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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 “‘마담 뺑덕’ 결국에는 ‘러브스토리’였다고 생각”

[인터뷰] 정우성 “‘마담 뺑덕’ 결국에는 ‘러브스토리’였다고 생각”

등록 2014.10.10 14:10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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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이수길 기자사진 = 이수길 기자

완전하게 개인적인 의견이다. 정우성의 이런 모습은 사실 원하지 않았다. 우선 정우성의 행동에는 항상 이유가 있었다. 청춘의 흔들리는 표상이었을 때도, 20대의 불완전한 연소체로 언제 타버릴 지 모르는 위태로움 속에서도, 21세기의 최첨단 속에서 기다란 장총 하나와 말을 타고 만주 벌판을 뛰어 다니는 만화적 상상력 속에서도, 피도 눈물도 없는 철두철미한 잔인한 범죄자일 때도. 정우성의 연기 속에선 어떤 이유가 담겨 있었다. “이건 정우성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다”는 대중들의 자발적 설득이다. 반대로는 그의 연기가 대중들을 그렇게 설득한 것이다. 그런 정우성이 파렴치의 기준을 넘어 자기 파괴를 일삼는 나약한 인간으로 돌아왔다. 술과 여자에 빠져 살고 육체적 탐닉에만 온 신경을 집중한다. 영화 ‘마담 뺑덕’ 속 정우성의 심학규는 그렇게 낯설고 힘들고 생경했다. 그래서 정우성의 다른 얼굴이 담겨 있다.

정우성이 이렇게 못된 놈이 된 적이 있었나. 아니 정우성은 왜 못된 놈이 됐을까. 못된 놈 정도가 아니다. 한 마디로 ‘XXX’라고 불러도 전혀 모자람이 없는 인간이 영화 ‘마담 뺑덕’ 속 정우성이 연기한 ‘심학규’다. 영화는 효 사상이 근본인 고전 ‘심청전’을 모티브로 한다. 심청이의 아버지 심학규가 왜 눈이 멀었고, 심학규의 곁을 지키는 뺑덕어멈이 왜 그런 악녀가 됐을까. 영화는 고전을 비튼 재해석으로 묘한 쾌감을 준다. 우선 정우성의 선택이 궁금했다.

“정말 이해하기 힘든 인물이죠 심학규는. 아니 이해하려고 노력했어요. 여자를 대하는 태도가 정말 나쁜 놈이잖아요(웃음). 사랑하지만 사랑하는 게 아니고 그냥 즐기고 버리고. 나중에는 눈이 멀어가면서도 육체적 탐닉에만 집중하고. 작품을 끝낸 지금도 그의 행동에 동의를 할 수는 없어요. 어떻게 사람이 그래요. 에이. 하하하. 그냥 이해하려고 노력했단 얘기 속에는 남성적인 자아가 아주 쎈 인물이라고만 생각을 하고 접근을 했죠. 쉽지 않았어요.”

사진 = 이수길 기자사진 = 이수길 기자

정우성은 심학규에 대한 캐릭터에 ‘나이’를 언급했다. 몇 차례의 연애를 통해 남자와 여자에 대한 감정을 느끼고 세상에 대한 시각이 완숙미에 접어든 40대 중반의 지금이 ‘심학규’를 이해하려 노력할 수 있는 적기라고 생각했다고. 조금은 어려운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의 어려움 속에는 심학규의 복잡다단한 심리가 녹아 든 것 같았다.

“몇 분의 기자 분들은 왜 정우성이 이런 역을 했냐고도 물으시던데요. 글쎄요. 배우가 하나의 정형화된 이미지로 나오는 게 맞는 걸까요. 물론 그런 질문을 왜 하셨는지도 알아요. 정우성은 어떤 강인함 혹은 정의감으로만 나왔던 모습이 많았고, 대중들의 기대에 대한 배반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죠. 하지만 전 배우는 캐릭터를 완성해 나갈 때 가치가 커지는 것 같아요. ‘놈놈놈’ 때도 반대 정말 심했어요. 그런데 전 제가 그려낼 인물의 모습이 보였거든요. 이번에도 단순했어요. 가능하겠단 생각이 있었죠. 쉽지 않지만 가능하겠다. 딱 그거에요.”

그의 가능하겠단 얘기는 상당히 직설적으로 스크린에 그려졌다. 이미 너무 잘 알려진 얘기지만 ‘마담 뺑덕’의 수위는 아주 쎄다. 이 수위가 오히려 정우성에겐 ‘심학규’를 풀어내는 열쇠가 됐다. 욕망과 탐욕 그리고 육체적 탐닉에만 젖어 있고 나아가 자기 파괴의 단계까지 접어든 심학규의 ‘악함’을 그리는 데 효과적인 장치로 작용했다.

사진 = 이수길 기자사진 = 이수길 기자

“몇 장면이 있었죠. 우선 제자(한주영)과의 정사신은 타락과 탐욕의 몸짓을 더욱 극대화로 보여줘야 하는 장면이었어요. 순서적으로 덕이(이솜)와의 결별 뒤 학규의 불안한 심리가 전개되는 순간이기에 좀 과감하게 강하게 나갔죠. 사실 되게 힘들었던 부분은 따로 있어요. 여관방에 덕이를 홀로 두고 나오는 데 그때는 좀 심리적으로도 동요가 되더라구요. 뭐랄까 ‘이거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였어요. 그냥 외면하고 나오는데 상황적으로는 타당한데도 심리적으로는 절대 동의가 안됐죠.”

