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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SKT 아직도 특혜설?···실력으로 재계 2위 오른 SK의 'M&A' 승부

산업 재계

SKT 아직도 특혜설?···실력으로 재계 2위 오른 SK의 'M&A' 승부

등록 2023.04.06 15:40

김정훈

  기자

SK그룹 창립 70주년, 최종현·최태원 부자의 'M&A' 뚝심통신사업 특혜設에 SK텔레콤 키워내 실력으로 정면돌파김영삼 시절, 최종현 "실력으로 승부해 정당성을 인정받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해 10월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SK 디렉터스 서밋(Directors' Summit) 2022'에서 강연하고 있다. 사진=SK 제공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해 10월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SK 디렉터스 서밋(Directors' Summit) 2022'에서 강연하고 있다. 사진=SK 제공

오는 8일 SK그룹 창립 70주년을 앞두고 SK를 재계 서열 2위로 성장하게 만든 인수합병(M&A)역사가 또 다시 조명받고 있다. SK는 일부 정치권에서 제기하는 근거없는 통신사업 특혜설에 대해 당당히 실력으로 돌파한 과거 3번의 퀀텀 점프 역사가 있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 30년간 SK의 핵심 성장 동력을 맡았던 계열사는 SK텔레콤이 꼽힌다.

1994년 최종현 선대회장이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하며 탄생한 SK텔레콤은 2012년 하이닉스를 인수하면서 반도체를 포함한 정보통신기술(ICT) 종합기업으로 도약했다. 최근엔 인공지능(AI) 서비스 기업으로 변신을 추진하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해 2월 SK텔레콤의 무보수 미등기 회장으로 보임, SK텔레콤의 기업가치 제고에 가세하는 등 혁신적 변화를 예고했다.

SK텔레콤이 SK그룹의 중추 기업이 될 정도로 성장한 이면에는 실력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패기'가 깔려 있었고 재계는 분석한다.

특히 SK텔레콤은 이동통신사업 진출 당시 정부 특혜를 받았다는 오해를 받았는데, 사실 실력으로 정면돌파한 저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게 오늘날 재평가받는 대목이다.

SK텔레콤의 모태는 1984년 선경 미주경영기획실에 신설된 텔레커뮤니케이션팀이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1980년 유공 인수 이후 중장기 경영목표로 정보통신사업 진출을 정한 뒤 이를 연구하고 준비할 조직으로 텔레커뮤니케이션팀을 설립했다.

이 팀은 당시 정보통신 강국이었던 미국에 현지법인(유크로닉스)을 설립, 글로벌 시장 트렌드를 경험하면서 정보통신산업 진출을 착실히 준비했다. 이후 국내로 들어와 선경텔레콤(이후 대한텔레콤으로 사명 변경)설립으로 이어졌다.

때마침 1992년 4월 체신부가 제2이동통신 민간사업자 선정계획을 발표하자 선경은 사업자 경쟁에 참여했으며 포항제철, 코오롱, 쌍용 등 6개 컨소시엄이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오랜 준비를 거친 선경은 경쟁자를 따돌리며 그 해 8월 사업자로 선정됐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를 앞 둔 집권당 민자당 김영삼 대표가 "현직 대통령의 사돈기업에게 사업권을 부여한 것은 특혜"라고 비판하면서 사정이 꼬였다.

이에 최종현 선대회장은 "특혜시비를 받아가며 사업을 할 수 없다. 오해 우려가 없는 차기 정권에서 실력으로 승부해 정당성을 인정받겠다"며 사업자 선정 일주일만에 사업권을 반납했다.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은 김영삼 정부 시절 재추진하게 됐다. 이 때도 선경은 공정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 정부가 추진한 사업자 선정 과정에 참여하지 않았다.

김영삼 정부는 1993년 12월 제1이동통신 사업자(한국이동통신) 민영화와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을 동시 추진하면서 전경련이 주도해 제2이동통신사업자를 선정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동통신사업자 선정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복잡하니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정리하라는 취지였다.

하지만 최종현 선대회장은 정부 발표에 앞서 1993년 2월 전경련 회장으로 추대된 상태였다. 최 선대회장은 전경련 회장으로서 선경을 제2이동통신 사업자로 추천할 경우 공정성 시비가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아예 불참을 선언했다.

대신 막대한 인수자금이 들어가는 한국이동통신 공개 입찰에 참여키로 했다. 민영화 발표 전 8만원 대였던 한국이동통신 주가는 30만원까지 수직 상승했다. 선경은 한국이동통신 주식을 시가보다 4배 이상 높은 가격인 주당 33만5000원에 인수했다.

선경 내부에서조차 지나치게 높은 가격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하지만 최종현 선대회장은 "이렇게 비싸게 사야 나중에 특혜시비가 일지 않는다. 회사가치는 앞으로 더 키워가면 된다"며 논란을 일축했다.

실제 한국이동통신 인수 직후 선경은 통신 기술 고도화에 집중했다. 1996년 1월 세계 최초로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디지털 이동전화를 상용화해 글로벌 이동통신시장에 이름을 알렸다. CDMA 방식은 세계 표준으로 확산되면서 한국이 CDMA 기술 종주국이라는 위상도 덤으로 가질 수 있게 됐다.

이런 역사에 있었기에 재계에선 SK텔레콤이 노태우 정권으로부터 특혜를 받아 이동통신산업에 진출한 것이 아닌, 정반대로 정치적 이슈에 휘말려 사업권을 반납했던 과정을 정확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SK 측은 "당시 공정성을 위해 정부가 요청한 선정 과정에는 불참하는 등 오히려 불이익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뉴스웨이 김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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