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기차 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외형의 중심은 완성차지만, 그 아래에는 배터리 셀, 그리고 그보다 더 아래에는 소재·부품이라는 뿌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면, 겉으로 아무리 화려해 보여도 결국 전기차 산업은 오래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 마치 보기에는 멀쩡하지만 속은 텅 빈 '빛 좋은 개살구'라는 말처럼요.
한때 우리나라 배터리 시장은 황금기였습니다. 국내 배터리 기술과 제품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인정받았고, 전 세계 완성차 업체들로부터 러브콜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일부 기업은 한 분기에만 3조원이 넘는 역대급 매출을 경신하며 전성기를 실감케 했죠.
소재 기업들도 콧노래를 불렀습니다. 양극재, 음극재, 전해질, 분리막 등 배터리의 핵심 요소를 공급하는 국내 기업들도 전기차 호황에 힘입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습니다. 물론 당시 환율 상승과 선제적인 원자재 확보 등의 전략이 유효했지만, 그동안 축적해 온 기술력과 설비투자가 빛을 보는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전기차 산업은 이른바 '캐즘(Chasm, 일시적 수요 정체)' 여파를 직격탄으로 맞았다는 평가가 잇따르고, 리튬과 니켈 등 핵심 원자재 가격도 큰 폭으로 출렁이고 있습니다. 게다가 중국산 저가 배터리와 소재 제품들도 국내 시장에 빠르게 침투하며 우리나라 기업들의 설 자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중국의 입지 확대가 매섭습니다. 소재 부문에서는 지난해 양극재 출하량 상위 5위권을 중국 업체들이 싹쓸이하면서 국내 업체들은 순위 밖으로 밀려났습니다. 국내 기업들의 출하량은 대부분 5~8만 톤 수준에 머물며 점유율이 크게 줄었고, 중국은 저가 공세를 앞세워 시장 주도권을 빠르게 넓혔습니다.
음극재 시장에서도 중국의 독점 구조는 더욱 뚜렷합니다. 실제 지난해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음극재 적재량의 95%는 중국 업체들이 차지했습니다. 특히 샨샨, BTR 같은 중국 소재 기업들은 CATL이나 BYD 등 자국 배터리 기업과 우리나라 일부 기업에도 납품하며 사실상 전 세계 주요 고객사를 확보했습니다. 한국에서는 포스코퓨처엠이 유일하게 글로벌 톱 10에 이름을 올렸지만, 적재량도 2만4000톤에 불과해 점유율이 미미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 위기가 일시적 침체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전기차 시장은 이제 실수요 중심의 경쟁 국면에 접어들었고, 중국은 저가 공세와 기술 개발 속도를 높여 전 세계 주도권을 빠르게 가져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는 정부의 장기 투자가 절실합니다. 소재 산업은 꽃이 아닌 뿌리입니다. 전기차 산업이 다시 피어나기 위해서는 기술 자립과 공급망 안정화 같은 전략적인 해법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정부의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입니다. 소재 산업의 미래를 위한 정부의 투자 결단을 기대해봅니다.
관련태그

뉴스웨이 전소연 기자
soyeon@newsway.co.kr
저작권자 © 온라인 경제미디어 뉴스웨이 ·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