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5월 17일 금요일

  • 서울 16℃

  • 인천 18℃

  • 백령 15℃

  • 춘천 14℃

  • 강릉 19℃

  • 청주 20℃

  • 수원 17℃

  • 안동 16℃

  • 울릉도 15℃

  • 독도 15℃

  • 대전 19℃

  • 전주 20℃

  • 광주 19℃

  • 목포 19℃

  • 여수 20℃

  • 대구 18℃

  • 울산 19℃

  • 창원 20℃

  • 부산 20℃

  • 제주 21℃

‘악의 연대기’가 명품이라고 불려야 하는 이유

[무비게이션] ‘악의 연대기’가 명품이라고 불려야 하는 이유

등록 2015.05.08 15:24

김재범

  기자

 ‘악의 연대기’가 명품이라고 불려야 하는 이유 기사의 사진

죄는 어떤 이유를 불문하고 나쁘다. 죄는 사람이 행한다. 죄를 행한 사람은 나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죄를 저질렀다면 그 사람은 나쁜 사람일까. 시간이란 불과분의 요소가 그 사람을 죄와 가깝게 만들었다면 과연 죄가 나쁜 것일까 그 사람이 나쁜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른 무엇인가를 찾아서 ‘나쁘다’란 원죄의 독배를 덮어 버려야 하나. 그것도 아니면 ‘죄를 지은 사람은 무조건 나쁜 사람이다’로 정의를 내려야 하는 것인가. 영화 ‘악의 연대기’는 이 끊어질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 같은 악에 대한 원론적 질문을 직설적 화법으로 얘기한다. 2003년 영화 ‘튜브’ 이후 12년 만에 돌아온 백운학 감독의 절치부심이 러닝타임을 꽉 채운다.

영화는 앞서 언급한 직설적인 질문을 영화 시작과 함께 곧바로 관객들에게 던진다. “자,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최창식 반장(손현주)은 대통령 표창을 받은 전도유망한 강력계 형사다. 자신의 상관인 서장(정원중)의 신임을 바탕으로 진급 및 본청 발령을 앞두고 있다. 자신을 굳게 믿고 따르는 팀원들도 있다. 적당한 타락까지 겸비한 최창식이다. 표창을 받은 그날 강력계 팀원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뇌물로 받은 상품권 뭉치를 바로 밑 부하 직원 오형사(마동석)에게 던져주며 “애들과 나눠써라”고 웃는다. 기묘하면서도 아이러니한 장면이다. 청렴결백의 상징인 표창장과 함께 부패의 전유물인 뇌물이 찰나의 시간차를 두고 한 인물을 지나간다. 이는 최창식이란 인물의 과거와 현재를 의미하는 중요한 도구다.

 ‘악의 연대기’가 명품이라고 불려야 하는 이유 기사의 사진

그런 최 반장에게 뜻하지 않은 사건이 발생한다. 대통령 표창 환영을 겸한 팀 회식 후 집으로 가던 그는 괴한에게 납치를 당한다. 괴한과 격투를 벌이던 중 불의의 사고로 그를 죽이고 만다. 그 순간 서장으로부터 걸려온 전화 한 통. 본청 인사과장에게 자신의 승진 로비를 벌이고 있다는 서장의 말을 듣는 순간 최 반장은 갈등한다. 신고를 하느냐 이대로 덮어두느냐. 악마의 유혹에서 진 최 반장은 사건을 덮어버린다. 하지만 다음 날 그 시체가 경찰서 앞 공사장 타워 크레인에 매달린 채 나타난다. 희대의 살인사건이 터지고 공교롭게도 이 사건은 최 반장 담당이 된다.

‘악의 연대기’는 배우 손현주의 연기가 만들어 낸 일종의 고해성사다. 한때 정의롭고 열정 넘치던 최창식은 이제 없다. 대신 적당한 타협, 때에 따라 흐름과 협상을 통한 비리를 친구처럼 느끼고 지내는 반(半) 부패 형사 최창식만 남아 있다. ‘시간은 인생에 적당한 때와 더러움을 입히는 가장 적절하고 완벽한 도구’란 점을 이 영화는 말한다. 살기 위해 조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창식은 자신의 신념을 조금씩 잘라내 버린다. 그 과정에서 드러난 최창식의 숨은 과거는 이 영화의 제목이 왜 ‘악의 연대기’인지, 그리고 대체 누가 최창식을 겨냥하고 시체를 매달아 도발적인 경고장을 보내는지에 주목을 하며 더욱 관객들에게 시작과 함께 던진 질문의 해답을 요구한다. “이래도 당신은 망설이고만 있을 것인가.”

 ‘악의 연대기’가 명품이라고 불려야 하는 이유 기사의 사진

사실 ‘악의 연대기’는 성공의 정점에서 나락으로 떨어진 채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원죄의 굴레에 빠진 한 인물에 대한 고해성사라고 보기엔 구조적 복잡성이 강하다. 이 모든 작업은 한 인물이 설계한 거대 복수극이다. 그 복수는 인물들의 원죄 의식과 강하게 결합된 채 어느 순간 관객들의 뒤통수를 강하게 때리며 진짜 질문을 던진다. 과연 ‘악이란 무엇인가’라고.

이미 시작부터 완벽하게 설계가 된 치밀한 사건의 전개도는 최 반장이 느끼는 심리적 압박감이 커질수록 그를 궁지로 몰아넣는다. 한 차례 사건의 균열이 일어나지만 이마저도 설계의 한 부분이었음을 알게 될 때 최 반장은 사면초가로 몰린 채 자신에게 던져진 도전장의 실체와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관객들은 끊임없이 영화가 던진 질문의 실체와 마주한 채 그 누구도 지금까지 완벽하게 해답을 정리하지 못한 ‘죄와 죄를 저지른 인간 중 누가 더 나쁜 것인가’에 더 접근한다.

 ‘악의 연대기’가 명품이라고 불려야 하는 이유 기사의 사진

물론 이 영화가 마지막 장면을 통해 보여 준 그림은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은 결코 아니다. 최 반장은 자신의 행동 종국에는 어떤 파멸의 행태로 다가오는지를 바라보며 마지막 슬픔을 터트린다. 그의 눈에 비친 범인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아들의 모습은 ‘악의 연대기’란 기묘한 제목과 얽힌 채 또 다시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고 또 돌고 된다.

‘악의 연대기’는 반전의 묘미가 큰 영화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장면 속 장치와 복선 그리고 손현주의 미묘한 감정 변화를 담은 표정 연기를 보는 재미만으로도 102분의 러닝타임이 짧다. 오랜만에 등장한 명품 스릴러다.

 ‘악의 연대기’가 명품이라고 불려야 하는 이유 기사의 사진

이런 배우들, 이런 얘기 그리고 이런 반전을 바로 명품이라고 불러야 한다. 개봉은 오는 14일. 15세 관람가.

김재범 기자 cine517@

뉴스웨이 김재범 기자

ad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