발행···금융당국 제동주주들, 지분 희석과 법적 문제 우려 표출
다만 금융당국이 태광산업의 3200억원 규모 교환사채(EB) 발행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최근 상장사들의 연이은 EB 발행이 자사주 소각을 피하려는 꼼수이자 기존 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EB 발행으로 투자 금액을 마련하려던 태광산업의 계획에 차질이 생긴 셈이다.
태광산업은 지난 1일 "올해부터 내년까지 총 1조5000억원을 투입해 신규 사업 관련 기업 인수와 설립을 포함한 '투자 로드맵'을 설정해 추진해 나갈 것"이라며 "특히 올해에만 1조원을 우선 투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신규 투자는 화장품 제조·판매 기업, 신재생에너지 및 부동산개발 관련 업체에 집중될 예정이다.
태광산업은 이미 투자 자회사를 설립해 애경산업 인수에 나섰다. 최근 AK홀딩스와 애경자산관리 등을 보유한 애경산업(지분율 63%) 매각 관련 예비 인수 후보(숏리스트)에 올랐다. 애경그룹이 희망하는 인수가는 6000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서울 곳곳에 보유한 땅 개발에도 본격 나선다. 서울 성수동 1만㎡ 규모의 복합문화공간인 '에스팩토리' 부지가 대표적이다. 태광산업은 이를 호텔 등 상업용 빌딩으로 개발하는 방안을 고심 중이다.
여러 신재생에너지 기업을 두고 인수 타당성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블록체인 기반 금융 연관 사업도 타진 중이다.
태광산업은 유보금과 외부 자금 조달을 통해 투자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현재 태광산업은 1조9000억원에 달하는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지만 실제 신규 사업에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은 1조원 미만으로 추산된다.
석유화학 및 섬유 등 기존 사업 유지에 약 5000억원, 업황 악화에 대비한 3.5개월치 예비운영자금으로 5600억원 가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석유화학 2공장과 저융점섬유 공장 가동 중단에 따른 시설 철거와 인력 재배치 비용도 상당 부분 소요될 예정이다.
태광산업 측은 "보유 현금을 모두 신사업 투자에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태광산업은 자사주 전량(27만1769주·지분율 24.41%)을 EB로 발행해 약 3186억원을 조달하고, 이를 포함한 외부 자금 유치를 통해 사업 재편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할 계획이다. 당장 태광산업은 나흘 전인 지난달 27일 이사회를 열어 자사주 전량을 기반으로 한 EB 발행을 의결한 상황이다.
다만 주주들은 태광산업의 이번 발표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분위기다. 일단 EB 발행 과정에서 채권자가 교환권을 행사하면 이들에게 자사주가 넘어가 유통될 수 있는 구조이다. 즉 제3자 배정 유상증자나 마찬가지라는 분석이다.
EB 발행 자체가 기존 주식 가치를 희석하는 것은 아니다. 신주를 발행해 전환해주는 전환사채(CB)와 달리 EB는 기존 주식을 교환해준다는 면에서 주주 가치 희석에 대한 우려가 낮다. 다만 교환 대상이 기업이 보유 중인 자사주인 경우에는 얘기가 달라진다. 이 경우 통상적인 EB 발행과 달리 사실상 CB와 비슷한 효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주주들은 기업이 자사주를 매입하면 소각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매입 자체를 주주 가치 제고 행위로 보는 이유다. 반대로 보유 중인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고 처분을 통해 다시 시장에 내놓을 시 신주 발행까지는 아니어도 주주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로 인식한다.
태광산업 주주들도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 주주들 입장에선 오히려 지분이 희석될 처지에 놓인 셈이다. 당장 태광산업 2대 주주인 트러스톤자산운용이 "주주이익을 침해할 우려가 크다"며 "명백한 상법 위반이자 배임 행위"라며 지난달 30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발행 금지 가처분을 내는 등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여기에 태광산업은 EB 발행 상대방도 공시 과정에서 명시하지 않았다. 자본시장법상 상장사는 자사주를 처분하려면 그 상대방을 이사회에서 결의해야 한다. 이를 누락할 시 추후 실제 처분 과정에서 법적 문제가 발생한다.
시장에서는 누가 태광산업의 자사주를 낮은 가격에 인수하느냐를 두고 우호 세력이 관련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 자사주를 헐값에 팔 이유가 없으나 경영권 방어를 목적으로 우호 세력에 넘기는 것이라면 현금 확보와 동시에 경영권까지 방어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노동시민사회단체들도 "정부 시책에 대한 전면 도발, 정면 도전을 선포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이날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한국투명성기구, 금융정의연대, 경제민주화시민연대, 민주노총 전해투 등 9개 노동시민사회단체는 논평을 내고 "이재명 정부의 주요 경제정책이 근본부터 무력화되고 있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이들은 "주주의 권익을 훼손하고, 경제정의를 역행하며, 시대정신을 외면하는 태광그룹에 대해 관계 기관의 엄정한 제재를 촉구한다"며 "새 정부의 핵심 경제정책 중 하나인 자사주 소각을 회피하기 위해 결행된 태광산업의 교환사채 발행은 국가경제와 사회, 국민의 이익에 반한다"고 했다.
이어 "오직 태광그룹 총수인 이호진 전 회장 한 사람의 지배구조 강화를 위한 결정이라는 사실은 명명백백하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논란 속에 태광산업은 "신사업에 투자할 목적으로 EB 발행을 하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하고 있으나, 업계 일각에선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강조하던 이재명 대통령 정부 출범 이후 '주주가치 훼손 1호 기업'으로 찍힐까 투자 발표도 급하게 내놓은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금융감독원도 태광산업이 제출한 EB 발행 관련 증권신고서에 대해 "처분 상대방 등에 대한 중요한 누락이 있다"며 정정 명령을 내렸다.
태광산업은 EB 발행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태광산업의 연결 기준 매출은 2022년 2조6066억원에서 지난해 2조1218억원으로 감소했으며 영업이익은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현재 태광산업의 최대주주는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으로 지분 29.48%를 보유 중이다. 이 전 회장은 지난 2011년 횡령·배임 혐의로 법정 구속된 후 복귀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결정이 이 전 회장의 경영 복귀 가능성과 맞물려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뉴스웨이 신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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