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두 발로 걷는 로봇···'넘어질 각오'가 미래를 연다

오피니언 데스크 칼럼 남영동에서

두 발로 걷는 로봇···'넘어질 각오'가 미래를 연다

등록 2026.03.20 06:00

차재서

  기자

reporter
걷는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불안정한 동작이다. 한 걸음을 뗄 때마다 한 발로 서는 아슬아슬한 장면이 연출되며, 균형을 잃을 듯하다 회복하는 과정이 반복된다. 단순히 다리만 움직이는 행위가 아니다. 여러 감각과 신경이 동시에 작동할 뿐 아니라, 직·간접적으로 동원되는 근육만 200여 개에 이른다. 이족보행은 인류가 수백만년에 걸쳐 획득한 진화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학계에선 로봇이 걸을 수 있겠냐는 질의에 회의적이었다. 복잡한 원리를 과연 계산식으로 도출해낼 수 있겠냐며 혀를 내둘렀다. 기업의 생각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족보행 로봇은 기술·사업적으로 합리적이지 않은 선택지일 수밖에 없다. 관절 수를 크게 늘려야 하는 만큼 에너지 효율은 떨어지고, 자칫 크게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공들여 만든 고가의 하드웨어가 파손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연초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현장 또 우리 주식시장에서 포착된 '로봇 신드롬'은 여기서 출발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두 다리로 서서 앞으로 나가려는 시도 자체가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자본을 끌어당기고 있다. 기존의 로봇이 그저 잘 만들어진 '제품'이었다면, 새로 나온 것은 미완성임에도 일상에 더 가까운 존재 또는 '동반자'로 받아들여지는 듯 하다.

그런데 한 걸음 물러서 보면 다른 생각이 떠오른다. 이 전도유망한 산업에서 우리나라가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냐는 의문이다.

현대차그룹의 휴머노이드 아틀라스와 LG전자의 클로이드가 올해의 '히트작'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만 아쉬운 측면도 있다. 클로이드는 바퀴 기반의 이동 방식에 머물렀고, 미국에서 출발한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연혁을 감안했을 때 아틀라스는 온전히 우리의 성과로 보기 어렵다.

그만큼 우리는 뿌리를 충분히 내리지 못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역량을 보유하고도 해외에 상당 부분을 의존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가 연초 공개한 보고서에서 양면이 여실히 드러난다. 한국은 산업용 로봇 설치 대수 세계 4위, 로봇 밀도(근로자 1만명당 로봇 대수) 세계 1위다. 활용도 측면에선 글로벌 최상위권을 자랑한다. 반면, 공급망은 취약하다. 로봇 핵심소재 영구자석의 88.8%를 중국에 의존하며, 감속기·제어기와 같은 부품도 일본·중국에서 대부분 사온다. 국산화율이 40%대에 불과하다.

소프트웨어 분야도 다르지 않다. 로봇의 기본 동작과 균형 유지, 학습을 좌우하는 프로그램마저도 외국에 기대고 있다. 조금 과장해서 챗GPT와 제미나이 없인 아직 한 발짝도 내디딜 수 없다. 정부가 독자 AI(인공지능) 생태계 구축을 목표로 움직이고, LG를 비롯한 여러 기업도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우리 AI와 로봇의 결합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몸'은 강한데, '뇌'는 완전히 붙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우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활용자'이면서도 '무엇을 만들고 쌓을지', '어디까지 감수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에 소홀했던 셈이다. 춤추는 중국 로봇 옆에서 우리의 약점은 더욱 선명히 드러난다. 10년 전부터 정부 차원에서 로봇 산업을 육성한 중국은 올해 관련 분야를 위해 1조 위안(217조 2700억원) 규모 국가 벤처 펀드를 조성하겠다며 아낌없는 지원을 예고했다. 우리가 가능성을 저울질하는 사이 그들은 이미 방향을 잡아 움직이고 있다.

우리 앞에 떨어지는 질문은 하나로 수렴한다. '지금까지 얼마나 잘 따라왔느냐'가 아니라 '앞으로 얼마나 감당할 각오가 돼 있느냐'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경쟁력 확보를 위해 정부·민간 차원의 공격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는 진부한 메시지가 되겠지만, 빨리 가자고 재촉하는 것은 아니다. 더 오래, 더 깊이 그리고 넘어질 가능성까지 끌어안는 선택을 해달라는 제언이다.

이족보행 로봇이 상징하는 바는 단순한 기술의 진보에 그치지 않는다. 높은 실패 가능성을 감수하겠다는 선택, 효율과 안정성을 우선해온 기존의 특을 벗어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리스크를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지금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기회를 모색해야 할 때다. 실패를 제거한 기술은 안정적일지라도 미래를 꿈꾸게 하진 못한다. 그리고 감동은 언제나 일정 부분의 좌절을 동반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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