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영업이익은 '2위' 수성···관세 위기 속 빠른 대응 '선방''양보다 질적 성장' 계속···'HMGMA' 美 거점 수장 교체 의미하이브리드 차종·현지 생산량 확대···'15%' 관세 충격 완화
'2년 연속 700만대 고지·미국 판매 신기록' 등 지난해 역대급 실적을 썼던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가장 먼저 '위기'라는 말을 꺼냈다. '위기'라는 단어를 14번이나 언급한 메시지를 보면 현대차그룹 전반에 퍼진 위기론을 가늠케 한다.
위기의 순간, 정 회장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소환하며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위기 극복 DNA'를 강조했다. 파고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위축되지 말고 정면 돌파해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위기 정면돌파'를 선언한 정 회장의 승부수는 빛을 발하고 있다. 업계에서 가장 큰 미국 시장을 노리는 현대차그룹은 고관세 위기 속에서도 의미 있는 성과를 통해 얼마나 잘 준비해왔는지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폭스바겐 제친 현대차·기아···기민한 시장 대응 '선방'
현대차그룹(현대차·기아·제네시스)은 올해 상반기 글로벌 시장에서 총 365만4522대를 판매했다. 이는 토요타그룹(515만9282대), 폭스바겐그룹(436만3000대)에 이은 3위다.
판매량 기준 3위를 기록한 현대차그룹은 수익성 부문에선 처음으로 폭스바겐그룹을 넘어 2위 자리에 오르는 쾌거를 달성했다. 판매 기준 글로벌 1위인 토요타그룹이 영업이익 2조2821억 엔(약 21조4900억원)으로 수익성 1위를 지키는 사이, 치열한 2위 싸움에서는 현대차그룹이 영업이익 13조86억원으로 폭스바겐그룹(10조8600억원)을 넘어선 것.
올해 상반기 현대차그룹은 8.7%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9.2%를 달성한 토요타그룹에는 다소 미치지 못했지만, 폭스바겐그룹(4.2%)과 비교하면 2배가 넘는 수치다.
현대차그룹의 상반기 영업이익은 미국 관세 여파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12.7% 감소했다. 그럼에도 현대차그룹이 사상 처음으로 폭스바겐그룹을 넘어섰다는 점은 위기 속에서 적절히 대응해 선방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특히 현대자동차·기아는 미국에서 89만3152대를 판매해 올 상반기 역대 최다 판매실적을 거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수입 자동차에 대한 25% 관세 장벽을 뚫은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선제 대응해 조지아주 신공장인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의 가동 시점을 당초 예정보다 빠른 작년 말로 앞당겼다. 또 당초 전기차 전용 생산라인을 하이브리드차 병행 생산 체제로 즉각 바꾸는 등 시장 상황에 기민하게 대응했다.
가격 동결 '승부수'···"부품 현지화 추진"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이 관세 대응을 위해 가격 인상을 검토하는 상황에서도 '가격 동결'이라는 승부수를 띄웠다.
현대차·기아는 지난 4월 25%의 미국 관세에도 불구하고 미국 판매가격을 동결해왔다. 가격 경쟁력을 확보해 현지 점유율을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이다. 당초 약속했던 두 달의 가격 동결 시한이 지나고, 재고도 예상보다 빠르게 소진된 상황에서도 현대차그룹은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달 현대차·기아는 미국에서 총 17만9455대를 판매했다. 전년 동기 대비 10.9% 증가한 수치로, 양사 합산 기준 역대 월간 최다 판매 기록이다.
위기를 기회로 만든 현대차그룹은 관세 악재를 발판으로 미국 시장 내 영향력을 키우는 모양새다. 오히려 미국에서 생산능력을 늘리고 대규모 투자를 예고하면서 자동차부터 철강, 부품까지 이어지는 안정적인 공급망도 확보할 수 있을 전망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1호 투자' 계획을 발표한 현대차그룹은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에 맞춰 올해부터 4년간 미국에 260억 달러(약 36조1500억원) 규모의 투자를 단행한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3월 발표한 210억 달러에서 50억 달러 증가한 규모다.