하지만 영화 속에서 정우성의 ‘심학규’가 낯설면서도 생경하고 그럼에도 빠져들 수밖에 없던 이유가 분명히 있었다. 그렇게 멋진 대학교수가 주변의 모든 것을 잃고 심지어 시력까지 잃어가면서도 이른바 ‘폼새’를 잃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모습이었다. 묘한 설득력이 발생하는 순간이었다. 정우성도 일면 동의하는 것 같았다.

“남자들에게는 대부분 어느 정도의 ‘폼’을 잡으려는 심리가 있잖아요. 그런데 학규는 그게 좀 넘어섰죠. 가족도 잃고 시력까지 잃어가고 경제적으로 모든 것을 다 잃어요. 학교에서도 쫓겨나고. 그런데도 자기가 뭐라도 된 듯한 온갖 폼만 잡고 주변에 헛소리와 허풍만 떨죠. 사실 이 부분부터 좀 성인용 동화에 가깝다고 할까. 좀 그래요. 그런데 그런 학규의 모습이 더 처절하고 초라해지는 거죠. 여성분들은 아마 그 지점부터 꽤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도 있을 거에요. 얼마나 웃긴 놈이에요. 다 잃어가는 마당에. 하하하.”

사진 = 이수길 기자사진 = 이수길 기자

한 남자의 타락과 파괴에 대한 고백서 같은 내용이다. 하지만 정우성은 결국 ‘마담 뺑덕’은 러브스토리라고 전했다. 영화 속을 관통하는 감정이 어떤 변질의 과정을 거치든 어떤 가공을 지나왔던 본질은 사랑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 덕이를 처음 본 순간, 덕이와의 욕정 그리고 덕이를 버리는 순간까지 ‘사랑’이 바탕에 있었단다.

“학규가 덕이에게 느낀 감정은 아주 복잡했을 것 같아요. 처음 느낌은 귀엽고 또 묘한 느낌의 여자 아이가 관심을 보이니 호기심도 생겼겠죠. 워낙 육체적 관계에 집중한 남자라 뭔가 발동하기도 했겠죠. 그렇게 즐기고 사랑했죠. 그러다 서울로 복직이 되고 잠깐의 사랑을 정리해야 하는 좋은 구실이 생긴거고. 그 순간에 상처를 줬죠. 사실 상처도 사랑을 했기에 줄 수 있는 거라 생각해요. 혹은 죄책감이 들어 자신에게 매달리는 덕이를 외면했을 수도 있구요. 그 죄책감도 사랑을 했기에 느꼈지 않을까요.”

정우성은 ‘학규’의 눈에 비친 ‘덕이’를 어떻게 봤을까. 순박한 농촌 처녀의 모습이었고, 학규의 욕심으로 인해 타락하고 버려진 가여운 여인이다. 결국 악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종국에는 학규와 함께 타락과 자기 파괴의 길로 들어서는 설명 불가능한 팜므파탈이다. 하지만 정우성은 조금 다른 해석을 내놨다. 덕이는 기본적으로 도발적인 여자였다고.

사진 = 이수길 기자사진 = 이수길 기자

“영화 처음 장면에서 학규와 덕이가 만나는 부분을 상상해 보면 되요. 이미 덕이는 학규가 자신을 보기 전에 먼저 다가와 있었어요. 이건 유혹의 문제가 아니에요. 누가 누구를 먼저 유혹했고, 그러니 너의 책임이다. 그런 문제가 아니죠. 순수하고 깨끗하다 보니 거부감도 없고 겁도 없는 거에요. 그냥 다가온 것 뿐이죠. 그런데 학규 입장에선, 아마 되게 도발적으로 보였을 거에요. 덕이는 자신의 마음에 충실했을 뿐이지만, 학규는 가정이 있고 사회적 지위가 있는 그럴 수 없는 위치잖아요. 학규의 입장에서 덕이는 분명 도발적인 어떤 매력이 있었을거에요.”

심학규의 복잡다단한 심리를 완성한 것은 아무래도 정우성의 연기력과 함께 그의 호흡을 받아 준 ‘덕이’역의 이솜이란 신인 배우의 공이었을 것이다. 정우성은 이솜을 가르켜 ‘영화계의 원석’이라고 표현했다. 그를 과감하게 캐스팅한 임필성 감독의 안목에도 한 표를 던졌다. 자신의 첫 느낌도 전했다.

“정말 독특한 느낌이었어요. 텍스트로 설명 불가능한 느낌이 강했죠. 임 감독과 사무실에서 처음 이솜을 봤는데 진짜 되게 묘하다는 생각만 들었어요. 배우로서 색깔보다는 어떤 무늬가 있는지를 임 감독이 봤던 거 같아요. 촬영 기간 동안에도 대단한 근성을 보여줬어요. 절대 쉽지 않은 작업인데 감정을 흐트러트리지 않고 끝까지 잡고 잘 해내더라구요. 대단한 여배우 하나가 나온 것만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어요.”

사진 = 이수길 기자사진 = 이수길 기자

그는 ‘감시자들’부터 ‘신의 한수’ 그리고 ‘마담 뺑덕’과 개봉을 앞둔 ‘나를 잊지 말아요’로 무려 4편의 영화로 바쁜 한 해를 보냈다. 그 가운데서도 ‘마담 뺑덕’은 꽤 의미가 깊은 시간을 줬을 듯하다.

“20대였다면 당연히 이 영화 못했어요. 그냥 ‘심청전이잖아’라고만 했겠죠. 텍스트 사이에 있는 여백 속의 의미를 못봤을 거에요. 내가 뭘 채워야 할지도 몰랐겠죠. 아마 30대였다면 그냥 정우성이란 배우가 멋지게만 보이려고 노력했을거에요. 지금의 순간에 내게 왔다는 게 참 고마운 일이에요.”

김재범 기자 cine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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