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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대학교 10·19연구소 정미경 연구원, '여순사건' 소설로 증언

순천대학교 10·19연구소 정미경 연구원, '여순사건' 소설로 증언

등록 2022.03.16 08:00

김재홍

  기자

정미경 연구원, 5년째 유족들의 상처 직접 채록·정리부끄러운 역사에 대한 남겨진 자·살아남은 자들의 증언 기록

순천대학교 10․19연구소 정미경 연구원순천대학교 10․19연구소 정미경 연구원

정미경 소설가의 첫 소설집『공마당』(문학들 刊)은 1948년 10월에 일어난 '여순사건'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소설 어디에도 '여순사건'이라는 말은 등장하지 않는다. 생생하고 절절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을 뿐이다.

저자는 순천대학교 10·19연구소 (구, 여순연구소)에서 5년째 유족들의 상처를 직접 채록·정리하는 일을 해왔다.
"채록을 한 날이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트 들러 막걸리 한 병을 샀다. 녹화된 영상에서 그분들의 말을 옮겨 적으며 나는 한순간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죽어간 사람들, 그들을 가슴에 묻고 행여 가슴옷자락 풀며 튀어나올까 봐 숨 한 번 제대로 쉬지 못하고 살아온 사람들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이 소설집에 수록된 소설들은 채록을 하는 틈틈 한 문장씩 쓴 것이다."(「작가의 말」)

살아남은 자들에게 생존의 대가로 남겨진 수치심과 부끄러움, 트라우마를 작동시키는 공포의 징후들, 신경증적 우울, 생존에 대한 강박적 집착, 순결과 위생에 대한 강박증 등 정미경 소설의 인물들이 겪는 증상들은 망각과 시간에 저항하면서 하나의 사건을 가리키고 있다.

바로 '여순사건'이다. 1948년 10월 여수와 순천을 포함 전남 동부에서 발생했던 군인들의 반란과 진압 과정에서 자행되었던 '양민학살'이다. 2010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여수·순천 사건' 당시 민간인 124명이 군인과 경찰에 의해 집단 희생된 것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1948년 11월 전남도 보건 후생당국의 피해조사에서는 전남 동부지역 6개 시군에서 2633명이 사망하고 825명이 행방불명된 것으로 확인된다. 유족들은 1만 명에 가까운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와 같은 불일치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록과 기억이 온전히 객관적일 수 없다는 사실과 더불어 기억하기 위한 글쓰기의 행위가 종결될 수 없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정미경 소설가의 첫 소설집 『공마당』 표지정미경 소설가의 첫 소설집 『공마당』 표지

이 소설집에 실린 이야기들은 모두 해당 사건 이후 남겨진 자 또는 살아남은 자들의 증언들이다. 작가가 양민학살이라는 부끄러운 역사에 대한 증언만이 아니라 그로 인해 차별받고 마녀사냥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인물들과 그 가족들의 삶에 대해 주목했기 때문일 것이다.

비극은 '손가락질'로부터 시작되었다. 어린 시절 손가락질로 사람을 죽게 한 트라우마로 정신병을 앓는 엄마를 소녀의 시선으로 그린 표제작 「공마당」, 순경들이 마을에서 "좀 모자란 놈'을 골라 손가락질을 하도록 한 「독사의 뱃가죽」, 고문 끝에 친구의 동생을 지목할 수밖에 없었던 「금목서」 등등.

예를 들면 「신전」의 문홍주는 14세의 빨치산 소년병이다. 전투 중 허벅지에 총상을 입었던 소년병을 신전마을로 데려간 산사람들은 아이를 보살펴주고 일체 함구할 것을 요구한다. "노출이 될 시에는 마을을 전멸"시킬 거라고 엄포한다. 마을 사람들은 그 협박 때문이 아니라, 소년병인 문홍주가 이웃 마을 한약방 집의 손자였고,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마을을 드나들었던 까닭에 전혀 낯설지 않았다. 치료를 받고 돌아간 소년병은 얼마 후 국군과 함께 나타났다. 그리고 '손가락질'로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이년이 밥해 줬어." "이년은 감 따 줬어." "이년은 내 옷을 빨아 줬어." "이놈이 나를 치료해 줬어." ···소년병의 손가락질 하나가 빨갱이와 내통했다는 증거가 되었고, 그날 밤, 신전마을 32가구 중 12가구 24명이 총을 맞고 쓰러졌다.

정미경의 기억 작업은 역사적 사건에 대한 문학의 윤리가 무엇인지 또 이야기의 힘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작가는 증언에 편집을 거치지 않고 플롯을 생략하고 날것의 언어들을 그대로 담아내기도 한다.

할매 손가락 사이에서 나는 봤네, 틀림없이, 그 백설기같이 흐컨 발을. 쏜살같이 지나가는 독사의 황금빛 뱃가죽을 보대끼 그렇게 본 거여. ···(중략)··· 사람들이 나보고 항상 밝다고 하는디 나가 밝게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흐컨 발 때문이여. 그 흐컨 발이 인생이 감추고 있는 비밀이고 진실이여. 사는 것이 다 헛것이여. 진실 그런 게 있다요. 아버지의 뭉개진 얼굴이 진실인디 그것으로부터 눈을 거둬 본 흐컨 발은 거짓부렁 아니요. 나는 한마디로 진실을 외면해 부렀제.(「독사의 뱃가죽」)

정미경의 소설들에 쓰인 그녀들의 진한 전라도 사투리에는 의례화되고 기념비화되는 역사적 의미를 초과하는 정동이 스며 있다. 그러니 반드시 이 소설들의 증언을 읽을 때에는 소리 내서 읽어 볼 것을 권한다.(김영삼, 문학평론가)

원로소설가 한승원은 이번 소설에 대해 "이념 다툼 속에서 진압이라는 잔인한 폭력에 의해 인간이라는 생명체들이 어떻게 죽임을 당하고, 상처 입은 그들이 어떻게 얼병 들고, 어떤 정신적 외상을 안고 살았으며, 그게 얼마나 슬프게 후세에게 물려졌는가 하는 실존을 예리한 카메라로 각인하듯 찍어"냈다고 평했다.

2022년 1월 21일, 10·19 여순사건 발발 73년 만에 제정된 여순사건 특별법이 시행되었다. 2022년 2월 9일에는 '10·19 여순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실무위원회'가 출범했다. 하지만 아직도 가야 할 길이 요원하다. 특별법 제정은 4·3 제주사건에 비해 20년이나 뒤처졌고, 희생자들의 위로와 그 유가족들의 상처를 어루만져 줄 제대로 된 기념 공간조차 없다.

정미경 작가는 1964년 전남 순천에서 태어났다. 순천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국어국문학과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4년 <광주매일>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순천대학교 국어교육과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순천대학교 10·19연구소>에서는 5년째 10·19유족증언채록을 하고 있다.

뉴스웨이 김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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