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07일 월요일

  • 서울 14℃

  • 인천 14℃

  • 백령 17℃

  • 춘천 13℃

  • 강릉 15℃

  • 청주 15℃

  • 수원 13℃

  • 안동 16℃

  • 울릉도 20℃

  • 독도 20℃

  • 대전 15℃

  • 전주 16℃

  • 광주 15℃

  • 목포 17℃

  • 여수 17℃

  • 대구 17℃

  • 울산 17℃

  • 창원 17℃

  • 부산 16℃

  • 제주 17℃

전문가 칼럼 긴축의 시대와 중후장대 제조업의 재정비

전문가 칼럼 양승훈 양승훈의 테크와 손끝

긴축의 시대와 중후장대 제조업의 재정비

등록 2022.12.14 08:56

수정 2022.12.14 09:36

공유

긴축의 시대와 중후장대 제조업의 재정비 기사의 사진

2020년대 청년 구직자들에게 최고의 직장이 어디냐 묻는다면 '네카라쿠배당토'(네이버, 카카오, 라인, 쿠팡, 배달의민족, 당근마켓, 토스) 등 IT유니콘 기업을 빼놓을 수가 없을 것이다. 높은 연봉, 수평적이고 세련되고 스마트해 보이는 조직문화,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 전문성을 인정 받아 이직을 할 때 직급과 연봉을 높이고 스톡옵션을 받는 업계의 분위기 등은 IT 기업들에 대한 청년들의 선호도를 높였다. 특히나 21세기 최고의 직업으로 '프로그래머'에 대한 인기가 미국 실리콘 밸리에서부터 시작해 한국에도 도달하고 있었다.

연공서열제, 수직적이고 성과 완수를 위해 '갈아넣는' 조직문화, 한 직장에 뼈를 묻는 평생 직장인의 보수적인 이미지는 극복되어야 할 것이면서 도태되고 있는 모습으로 보였다. 실제로 오래된 굴뚝 산업의 제조 대기업들은 최근 몇 년 간 그런 문화를 깨기 위해 실리콘 밸리에 부스를 만들어 유학생과 미국 테크기업에 종사하는 한인들을 스카웃 하기 위해 애를 써왔다. 억대가 넘는 미국의 연봉을 맞춰주기 위해 임금단체협상이 적용되지 않는 자회사를 만들기도 하고, 'MS-OFFICE'과 'ERP' 대신 'SLACK'(업무형 메신저)과 'GITHUB'(오픈소스 기반 작업관리 시스템), 그리고 클라우드 컴퓨팅을 도입해 보려고 애쓰기도 했다. 글로벌 스탠다드를 달성해야 한다는 강박까지 결합해 한 동안 과도하게 달린다는 느낌마저 지울 수 없었다. 공무원 인기도 연금개혁과 더불어 최근 몇 년 시들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10년 전만 해도 공과대학의 인기 전공은 '전화기'(전기전자, 화학/화공, 기계공학)였고, 인기 산업 섹터는 '차화정'(자동차, 화학, 정유) 등의 이른바 중후장대 제조업과 '기름집'이었다. 합쳐서 중화학 공업. 앞서 언급한 그 보수적이고 답답한 느낌은 고용보장과 높은 기본급이 주는 매력을 이기지 못했다. 중화학공업은 학교에서 배운 것과는 혁신의 방식부터 달랐다. 중화학공업의 R&D 단계에서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제품혁신'도 있지만, 공정의 QCD(품질, 비용, 납기)를 향상시키기 위해 차근차근 하나하나 점검해가며 다양한 이해당사자들과 끊임없이 지루하게 협의해가는 개선해 나가는 '공정혁신'의 역할이 더 컸다. 지방에 있는 산업도시에서 작업복을 입고 근무하며 단조롭고 루틴하게 일 하는 모습. 그게 좋아서 제조대기업으로 향하는 청년들이 많았다. 굳이 공학도만의 일은 아니었다. 사실 인문사회계열과 상경계열을 엔지니어만큼 뽑지 않아서 못 갔을 따름이다.

중후장대 제조업이 IT업계에게 '우수한 인재'들을 모조리 빼앗기던 시절에도 균열이 가는 모양이다. 최근 아마존을 비롯한 미국의 테크기업들은 정리해고를 시작했다. 적게는 수백, 많게는 수만. 전세계의 유망한 청년들을 끊임없이 많은 연봉과 복리후생, 스톡옵션으로 빨아들이던 주축인 미국의 실리콘 밸리에서 찬바람이 불자 국내에도 고용추세 변화가 벌어지는 중이다. 금리가 올랐고, 돈값이 올랐다. 성장이 이익보다 중요하던 시기에도 한계가 온 것으로 보인다. IT업계로 향했던 기술인력들이 제조업체의 문을 두드린다는 소식이 들린다. 일단은 스톡옵션에 배팅할 것이 아니라 고용안정을 보장받고 기본급이라도 단단하게 지켜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추세는 곧 최근까지도 인력이 없다며 고용난을 호소하는 중후장대 제조업에도 훈풍을 줄지 모른다. 조선소로 엔지니어들이 향할 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럴 때일수록 마중물을 잘 떠놔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좀 더 개방적이고 수평적인 조직문화, 맡은 일과 수행한 성과에 대해서 좀 더 보상하는 임금체계, 적극적인 발탁인사가 벌어져서 여기저기 입소문이 나야 하는게 아닌가 싶다. 나중에 또 새로운 산업의 바람이 불어도 그래야 흔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중후장대 제조업의 인력난이 해소되고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여러모로 낫다. 성실한 평범한 사람들의 일자리를 여지껏 가장 많이 만들어줄 수 있었던 것이 중후장대 제조업이라는 것은 여러모로 검증된 사실이기 때문이다. 모쪼록 정책과 기업 전략의 좀 더 깊은 고민이 있었으면 한다.


관련태그

ad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