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광물 제련소는 단순한 해외 투자 그 이상경제안보·산업 경쟁력 움켜쥐는 상징적 장면최윤범 회장, 경제안보 플레이어 막중한 역할

고려아연은 미국 현지에 전략광물 제련소를 독자적으로 건설·운영한다. 앞으로 아연·연·구리·은은 물론, 안티모니·게르마늄 등 전략광물 전반에서 기술과 생산, 공급을 아우르는 지배적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중국 의존도가 높은 핵심광물 분야에서 미국이 가장 필요로 하는 '신뢰 가능한 공급자'로 자리매김한다는 점에서 그 상징성은 작지 않다.
이번 프로젝트는 미국 정부와의 합작 구조를 택했다. 두 가지 측면에서 명확한 이득이 있다. 첫째, 외교·안보 차원의 협력 강화다. 둘째, 고려아연의 중장기 성장동력을 미국 시장에서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길이다. 기업과 국가의 이해가 드물게 완벽히 일치한 사례다.
미국이 제시한 AI 동맹 구상, 이른바 '팍스 실리카(Pax Silica)'는 반도체·AI·양자컴퓨팅·국방 산업의 기초가 되는 핵심광물 공급망을 탈중국화하겠다는 선언이다. 미 국무부는 "안전하고 회복력 있는 기술 공급망"을 강조하며, 신뢰할 수 있는 동맹국과의 깊은 협력을 전제로 한다고 못 박았다.
이 구상 속에서 고려아연은 단순한 해외 기업이 아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미국의 핵심 광물 판도를 바꾸는 획기적인 거래"라고 평가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고려아연이 운영할 미국 제련소는 사실상 중국에 맞서는 '미국의 안보 자산'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크다. 항공우주·국방·AI·전기차 산업에 필수적인 13종 전략광물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핵심광물 공급망은 더 이상 개별 기업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의 산업적 명운과 직결된다. 미국이 전략 경쟁의 승부처로 AI를 지목한 이상, 그 기초 소재를 누가 공급하느냐는 안보 문제다. 고려아연의 현지 제련소는 미국이 안티모니 등 희귀금속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실질적 해법을 제공한다. 이는 한국 기업이 한·미 경제안보 협력의 실체적 축으로 들어섰다는 의미다.
기업 측면에서도 이번 선택은 결정적이다. 미국 정부와 기업들은 전기차·배터리·신재생에너지·전력 인프라에 대규모 투자를 집행 중이다. 이에 따라 아연·연·구리·은과 핵심광물 수요는 구조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다. 온산제련소만으로는 대응이 어려운 물량을 미국 현지에서 생산·공급함으로써, 고려아연은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한 단계 끌어올릴 기회를 확보했다.
미국 정부가 출자자로 참여하는 구조 또한 중요하다. 인허가·정책·규제 리스크를 최소화해 신속한 건설과 안정적 운영이 가능하다. 이는 단기 실적을 넘어, 미국 핵심광물 시장의 구조적 성장에 올라타는 장기 안정 성장 모델에 가깝다.
이번 프로젝트는 미국의 공급망 안정과 고려아연의 사업 확장이 서로를 필요로 한 결과다. 글로벌 경쟁자들에게 기회가 넘어가기 전에 선제적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점에서, 고려아연은 '타이밍'을 읽은 기업이다. 동시에 한국 기업이 미국의 전략 구상 안으로 깊숙이 들어간 사례라는 점에서, 한국 정부의 경제안보 외교에도 적지 않은 의미를 남긴다.
나는 이번 투자가 단순한 성공 사례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 본다. 고려아연은 이제 광물 기업을 넘어, 글로벌 경제안보 플레이어로 진입하고 있다. 이 흐름을 한국 정부와 산업계가 어떻게 확장·연결하느냐에 따라, 향후 10년 한국 제조업의 위상 또한 달라질 것이다.
관련기사
뉴스웨이 윤철규 기자
bdrunner@newsway.co.kr
저작권자 © 온라인 경제미디어 뉴스웨이 ·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