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베호벤은 ‘반 인간’ 즉 ‘로보캅’이란 캐릭터 자체보단 자본주의의 상징인 미국 내에서도 공업과 항만의 중심지였지만 극심한 경기 변동과 실업문제 그리고 흑인폭동 등으로 ‘파산’에 직면한 ‘디트로이트’가 가진 이면성에 더욱 끌렸을 것이다. 그 이면성을 ‘로보캅’이란 캐릭터를 통해 투영시키며 우리가 기억하는 ‘로보캅’을 만들어 냈다.
2014년 버전 ‘로보캅’은 원작이 불러일으킨 사이버펑크 장르의 새로운 해석을 다시금 재구성하는 시점으로 그려나간다. 콘크리트 잔해, 슬럼가 등과 대비된 거대한 마천루의 물결은 과거 원작에서 중동 이란의 수도 테헤란 치안 통치를 담당하는 옴니코프사의 모습으로 옮겨간다. 눈길을 끄는 점은 미디어의 대중 선동이 2014년 ‘로보캅’의 이른바 ‘내레이션’ 역할을 담당한다는 것. 팻 노박(사무엘 L 잭슨)이란 전 세계를 아우르는 미디어 권력 정점이 옴니코프사 수장 레이먼드 셀라스(마이클 키튼)와 손잡고 미국의 전 세계 치안 통치 정당성을 주장하고 나선다. 이런 흐름이 바로 ‘로보캅 프로젝트’로 이어지게 된다. 로봇의 불안전한 판단성을 ‘인간의 감정으로 조정할 수 있지 않을까’란 발상에서 출발하자는 의미다. 덧붙이면 전 세계를 상대로 미국이 휘두르는 무소불위 권력에 대한 일종의 풍자성을 그리는 것일 수도 있다.
누군지 알 수 없는 공공의 적(?)에게 폭탄 테러를 당한 알렉스 머피(조엘 킨나만)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안드로이드’가 된다. 아내 클라라(애비 코니쉬)는 옴니코프사의 종용에 결국 남편의 로보캅 지원을 결정한다.
여기까지가 원작과 비슷한 구도의 흐름이다. 하지만 알렉스 머피가 로보캅이 된 뒤부터는 원작과 지금의 버전은 약간의 흐름 차이를 보인다. 원작이 ‘반 인간’ 로보캅의 정체성 복귀에 중점을 둔 채 디트로이트란 도시의 이면성 결합에 집중했다면, 지금의 버전은 ‘로보캅’ 알렉스 머피의 인간성 회복을 가족애란 키워드에 맞춰 버린다. ‘호르몬 수치’를 인공적으로 조정, 남아 있는 인간성마저 꺼버린 옴니코프사의 만행에 아내 클라라가 절규하는 장면은 2014년 버전 ‘로보캅’의 중심이 어디를 향하는 지를 말한다.
스포일러이기에 모든 것을 공개할 수 없지만 몸의 극히 일부만 남은 채 새로운 몸으로 교체하는 장면에서 ‘로보캅’에게 “준비됐나?”라고 묻는 닥터 데넷(개리 올드만)의 마지막 질문은 27년이 지난 시점에서 ‘로보캅’이 다시 리메이크될 수밖에 없던 이유와 왜 지금의 스토리가 완성됐는지 해답을 제시한다.
원작 ‘로보캅’이 디스토피아적 배경 속에서 벌어지는 인간성 상실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묻는 다소 철학적인 질문에 집중했다면, 2014년 버전 ‘로보캅’은 인간성 상실의 원인이 붕괴된 사회 시스템에 있지만, 문제 해결의 방법은 아이러니하게도 사회 구성의 최소 단위인 ‘가족’ 안에 있다고 말한다.
영화 전체의 분위기는 충분히 미국적이며 할리우드적인 감성이 여러 곳에서 묻어난다. 1987년 버전 ‘로보캅’이 둔탁한 움직임 등 기계적인 무거움을 보였다면 2014년 버전의 ‘로보캅’은 원작의 기본 베이스 아래 보다 날렵해진 느낌이 강하다. 원작은 ‘로보캅’에게 보다 기계적인 모습을 강조했다면 지금의 ‘로보캅’은 수트를 입은 ‘인간’에 가까운 모습이다.
이밖에 원작 속 로보캅이 타고다니던 패트롤카는 최신형 바이크로 교체됐고, 원작 속 ‘로보캅’의 호적수로 등장한 거대 이족 보행 로봇 ED-209는 더욱 현대적인 감각으로 다시 디자인됐다. 여기에 인간형 공격 로봇 EM-208의 새로운 가세도 눈길을 끈다.
리얼한 액션 연출과 긴장감 넘치는 전개로 평단의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 영화 ‘엘리트 스쿼드’로 제58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금곰상을 수상한 호세 파딜라 감독의 할리우드 진출작이다. 국내 개봉은 오는 13일. 미국 개봉은 12일이다.
PS : 그런데 2014년 버전 ‘로보캅’의 오른손은 왜 굳이 기계로 교체하지 않았을까. 데넷 박사님 말씀 좀 해주시길.
김재범 기자 cine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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