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만난 한 바이오텍 대표는 국내 바이오 시장을 이렇게 표현했다. 언론에서는 바이오 혹한기가 어느 정도 해소되고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지만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체감은 여전히 '차디찬 겨울'이다. 특히 비상장 바이오벤처는 말 그대로 버티기의 연속이다.
본질은 '눈치싸움'이다. 계약은 체결됐지만 정작 자금은 들어오지 않는다. 벤처캐피털(VC)들이 서로 먼저 움직이기를 꺼리기 때문이다. 누군가 먼저 스타트를 끊어야 나머지도 뒤따라 움직인다. 그 사이 기업은 자금 공백을 견뎌야 하고 때론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다.
왜 주저할까. 위 바이오 대표는 조심스레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바이오 산업은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도 성과가 보장되지 않는다. 성공보다 실패 확률이 훨씬 높고 설사 성공하더라도 시장에 안착하기까지는 끝없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여기에 한국 특유의 IPO 중심 회수 구조는 부담을 더한다. 비상장 바이오 기업에 투자한 VC는 회수 수단이 거의 없고 투자 실패의 책임도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최근 한 VC 관계자는 "신약보다 의료기기 비중이 빠르게 늘고 있다"고 전했다. 상대적으로 성공률이 높은 분야로 투자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는 움직임이다.
신약 개발 스타트업은 더욱 위태롭다. 연구단계에서는 기술력이 뛰어나도 눈에 보이는 수익성이나 숫자가 없으면 뒷순위로 밀린다. 그런데 상장 전 자금 조달은 어렵고 기술이전 같은 '성과'를 보여주기까지는 여력이 부족하다. '성과 → 투자 → 연구개발'이라는 선순환 고리가 만들어지지 않는 셈이다.
기업의 선택지도 좁아진다. 한 바이오 기업 관계자는 "예전엔 인간 생명을 먼저 생각했다면 요즘은 어떻게 매출을 낼 수 있을지부터 고민한다"고 했다. 매출 가능성이 높은 적응증을 좇거나 테마주처럼 주목받는 기술에 편승하려는 유혹도 커진다. 이는 결국 '실패를 감당할 수 없는 구조'에서 비롯된 부작용이다.
하지만 글로벌 빅파마들은 실패를 딛고 다시 도전하며 성과를 만든다. 실패는 예외가 아니라 과정이며 바이오 창업자에겐 운명과도 같은 존재다.
그래서 지금 이 생태계에 필요한 것은 '실패를 허용하는 구조'다. 한 번의 실패로 끝나는 게 아니라, 다음을 준비할 수 있는 기회와 환경이 주어져야 한다. 그것이 진짜 바이오 육성이고 바이오 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몇 년째 한국 바이오 시장에는 겨울이 계속되고 있다. 이 혹한을 끝내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먼저 실패할 용기를 내는 투자자와 기업이 있을 때, 비로소 바이오 산업의 계절도 바뀔 것이다.

뉴스웨이 현정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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