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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노태우 비자금'이 스모킹 건···원점 돌아온 'SK家 이혼소송'

산업 재계

'노태우 비자금'이 스모킹 건···원점 돌아온 'SK家 이혼소송'

등록 2025.10.16 16:15

수정 2025.10.16 16:31

차재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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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법한 재산 보호할 수 없어"···대법, 파기환송 "노 관장의 '선경 300억 메모'가 결국 자충수로"최태원 측 "사회적 오해 해소 계기···다음 재판에 만전"

최태원 SK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4월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이혼 소송 항소심 공판에 출석한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최태원 SK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4월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이혼 소송 항소심 공판에 출석한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불법의 원인으로 인하여 재산을 급여하거나 노무를 제공한 때에는 그 이익의 반환을 청구하지 못한다.'(민법 제746조)

천문학적 재산분할 액수를 사이에 둔 SK가(家) 이혼소송을 원점으로 되돌린 것은 결국 '노태우 비자금 의혹'이었다. 부정한 방식으로 주고받은 자금까지 보호해선 안 된다는 입법 취지와 사회적 여론이 법원 판결에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항소심 과정에서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측이 갑작스럽게 꺼내든 '선경 300억' 메모가 끝내 발목을 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16일 오전 10시 열린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관장 이혼소송의 상고심 선고기일에서 재산분할 액수를 약 1조4000억원으로 책정한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작년 5월 2심 재판부(서울고법 가사2부)는 최 회장과 노 관장의 합계 재산을 약 4조원으로 보고, 그 중 35%에 해당하는 1조3808억원을 분할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665억원을 지급하라는 1심의 판단보다 20배 늘어난 수치다.

이날 대법원이 사안을 돌려보내겠다고 선언하면서 최 회장과 노 관장은 또 한 번 서울고등법원에서 다툼을 이어가게 됐다. 재심리를 거쳐 대법 판결로 이어지기까진 수개월, 길게는 1년이 걸릴 것으로 점쳐진다.

판결에 앞서 세간의 시선이 모인 대목은 갑작스럽게 등장한 '선경 300억' 메모를 과연 대법원이 어떻게 바라보느냐였다. 상고심에서 재산분할액을 1조4000억원으로 산정하는 근거였고, 몇 장의 메모를 공개한 그 행위가 사람들에게 군사정권의 비리를 다시 떠올리게 만드는 상징적 사건이 됐기 때문이다.

노 관장 측은 재판 중 어머니 김옥숙 여사가 보관하던 메모를 제시하며 아버지 노태우 씨가 과거 선경에 300억원을 전달했으니 자신도 재산 형성에 기여한 셈이라는 논리를 폈다. 이에 재판부도 그 주장을 수용해 분할 액수를 1심보다 20배 끌어올리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를 놓고는 말들이 많았다. 과거 검찰 수사에서 밝혀지지 않은 군사정권의 비자금이 드러난 모양새가 됐고, 갑작스럽게 등장한 증거물임에도 진위 감정이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적법하지 않게 조성된 자금을 상속·증여세 없이 대물림하는 격이라며 환수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이 가운데 나온 대법원의 메시지는 명확했다. 노 관장 측의 주장이 사실일지라도 위법하게 주고받은 재산까지 법으로 보호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민법도 똑같이 규정하고 있다. 사법의 기본이념으로서 사회적 타당성이 없는 행위를 한 사람을 법의 보호영역 외에 둬 스스로 한 급부의 복구를 어떤 형식으로도 소구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대법원은 "원심이 인정한 바와 같이 피고(노 관장)의 부친 노태우가 원고(최 회장)의 부친 최종현에게 300억원 정도의 금전을 지원했다고 보더라도, 이 돈의 출처는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재직하는 동안 수령한 뇌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어 "노태우가 뇌물의 일부로서 거액의 돈을 사돈 혹은 자녀 부부에게 지원하고 이에 관해 함구함으로써 국가의 자금 추적과 추징을 불가능하게 한 행위는 선량한 풍속 그 밖의 사회질서에 반한다"면서 "반사회성·반윤리성·반도덕성이 현저해 법의 보호영역 밖에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피고가 노태우가 지원한 돈의 반환을 구하는 게 아니라 재산분할에서 피고의 기여로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불법성이 절연될 수 없다"면서 "결국 노태우의 행위가 법적 보호가치가 없는 이상 이를 재산분할에서 피고의 기여 내용으로 참작하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렇다 보니 재계 일각에선 노 관장의 '카드'가 패착이었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스스로 비위를 들춰낸 격이어서다. 특히 '선경 300억 메모'는 재심리 중에도 핵심 쟁점으로서 지속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진실을 밝히기 위한 정부 당국의 수사가 본격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 회장 측은 대법원 판결에 한시름을 덜었다. 원심이 확정될 경우 1조4000억원을 마련하느라 유동성 압박에 시달리고 그 여파가 그룹으로 전이될 수도 있었는데, 급한 불을 꺼 안도하는 분위기다. 덧붙여 SK를 향한 사회적 오해를 풀었다는 데도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재근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판결 직후 "SK가 노태우 정권의 불법 비자금이나 지원 등을 통해 성장했다는 부분을 놓고, 대법원이 이를 부부 공동재산의 기여로 인정한 것은 잘못이라고 선언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면서 "일각의 억측이나 오해가 해소되길 희망한다"고 역설했다.

아울러 "재판이 끝난 게 아니기 때문에 파기환송심에서도 원고(최 회장)는 최선을 다해 재판에 임할 것"이라며 "대법원 판결을 분석한 뒤 재판에 대응할 예정"이라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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