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도시의 침묵은 단지 관광객의 발길이 줄어서가 아니다. 여수시민인 택시 운전사는 "석화산단이 죽으면서 도시 자체가 죽었어요"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여수 경제는 △어업 △관광 △석유화학, 세 축으로 돌아간다. 그중에서도 석유화학이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이다. 여수국가산단에는 300여 개 기업이 입주해 있는데 절반 가까운 137곳이 석유화학 업체다.
국내 석유화학 산업에서도 여수는 심장부로 불린다. NCC(나프타분해설비) 10기 중 7기가 이곳에 몰려 있다. 여수 사람들에게 밤바다만큼이나 산단 전망대가 야경 명소인 이유다. 공장 불빛이 반짝이는 산단의 야경은 한때 여수의 번영을 상징했다.
하지만 지금 그 불빛이 하나둘 꺼지고 있다. 중국발 공급 과잉이 여수 산업의 동맥을 서서히 조여오고 있는 것이다. 이미 여천NCC 3공장과 LG화학의 스티렌모노머(SM) 공장은 가동을 멈췄고, 지난해에는 롯데케미칼 2공장도 중단됐다. 최근 정부가 연말까지 업계에 최대 370만톤(전체 생산능력의 25%)의 감산을 요구했는데 이 가운데 100만톤 이상이 여수에서 조정돼야 한다. 여수 산단 불빛이 꺼지는 것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수순이 됐다.
물론 합병과 통폐합이 현실화되면 공급 과잉이라는 숙제는 다소 풀리게 된다. 이에 LG화학은 2공장을 GS칼텍스에 매각해 합작사를 세우는 방안을 제시했고 롯데케미칼과 여천NCC도 시설 통합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 전반으로는 모처럼 긍정적인 신호다.
하지만 현장을 둘러보면 또 다른 문제가 드러난다. 산단의 불이 꺼지면 가장 먼저 흔들리는 것은 일자리다. 여수산단 근처에서 만난 여수시민은 "석유화학 산단 하청업체에 있던 친구들이 다 울산이나 서산으로 옮겼어요. 여수에서는 미래가 없다고요."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분기 기준 여수산단 석화기업 종사 인력은 1만6770명에서 5070명으로, 1년 만에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인력이 빠지자 소비가 줄고 곧 지역경제의 냉각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더 심각해질 게 당연할 이야기다.
이 때문에 여수시는 지난 8월 고용사정이 급격히 악화할 가능성이 있는 지역에만 시급히 지정되는 '고용위기 선제대응 지역' 1호로 선정됐다. 하지만 "지정된 걸 들었지만 체감은 안 된다"는 게 주민들의 반응이다. 내년 2월까지만 한시적으로 시행되는 정책이라 흐지부지 끝날 가능성도 높다.
요즘 업계에서는 통폐합이 더디다는 지적이 많다. 구체적인 진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기업들끼리 공장 하나를 멈춘다는 건 결코 단순한 결정이 아니다. 수익성은 물론, 통폐합으로 더 악화될 지역경제와 고용문제까지 감당해야 할 무게가 태산이다. 그만큼 속도를 내는 것보다 방향을 잡는 일이 더 어렵다는 것이 공통된 인식이다.
정부가 이번 사업 재편 과정에서 각 기업의 고용 충격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빠른 결단이 아니라 정교한 수술이다. 공급 과잉을 줄이는 것만큼 지역과 산업이 함께 버틸 수 있는 해법이 중요하다. 약속한 연말까지 두 달 남짓, 중요한 건 지역·기업·근로자 모두가 지속 가능한 균형점을 찾아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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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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