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세탁·불법 송금, 미흡한 감독체계 책임론행정지도 남발로 가상자산 법체계 도입 절실
올해 수백억 원대의 자금이 불법 온라인 도박과 연루된 캄보디아 거래소로 빠져나가면서 우리 가상자산 규제 체계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이 사태를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미 수개월 전부터 의심스러운 자금 흐름을 포착했다. 업비트에서는 지난 3월께 캄보디아 후이원 거래소로의 자금 이동을 선제적으로 차단했고, 빗썸은 4월 말께 이를 차단했다.
반면 당국은 5월 1일 미국 재무부의 후이원 거래소 관련 제재 발표 이후에야 손을 썼다. 그간 '행정지도'라는 이름으로 업계를 좌지우지해온 당국이 정작 필요한 순간에는 법적 근거 부족을 핑계 삼은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됐다.
앞서 당국은 행정지도로 업계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2017년 코인 공개발행(ICO)을 행정지도로 틀어막은 데 이어 인가제로 운영 중인 원화 마켓 거래소를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해왔다. 그 사이에 원화마켓에 도전한 수많은 가상자산 스타트업들이 도산했다.
법적으론 아무런 제약이 없었으나 당국의 명문화된 규칙이 없으니 업계는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고 혁신은 자연스레 위축됐다.
또한 당국이 손을 놓고 있는 통에 국내 가상자산업은 물론 감독 체계도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기는커녕 역량 미달이 드러났다. 가상자산 사업자(VASP) 인가·갱신을 담당하며 국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 오던 금융정보분석원도 최근 국정감사에서 빗썸의 오더북 공유 건 하나를 처리하는 데도 인적·물적 자원 부족을 호소했다.
미국과 유럽이 가상자산 규제 시스템을 속속 구축하는 동안 우리는 기본적인 감독 인프라조차 갖추지 못한 상황 속에서 담당 인력 확충을 포함해 시스템 도입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당국이 행정지도로 일관되게 고수한 그림자 규제로 국내 시장이 글로벌 스탠다드에서 멀어지게 되면서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국감에서 지적받은 캄보디아 사태는 결국 당국이 근원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미봉책만을 남발하면서 이를 키운 셈이 됐다.
캄보디아 사태가 부상하기 전까지 스테이블코인 도입부터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도입까지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됐으나 이번 사태로 해당 안건들이 '자금 세탁'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됐다.
업계는 정부발 입법인 가상자산 기본법 2단계안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있다. 당국에서는 이르면 이달 내 발표를 목표로 하겠다는 방침을 내걸은 바 있다.
하지만 이 법안이 골든타임 내에 발표되지 않는다면 업계의 실망감은 극에 달할 것이다. 더군다나 국회에 표류된 디지털자산법의 통합 체계가 마련되지 않을 경우 국내 시장은 또다시 불확실성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다.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 가상자산은 이미 주류 자산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은 지니어스법을, 유럽은 MiCA법을 통해 체계적인 규제 틀을 완성했다. 반면 우리는 여전히 법적 근거도 없는 행정지도에 의존하며, 사후약방문식 대응에 급급하다.
이제 당국은 선택해야만 한다. 법제화를 통해 예측 가능한 규제 체계를 구축할 것인가, 아니면 그림자 규제로 또 다른 부메랑을 맞을 것인가.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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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한종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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