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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이건희가 키운 삼성, 마침내 이재용 체제로

이재용 회장 시대

이병철·이건희가 키운 삼성, 마침내 이재용 체제로

등록 2022.10.27 14:53

수정 2022.10.27 14:58

윤서영

  기자

삼성 터닝포인트···이병철 '도쿄 선언'이건희, '글로벌 삼성' 발돋움의 주역'이재용 시대' 본격 개막···뉴삼성 기대

이병철·이건희가 키운 삼성, 마침내 이재용 체제로 기사의 사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할아버지 이병철 선대회장과 아버지 이건희 전 회장에 이어 3대(代) 회장으로 삼성그룹을 이끌어 가게 되면서 '이재용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했다.

이병철 회장은 전자산업의 불모지였던 한국의 반도체 산업을 일으킨 양대 주역으로 평가된다. 일본의 소니와 파나소닉 등에 비해 아시아의 이름 없는, 그저 삼류 전자회사에 불과했던 삼성전자가 전환점을 마련한 것은 1983년 2월 8일 이 회장의 '도쿄 선언'이었다.

앞서 삼성전자는 1974년 반도체 사업에 진출했지만, 도쿄 선언을 하기 전까지는 어디에 내놓을 만한 실적을 거두진 못했다. 이 회장은 도쿄 선언을 통해 본격 반도체 사업 진출 계획을 발표했지만 국내외에서는 '자본과 시장, 기술이 없는(이른바 '3불가론') 한국의 반도체 진출은 말이 안 된다'며 발목을 잡았다.

그럼에도 삼성전자는 기흥사업장 착공에 나섰고 통상 18개월 이상이 걸리는 반도체 공장을 6개월 만에 지었다. 또 도쿄 선언을 했던 해에는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3번째로 64킬로바이트(Kb) D램을 개발하기도 했다. 이 회장의 확신에 찬 결단이 없었다면 수십 년간 전 세계 반도체 왕좌를 지켜왔던 인텔을 제치고 올라서면서 반도체 산업 역사를 다시금 쓰고 있는 현재의 삼성전자 모습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픽=박혜수 기자그래픽=박혜수 기자

이건희 회장은 이병철 회장이 시작한 반도체를 비롯해 휴대폰 등 핵심 사업을 본격적으로 부흥시켜 오늘날의 삼성을 일궈냈다. 이병철 회장의 별세로 1987년 경영권을 물려받은 이건희 회장의 1993년 6월 7일 프랑크푸르트 '삼성 신경영 선언'도 대대적 혁신으로 이어졌다.

이 회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임직원 회의에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모두 다 바꾸라'며 양보다 질을 중시하는 신경영 혁신을 주문했다. 이를 통해 이 회장은 삼성전자를 '글로벌 삼성'으로 발돋움하는 데에 공을 세웠다.

삼성전자는 1994년 10월 첫 '애니콜' 제품을 내놓으면서 외국 휴대전화가 주류를 이뤘던 국내 휴대전화 시장의 판도를 뒤바꿨다. 'D램 신화'에 이은 '애니콜 신화'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 회장은 신경영 선언 이후 소니와 파나소닉의 30년 '전자 왕국'을 무너뜨리며 일본 기업을 뒤따르던 추격자에서 선도자로 거듭났다. 난공불락이던 핀란드 노키아 피처폰과 스마트폰 원조로 불리던 미국 애플도 제쳤다.

그러나 1999년부턴 이 회장에게도 어려움이 닥친다. 폐 림프절에서 암세포가 발견돼 수술을 받기도 하고 1997년 외환위기 후 다른 그룹과의 '빅딜'마저 실패한 탓에 2000년에는 본인이 가장 사랑했던 자동차 사업에서 철수하게 된다. 이 회장은 당시 사재 2조8000억원을 내놔야 했다.

2006년에는 삼성비자금 사건이 터졌고, 1년여 이상 삼성특검 조사가 끝난 뒤 기소돼 2008년 4월 22일 경영쇄신안을 내놓으며 삼성과 관련된 모든 직책에서 물러났다. 2년 가까이 칩거한 이 회장은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사면된 이후 2010년 3월 삼성전자 회장으로 경영에 복귀했다.

이후 이건희 회장은 지난 2014년 5월 서울 용산구 자택에서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6년 5개월여 간의 투병 끝에 2020년 10월 25일 새벽 향년 7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이수길 기자 leo2004@newsway.co.kr 이재용 삼성전자 신임회장, '회계부정·부당합병' 1심 속행 오전 공판을 마치고 나오면서 회장 취임 소회를 밝히고 있다.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이수길 기자 leo2004@newsway.co.kr 이재용 삼성전자 신임회장, '회계부정·부당합병' 1심 속행 오전 공판을 마치고 나오면서 회장 취임 소회를 밝히고 있다.

이재용 회장은 2014년 부친 이건희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후 그룹 경영을 총괄해왔다. 그동안 '회장'이라는 타이틀을 달진 않았지만 그룹의 총수 역할을 해왔다.

조부 이병철 선대회장 시대에는 '관리의 삼성', 부친 이건희 회장 시대에선 '전략의 삼성'으로 통했다면 이 회장은 부드러운 리더십을 내걸며 '이재용식 삼성'을 지향해왔다. 또 이 회장도 조부와 부친처럼 위기 앞에서 결단과 확신에 찬 리더십을 보이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이 회장은 글로벌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초격차 기술력' 확보와 '인재 양성'을 강조해왔다.

이 회장은 지금까지 성장을 주도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휴대전화, TV 등 주력 사업에서 초격차 전략으로 시장 리더십을 강화해나가고 있다. 인공지능(AI)과 5G, 전장, 바이오·헬스 분야 등을 신성장동력으로 삼고 사업 확대를 위한 경영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이외에도 이 회장은 이병철 선대회장과 이건희 회장의 '인재 제일' 경영 철학에서 '임직원과 회사가 함께 성장하는 조직'으로 발전시키는 등 조직 혁신도 주도해왔다.

이는 '뉴삼성'으로 도약하기 위해 경직된 조직문화가 아닌 유연한 조직문화를 만들고 수평·적극적인 소통 혁신을 지향하는 조직으로의 변화를 기대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이제는 이 회장이 삼성의 혁신 의지를 계승해 뉴삼성의 미래를 이끌어갈 리더십을 보여줄 때가 왔다.

이 회장은 27일 사내게시판을 통해 '미래를 위한 도전'이라는 제목으로 취임사를 갈음하며 "꿈과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기업,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는 기업, 세상에 없는 기술로 인류사회를 풍요롭게 하는 기업, 이것이 여러분과 저의 하나된 비전, 미래의 삼성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늘의 삼성을 넘어 진정한 초일류 기업, 국민과 세계인이 사랑하는 기업을 꼭 같이 만들자"며 "제가 그 앞에 서겠다"고 포부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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