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시민들 文-安 어디에도 쏠리지 않는 분위기“반기문·안희정 이탈 이후 열성 지지 이유 사라져”“그래도 충청이 뽑으면 대통령 된다”···자신감 여전
17일 오전 대전역에서 만난 택시기사 김모(61)씨는 대선 얘기가 나오자 말을 잘랐다. 충청도 민심이 오리무중이라는 소리를 하도 들어서 자기도 모른다는 말을 덧붙이며 속내를 감췄다. 오히려 누가 대통령이 될 것 같냐는 질문이 역으로 돌아왔다. 대전 시민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이 말의 체감도는 올라갔다.
“충청이 대통령을 만든다”, “대선 캐스팅보트는 충청이다” 등의 말이 나오는 만큼 대전 시민들은 한쪽으로 쏠리지 않은 모습이었다. 이날 대전 중앙시장에서 만난 슈퍼마켓 주인 이영선(55)씨는 “반기문도 그리되고 안희정도 나가리 됐는데 뭐 좋다고 찍을 일이 있겠느냐”며 “우리집은 문재인도 안철수도 아니고 그날 가봐야 알 것 같다”고 말을 돌렸다.
시장 청과점에서 만난 40대 남성 김모씨는 “주변에 젊은층이나 또래를 보면 문재인이 조금은 많은 것 같은데 저는 안철수”라며 “젊은 친구들이랑 달리 제 또래나 그 이상은 안철수쪽으로 좀 더 표를 줄 것 같다”고 속내를 내비쳤다.
반면 대전 소재 대학교에 재학 중인 김현우(26)씨는 “전임 대통령이 탄핵까지 된 마당에 적폐청산을 할 적임자는 문재인밖에 없다”며 “충청도는 다르다는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제가 체감하기엔 그래도 안철수 후보보다 문재인 후보의 지지세가 좀 더 강한 것 같다”고 전했다. 이밖에 몇몇 시민들은 “그런 거(지지 후보) 말해봐야 달라지는 게 있느냐”, “원래 여기 사람들은 처음 본 타지 사람이랑 정치 얘기 잘 안 한다” “먹고 살기 바빠 죽겠는데 한가한 소리로 들린다”며 고개를 저었다.
실제 최근 여론 조사를 봐도 충청권 민심은 ‘안갯속’이다. 한국갤럽이 지난 4일부터 6일까지 전국 성인 1005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95±3.1%p/그밖의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충청권 유권자 42%가 안 후보를 지지했다. 문 후보는 39%로 2위로 밀렸지만 오차 범위 안이다. 전국 단위에서 문 후보가 38%로 1위(안 후보 35%)를 차지한 것과 비교해 반대의 현상이 나온 것도 눈에 띈다. 이 때문에 이번 대선 국면이 시작된 이후 줄곧 충청권 민심의 향방을 두고 정치권 안팎의 의견이 분분하다.
‘충청의 자랑’으로 꼽히던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과 ‘우리 희정이’로 불리던 안희정 충남지사가 대권에서 이탈하면서 민심이 더욱 소용돌이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자신의 성이 반씨라고 밝힌 한 30대 여성은 “부모님 두 분은 반기문이었고 저는 안희정이었는데 이번에 속된 말로 멘붕이 왔다”며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 모두 이상하게 거리감이 느껴지고 대전에 큰 이득이 될 것 같지도 않다”고 말했다. 다만 이 여성은 “그래도 탄핵 이후 투표가 중요해졌고 문재인 안철수 구도라고 하니까 꼭 한 명은 찍는데 이왕이면 민주당인 문재인 후보를 찍을 것”이라며 “사실 문 후보가 지난번 대선에서 떨어졌다가 이번에 나왔듯이 안희정 후보가 차기 대통령 후보에 나오면 기분 좋게 지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웃어 보였다.
대전 시내 칼국숫집에서 만난 50대 주인 역시 “이번 대선은 날이 따뜻해지면서 우리한텐 재미없게 됐다”며 “세계 대통령이라는 반기문씨도 사라지고 충남을 지극히 보살펴 준 안희정 지사도 문재인 후보에 막혔는데 그럴 바에야 국민을 갈라놓을 것 같지 않은 안철수 후보가 요즘 눈에 들어온다”고 넌지시 말했다.
한 아파트 상가에서 만난 30대 김모씨 또한 “반기문·안희정 표가 안철수한테 갔다는 얘기가 있는데 나도 그곳에 속할 것”이라며 “똑똑한 후보를 뽑겠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했는데 안 후보가 과거 이력을 봤을 때 가장 적합해 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시내 한 휴대폰 판매점 직원인 20대 후반 한모씨는 “반기문과 안희정이라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오히려 젊은 층은 그런 지역 색보다 인생의 어려움을 알고 지금처럼 대한민국 청년층이 어려울 때 그걸 해결해 줄 수 있는 후보를 원한다”면서 “문재인 후보가 그런 면에선 가장 대한민국의 양극화를 잘 이해하고 있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대전 민심이 엇갈리는 것을 두고 구시가지와 신시가지의 경계가 뚜렷해 민심 파악이 더 어렵다는 ‘밑바닥 분석’도 있다. 자신을 대덕 연구단지 종사자라고 소개한 40대 남성은 “서울에서 살다가 일 때문에 내려와 대전에 정착한 지 5년인데 생각보다 다양한 생각과 삶의 방식을 가진 분들이 많은 곳이 이곳”이라며 “대덕을 포함한 인근 일대의 새로운 이주자들과 그렇지 않은 원래 주민들이 많이 섞이면서 안 그래도 속을 알 수 없다고 불리던 충청권 사람들의 생각이 이번 대선 여론조사에 반영된 것 아닐까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이어 이 남성은 “요즘 여론 조사 가지고 말도 많고 한데 적어도 제가 근무하는 연구단지와 자주 가는 생활 구역 내에선 그래도 문재인이 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많이 나온다”며 “분명한 건 충청도가 찍으면 대통령이 된다는 일종의 자신감이 지지 방향을 떠나 시민들에게 공통으로 있다”고 귀띔했다.
이 남성의 말대로 실제 충청권은 대선 승패의 가늠자 역할을 해왔다. 역사상 최초의 정권 교체가 성사된 15대 대선에서 이른바 DJP연합이 충청권의 지지를 받아 김대중 후보 당선에 큰 역할을 했다. 16대 대선 역시 노무현 후보가 충청권 행정수도 이전을 약속해 표심을 끌어냈다.
후보들은 이런 특성을 일찌감치 파악해 대선 공식 일정 첫 날 모두 대전을 방문했다. 문 후보는 오전에 대구를 거쳐 오후에 대전 중구 으능정이 문화의 거리를 찾아 “통합 대통령”을 외쳤다.
안 후보도 이날 오전 지지 기반이 강한 호남에서 분위기를 띄운 뒤 오후 대전 동구 중앙시장을 방문해 “국민이 이긴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대전 역전 시장을 찾아 순대를 먹는 등 ‘시장 음식’ 스킨십으로 공식 일정을 시작했다.

뉴스웨이 임정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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