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눈에 ‘워킹걸’도 리스크가 컸던 작품임에는 틀림없었다. 스스로도 시나리오를 전해 받은 뒤 ‘그저 그런 섹시 코미디’로 치부했었다니 말이다. 조여정은 ‘제발 영화를 보고 판단해 달라’는 말을 관객들에게 꼭 하고 싶단다. 자신의 전작 속 ‘쎈’ 이미지와 상대역인 클라라의 ‘핫’한 그림자, 여기에 ‘○○걸’로 불리는 이른바 ‘~걸’ 시리즈의 제목은 이 영화의 선입견을 굳히게 만드는 악재들이었다. 극중 조여정의 남편으로 나온 김태우는 제작발표회 현장에서 ‘정말 죽이는 영화다’며 자화자찬을 서슴치 않았다. 물론 입에 발린 말은 아니었다.
“영화 보셨으니 아시잖아요. 그냥 단순하게 보고 즐길 만 한 포인트가 많지만 ‘섹시’로만 소비될 얘기는 절대 아니에요. 조여정이 나오고 ‘섹시스타’ 클라라가 나온다. 그런데 소재가 성인용품을 다루고 있다. 여기에 노출도 좀 있을 것이다. 이건 누가 봐도 ‘그저 그런 섹시 코미디’란 점 저도 인정해요. 그런데 제발 한 번만 보시고 나면 아닐 거란 점 제가 자부할께요(웃음)”
개봉 후에도 맘고생이 심했나 보다.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그의 눈에는 조금 눈물이 맺혀 있는 듯했다. 주변 지인들의 관람 후기가 쏟아지면서 고생했던 마음이, 걱정했던 마음이 조금은 보상 받았다는 기분도 들었다고 솔직하게 전했다. ‘웃기는 데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는 응원의 메시지가 조여정의 걱정을 눈 녹듯이 흘러내리게 만들었다고.
“사실 영화에 대한 기대는 정말 컸죠. 연출을 맡은 정범식 감독이 만든 ‘기담’을 보고 너무 기대가 됐던 작품이에요. 장르 자체가 공포영화잖아요. 그런데 전 ‘기담’을 멜로 영화라고 생각하고 봤어요. 공포란 장르 속에 멜로의 감성을 녹여내는 감독님의 기술이 정말 대단했던 것 같아요. 진짜 정 감독님이 궁금했죠. 그리고 ‘워킹걸’이 왔으니. 표면적으론 완벽한 섹시 코미디인데 그 안에 가족극이 있어요. 너무 궁금했어요. 이 얘기를 어떻게 풀어갈지.”
그의 기대 흥미로 이어졌고, 좋은 결과로 연결됐다. 우선 조여정은 두 가지에서만 집중했다. 엄마 역에 대한 소화 그리고 성인용품에 대한 관객들이 갖는 선입견 탈피였다. 엄마와 성인용품은 사실 연결점에서 어떤 접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연기하는 배우 입장에선 생소함이 넘쳤다.
“사실 엄마 역할은 은근히 많이 했어요. 제가 결혼 안한 처녀라고 엄마 역할에 벽을 두거나 하지는 않아요. 어차피 제가 하는 일이 연기인데. 지금보다 훨씬 전에도 일일드라마에서 두 아이 엄마역도 했는데요 뭘 하하하. 전작인 ‘후궁’에서도 엄마였고, ‘표적’에선 임산부고, ‘인간중독’도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역이니. 그러고 보니 진짜 많네요(웃음). 성인용품들은 진짜 저도 신기했죠. 사실 좀 웃겼던 게 너무 현실감이 떨어진다는 생각도 했어요. 근데 오히려 개봉 후 여성분들이 ‘워킹걸’에 대한 거부감이 더 없다고 하더라구요. 그건 반대로 우리 영화가 건강하다는 증거 아닐까요.”
그의 말처럼 영화 속 설정들은 사실 ‘성인용품’이란 소재만 등장할 뿐 흡사 할리우드 영화 ‘찰리와 초콜렛 공장’의 비주얼을 가져온 것같은 느낌이 강했다. ‘백보희’(조여정)가 일하는 장난감 회사의 시스템 설정, 여기에 오난희(클라라)와 백보희 함께 창업한 ‘성인용품점’의 전반적인 미장센 자체는 성인영화의 그것이라고 하기엔 색다른 감성이 넘쳤다. 이런 그림은 조여정과 클라라, 조여정과 김태우의 케미를 통해 더욱 극대화됐다.
“이번 작품을 통해 두 사람에게 정말 고마워요. 전 그냥 제 역할에만 몰입하고 합을 맞췄을 뿐인데 그걸 정말 고마워하더라구요. 특히 클라라가 그랬어요. 배우로서의 연기적 배려인데 그 부분에서 너무 고마워하니 저도 그 친구가 다르게 보였죠. 실제로도 정말 너무 열심히 하는 친구였어요. 태우 오빠가 아니었다면 백보희란 캐릭터는 없었죠. 연기할 때 상대역에게 내가 얼마나 마음을 열고 또 반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고. 그럴때에 따라 연기 톤이 달라지는 데 오빠는 정말 모든 걸 다 열어줬어요. 진짜 이번 영화에서 두 사람과의 호흡은 최고였어요.”
조여정은 사실 ‘워킹걸’을 통해 엄청난 중압감과 부담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충무로에선 사라진 ‘여성 투톱’ 영화에 대한 성공 가능성 여부가 ‘워킹걸’의 흥행 성적에 좌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성공이 ‘여성 영화’에 대한 충무로의 시각을 바꿔낼 수도 있고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단 점을 잘 알고 있다.
“아마도 내가 ‘인간중독’에 출연한 뒤부터 인거 같아요. 저한테 오는 시나리오 속 인물이 거의 비슷해요. 아니 사실상 ‘방자전’ 이후부터라고 봐도 되죠. 여배우의 소비가 이렇게 밖에 안되는 구나란 점에선 정말 아쉬워요. 뭔가 다른 점을 보여 줄 수도 있을 텐데 말이죠. 그런 기회 자체가 만들어 지지 않으니 더 아쉬운 것 같아요. 그래서 더욱 ‘워킹걸’에 애착이 가는 거 같아요.”
혹시 ‘워킹걸’을 찍으면서 더욱 결혼에 대한 생각이 굳어진 것은 없을까. 혼기가 꽉찬 여배우에겐 공식 질문으로 마무리를 해봤다. 조여정에게 결혼은 아직도 먼 얘기일까. 아니면 ‘워킹걸’ 속 ‘백보희’처럼 일과 가족 그리고 사랑 세 마리 토끼를 모두 노리는 조여정일까. 대답은 간단했다.
“전 지금이 가장 좋은데요. 하하하.”
김재범 기자 cine517@

뉴스웨이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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