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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ESG 평가산업 발전의 최소 조건

전문가 칼럼 류영재 류영재의 ESG 전망대

ESG 평가산업 발전의 최소 조건

등록 2022.12.22 09:20

수정 2022.12.22 09:31

 ESG 평가산업 발전의 최소 조건 기사의 사진

지난주 미국의 한 대학에서 회계와 ESG를 연구하는 한국인 교수가 우리 회사를 방문했다. 우리는 공통의 관심사인 ESG를 화제로 유익한 대화를 나눴다. 특히 그 분과의 대화를 통해서 해외 연구자가 바라보는 한국의 ESG 평가산업에 대해 비교적 객관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분의 의견을 들어 보자.

"이제 해외에서 한국의 위상이 크게 달라졌어요. 10년 전하고도 또 다릅니다. 특히 문화와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는 한국을 배우고자 하는 해외 연구자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와보면 그러한 세상의 변화를 못 느끼는 것 같습니다. 대체로 연세가 높으신 분들은 여전히 우리 것을 과소평가하고 해외 것을 상대적으로 존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해외 이론이나 영어로 된 기사가 전가의 보도인 양, 그것들을 익히고 국내에 알리기에만 급급하지요. 앞으로는 우리나라에서도 한국 맥락에 부합하는 창의적인 ESG 평가 방법론이나 연구물들이 많이 나와 국내에 소개되는 것은 물론이고, 해외로도 수출되어야 합니다."

필자의 평소 생각과 같아 공감하며 들었다. 주지하듯 ESG 이슈들 중 특히 'S'와 'G'분야는 나라별 지역별 고유성과 특수성이 강하다. 기업문화, 사회적 인식, 경제 발전 단계, 산업 구조, 정책 방향 및 규제 체계 등에서 다른 까닭이다.

따라서 서구 중심적으로 발전되어 온 ESG 평가 잣대를 한국 기업들에게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흡사 서구인 체형에 맞는 옷을 한국인들에게 입히는 것과 같다. 당연히 한국인에 맞게 수선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듯이 ESG 평가도 그렇다.

부연하자면 EBITDA, ROIC 등과 같은 재무적 평가 지표는 미국이나 아프리카, 동아시아 상장기업 등 지역과 문화가 달라도 함의 점이 같다. 따라서 해당 지표는 지역과 나라가 달라도 비교 가능성 측면에서 유용성을 갖는다.

하지만 'ESG 평가 잣대'는 동일한 항목일지라도 미국과 동아시아 국가 간 맥락 등이 달라 달리 평가하고 해석해야 한다. 예컨대 미국 맥락에서의 직장 내 다양성(Diversity) 항목에서는 '인종 및 국적의 다양성' 수준이 중요하지만 한국 맥락에서의 그것은 '성별 다양성'이다.

이코노미스트誌의 (여성) 유리천장 지수상 한국은 최근 6년 동안 OECD 29개국 중 부동의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 점을 방증하며 뒷받침한다.

그 밖에도 S의 산업재해·대중소 기업 간 불공정 거래(갑질)·전투적 노동운동', G에 있어서 취약한 소수주주권·형식적 이사회 운영 등은 한국 맥락에서의 특징적 현상들이다. 내재적 분석과 접근이 요청되는 부분이다.

따라서 ESG 평가는 본질적으로 국가별·지역별 차이점과 맥락이 고려돼야 한다. 그러할 때 투자대상 기업들의 진정한 ESG 위험과 기회요인을 적확하게 판별하고 해석해낼 수 있고 그것이 투자자들이나 여타 이해관계자들에게 의미 있는 시사점이 될 수 있다.

이점에서 글로벌 다국적 평가사들이 그들 관점의 단일한 평가 기준으로 세계 기업들을 그들의 틀에 맞춰 평가하는 것은 자신들의 기준을 절대화하고 강요하려는 '일방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필자의 증권회사 경험에 따르면 전통적인 재무 분석에서도 경험 많고 실력 있는 해외 기관투자자들일수록 한국 기업에 대해서는 해외 증권사보다 로컬 증권사의 판단을 더욱 중시했다. 로컬 지식과 정보 취합에 있어서 같은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는 국내 증권사가 훨씬 유리하다고 믿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백보 양보하여 재무 분석에 있어서는 그것의 상대적 보편성 측면을 고려할 때 단일한 글로벌 스탠더드에 근거한 글로벌 기관들의 분석 결과를 존중할 수도 있다.

하지만 ESG 분야는 본질적으로 그 성격이 크게 다르기에, 나라별 지역별 맥락과 특성이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 즉 로컬의 주체적 관점에서 서구의 그것들을 부분적으로 수용하여 절충한 평가 모델이나 방법론이 실질적이며 합리적이다.

지금 국내외적으로 ESG 평가산업은 새로운 출발선 위에 서있다. 서구의 평가 기관들이 상대적으로 오랜 역사를 갖고 있지만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ESG 평가의 메인스트림과 출발 시점에서 보면 서구 기관들이나 동아시아 기관들이나 오십보 백보 차이에 불과하다. 어찌 보면 동일한 출발선에 다시 서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런 면에서 국내 ESG 평가산업에도 향후 무궁무진한 기회가 열려 있다. 우리나라의 금융위 등 정책 당국자들은 이점에 주목해야 한다.

즉 이 기회를 잘 활용하면 한국의 ESG 평가 방법론이나 분석 결과물이 한국에 투자하는 해외 투자자들에게 활용되며 세계로 나갈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한국 ESG 평가 산업은 도태되고 결과적으로 한국 기업들은 MSCI나 Sustainalytics 등 글로벌 평가 기관들의 평가체계에 맞춰 우리 체형에도 맞지 않는 ESG 경영이나 ESG 정보공시를 강요받을 수 있다. 그들의 평가를 잘 받기 위해 해외 근로자들을 형식적으로 채용하는 웃지 못할 일들도 벌어질 수 있다. 이것은 기업 경영의 요체인 효율성과 생산성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다.

따라서 정책당국자들은 ESG 평가산업의 공정한 시장 생태계를 만드는 데 최우선적으로 역점을 둬야 한다. 평평한 플레이그라운드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한 조건 하에서 ESG 평가사들의 공정한 경쟁이 일어날 수 있다.

즉 혁신과 열정을 쏟아부어 글로벌 경쟁력 있는 평가 모델과 방법론, 전략 등을 개발하고 그것이 시장을 통해 적정한 가격으로 회수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현재와 같이 특정 공공기관에서 상업적 목적으로 ESG 평가 기준을 정하고 평가를 시행해 나간다면 한국의 ESG 평가 시장은 레몬 마켓 화하여 ESG 평가 부문의 혁신 유인과 동기부여도 기대할 수 없다. 발전은커녕 현상 유지나 퇴보가 명약관화하다.

외람되지만 필자는 지난 17년 동안 국내 ESG 평가산업의 발전을 위해 힘든 여정을 걸어왔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는 하나의 꿈 때문이었다. 즉 한국 기업에 투자하는 해외투자자들에게 독보적인 영향력을 갖는 글로벌 ESG 평가사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의 ESG를 외재적 타자적 관점이 아닌 우리의 주체적이며 내재적인 관점에서 발전시키고 더 나아가 그것을 해외로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력은 전적으로 필자 본인의 몫이다.

하지만 정책 당국자들의 균형 있고 사심 없는 판단도 요구된다. 그것은 지원을 해달라는 것이 아니다. 공정한 시장 여건의 조성,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다. K- 팝, K-드라마, K-푸드처럼 K-ESG 평가의 글로벌화를 다시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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