특히 여기에는 현지 생산을 대폭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다. 지난해 70만대였던 미국 완성차 생산능력을 확대하겠다는 구상이다.
현대차는 당장 이번 하반기 HMGMA 가동률 제고와 부품 현지 조달에 주력할 방침이다. 미국에서 부품 소싱 다변화를 위해 태스크포스(TF)를 가동 중인 상태로, 현재 200여 개 업체로부터 부품 견적서를 받아 국내 수출과 현지 소싱 등을 놓고 최적의 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승조 현대자동차 재경본부장 부사장은 지난 2분기 컨퍼런스콜에서 "중장기적으로는 R&D, 생산, 품질 등 다각적 부분에서 전략적인 부품 현지화를 추진하고자 한다"며 "시나리오별로 완성차 현지생산 확대를 면밀히 검토해 탄력적으로 시장에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효자 상품 '하이브리드차'···특명! HMGMA 생산량을 끌어올려라
올해 상반기 '질적 성장'을 이뤄낸 현대차·기아는 최대 시장인 북미를 중심으로 하이브리드차 등 고수익 차종 중심으로 판매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당장 이달 말로 다가온 미국의 전기차 세액공제(보조금) 폐지까지 감안해 미 현지 공장을 통해 하이브리드를 실적 돌파구로 삼겠다는 것이다.
HMGMA는 혼류 생산 체제도 도입해 전기차와 함께 하이브리드 차종을 내년에 추가 투입함으로써 미국 시장 소비자들의 다양한 친환경차 수요를 충족시킨다는 목표다.
현대차는 최근 HMGMA 수장을 전격 교체하면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허태양 신임 HMGMA CEO는 하이브리드와 기아·제네시스 차종을 순차적으로 도입해 HMGMA의 생산량을 끌어올리는 것이 최우선 임무가 될 전망이다.
장문수 현대차증권 연구원도 "관세 불확실성이 완화되는 구간에서 하이브리드 신차효과와 신규 공장 물량 확대가 경쟁력 제고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와 함께 현대차그룹은 제너럴모터스(GM)와 협력을 통해 신차·현지화 전략을 더욱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최근 양사는 북미 시장용 전기 상용 밴 등 총 5종의 차세대 차량을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 공동 개발 차량의 양산이 본격화하면 연간 80만 대 이상을 생산·판매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대표이사 사장은 "GM과의 전략적 협력을 통해 다양한 세그먼트 영역과 시장에서 고객들에게 지속적으로 더 나은 가치와 선택권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이번 프로그램 발표는 양사 전략적 협업의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7월 한국과 미국의 관세 협상에서 자동차 관세가 기존 25%에서 15%로 낮아지며 올 하반기 일단 한숨을 돌렸다.
당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0% 관세' 혜택이 사라지면서 미국 시장에서 최대 라이벌인 일본·유럽(기존 2.5%) 업체들보다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부담이 커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15%' 동등한 관세 부과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됐고, 수익성을 앞세워 관세 영향을 버틸 경우 현대차·기아의 실적 개선 효과가 경쟁사를 웃돌 것이라는 우호적인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NH투자증권에 따르면 일본 3사(도요타·혼다·닛산)가 최근 관세 협상으로 절감한 금액은 18억4000만 달러로 추정된다. 이는 3사 합산 영업이익(2024년 기준)의 3.6% 수준이다. 반면 현대차·기아가 절감한 금액(18억6000만 달러)은 합산 영업이익의 9.4%로 추산됐다.
하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과 일본 모두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자동차 관세를 15%로 조정해 양국의 관세 절감액 자체는 유사할 것"이라면서도 "현대차·기아는 일본 기업보다 자국 생산 비중이 높기 때문에 실적 개선 강도 측면에서는 한국이 일본보다 크다"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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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김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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