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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바이오 꿀꿀이죽 '대체 식량'에서 '수출 효자'로

유통·바이오 식음료 한국라면 60년

꿀꿀이죽 '대체 식량'에서 '수출 효자'로

등록 2023.03.27 14:12

수정 2023.03.29 09:09

유지웅

  기자

그래픽=배서은 기자그래픽=배서은 기자

한국인의 밥상에 라면이 올라온 지 올해로 60년을 맞았다. 라면은 한국인의 '소울푸드'로 자리매김했다. 1960년대 이후 단시간에 압축적으로 진행된 한국 근대화를 가장 잘 반영하는 음식이기도 하다. 출출할 때 한 끼를 책임져주는 음식일 뿐만 아니라, 그 안에는 과거 꿀꿀이죽을 먹었던 우리나라 국민들의 애환이 담겨있다. 한국 라면의 60년 역사를 되짚어봤다.

삼양, 60년 라면 외길

국내 최초의 라면은 '삼양라면'이다.

삼양식품이 1963년 일본으로부터 제조 기계·기술을 도입, 라면을 출시했을 때 시장 반응은 냉담했다. 쌀 중심 식생활 문화는 라면 활성화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라면은 옷감이나 실, 플라스틱으로 오해받기도 했다. 끓여먹는 방법이 생소해 삼양식품 직원들은 극장, 공원을 돌며 무료 시식행사를 벌이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라면은 '쌀이 없어서' 인기 식품으로 자리 매김 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쌀을 대신할 수 있는 식량은 미국으로부터 원조받은 밀가루였다. 정부는 식량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혼분식 장려운동'을 펼치면서 라면 소비를 권장했다.

이름은 '장려'였지만 실제론 '강제'에 가까웠다. 모든 음식점은 밥에 보리쌀이나 면류를 25% 이상 혼합해 판매해야 했고 '분식의 날'이 지정됐다.

이 정책으로 밀가루와 면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고 새로운 음식문화가 조성됐다. 한국인의 주식은 쌀과 보리에서 쌀과 밀로 바뀌었다.

삼양라면의 월 판매량은 1966년 240만 봉지에서 1969년 1500만 봉지로 크게 늘었다. 매출액은 초창기 대비 300배 증가했다.

라면 수요가 늘어나자 수많은 회사가 라면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후 시장은 삼양이 주도하고 롯데(농심)이 뒤따르는 2파전 형태로 압축됐다.

1960년대 삼양라면 광고. 사진=삼양식품 제공1960년대 삼양라면 광고. 사진=삼양식품 제공

차별화로 1위 꿰찬 농심

라면의 대중화는 삼양이 이뤘지만 발전을 이끈 것은 농심이었다.

농심은 삼양보다 2년 늦게 라면 사업을 시작했다. 삼양과 농심의 시장 점유율은 1970년 9:1 비율에 육박했다. 격차는 점차 좁혀져 1985년 농심은 삼양을 추월했다. 연이은 신제품의 성공 덕이다.

농심은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상품을 내놨다. 안성에 스프 전문공장을 만들고 스프 연구를 통해 '안성탕면'을 만드는가 하면, 기존에 면과 스프가 잘 섞이지 않던 짜장라면의 단점을 보완해 '짜파게티'를 만들었다. 최초의 우동 컨셉 라면인 '너구리'도 이 시기에 나왔다.

'신라면'의 출현은 라면 맛의 변화를 상징했다. 한국 라면 시장에서 매운맛이 부각되는 결정적인 계기였다.

당시 한국 라면은 일본식 치킨라면에 영향을 받은 까닭에 한국인 입맛엔 다소 느끼한 편이었다. 농심은 느끼한 맛 제거하고 매운맛을 첨가함으로써 소비자 기호를 만족시켰다.

인기에 힘입어 농심은 서울올림픽 공식 후원 업체로 선정됐고, 특수를 톡톡히 누렸다. 경기장에서 농심 '육개장사발면'을 먹는 외국인들의 모습이 TV를 통해 비춰지면서 용기면이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농심은 1988년부터 시장 점유율을 50% 이상 기록하면서, 과거 구도를 완전히 역전시켰다.

서울올림픽에서 육개장사발면을 먹는 외국인들. 사진=농심 제공서울올림픽에서 육개장사발면을 먹는 외국인들. 사진=농심 제공

1980년대엔 한국야쿠르트, 청보(1999년 오뚜기가 인수), 빙그레가 후발 제조업체로 라면 시장에 뛰어들었다. 치열한 '라면 전쟁'을 겪으면서 덤핑 판매, 판촉 경쟁 같은 부작용이 발생하기도 했다. 대신 라면의 상품 경쟁력이 크게 상승, 수출이 확대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서민 음식에서 '한국인의 매운맛'으로

라면은 1997년 IMF 외환위기를 맞아 서민들의 생활에 더욱 깊숙이 자리 잡게 됐고, 경기침체에도 한국 라면시장은 오히려 성장했다. 2003년엔 빙그레가 라면 사업에서 철수하자 농심, 삼양식품, 오뚜기, 한국야쿠르트 등 4개 사의 경쟁체제가 굳어졌다. 2013년 국내 라면 시장 규모는 2조원을 넘어섰다.

한국 라면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135개국에서 한국 라면이 팔린다. 지난해 라면 수출액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올해는 해외 매출이 국내 매출을 처음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뉴스웨이 유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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