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년 상반기 홍콩H지수 ELS에서 3조원이 넘는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 ELS는 개별 종목이나 지수에 연동해 미리 정한 상환 조건에 따라 투자수익이 정해진다. 만기가 닥쳤을 때 기초자산의 가격이 일정 가격에 미치지 못하면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국내 은행과 증권사들은 2021년 상반기에 홍콩H지수 ELS를 많이 팔았다. 홍콩H지수는 홍콩증권거래소 상장 우량 중국 국영기업으로 구성된 만큼 당시에는 안정성과 성장성 모두 있다고 평가됐다.
문제는 이후 홍콩H지수가 크게 하락했다는 점이다. 2021년 초 1만~1만2000포인트에 달했던 지수는 현재 6000포인트까지 40~50%가 하락했다. 내년 상반기면 ELS의 통상 만기인 3년이 된다. 홍콩H지수가 현재 수준에 머무르는 이상 관련 상품의 손실 역시 대거 현실화될 가능성이 목전에 다가왔다는 의미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개 은행이 판매한 홍콩H지수 연계 ELS 중 8조4100억원어치가 내년 상반기에 만기를 맞는데, H지수가 현재 수준에 머무른다면 40%인 3조원 이상의 금액이 손실이 된다.
중국 경제의 침체로 인해 지수의 반등을 기대하기 어려운 데다가 증권업계의 판매 규모를 더하면 손실 규모는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증권업계의 홍콩H지수 ELS 상품 판매 잔액은 3조5000억원으로, 잔액의 대부분이 내년 상반기에 만기가 도래한다.
금융당국은 지난 20일 KB국민은행을 시작으로 판매사들이 가입자들에게 손실 가능성, 홍콩H지수의 큰 변동성 등을 충분히 알리고 설명했는지 점검에 착수했다. 5개 은행뿐 아니라 미래에셋증권, KB증권, 삼성증권, NH투자증권 등 해당 상품을 많이 판매한 증권사 7곳 또한 조사 대상이다.
금융 당국은 이번 점검에서 조사 단계에서부터 불완전 판매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관련 자료와 정황을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위험·고난도 상품으로 꼽히는 ELS 상품에 대해 가입자들이 충분한 설명을 제공 받았는지 살피겠다는 방침이다. 해당 상품의 가입자 상당수가 고령자라는 사실에도 주목하고 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 29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고위험·고난도 상품이 특정 시기 고령자들에게 집중적으로 판매됐다는 사실에 의구심을 표하면서 "설명 여부를 떠나서 권유 자체가 적정했는지 검토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금융사와 소비자 간) 어떤 책임 분담 기준을 만드는 것이 적절한 것 아니냐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판매사들은 불완전 판매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전에 라임·옵티머스·파생결합펀드(DLF) 등 여러 펀드 사태를 거치면서 규제가 까다로워진 데다가 2021년 금융소비자보호법이 시행되면서 설명 의무가 더욱 강화됐다는 것이다.
고령 투자자의 다수가 이미 ELS 투자 경험이 있었다는 점도 논점이다. 투자자들은 만기에 수익을 올리고 나면 같은 상품에 재투자하는 경향이 있는데, 손실을 보고 나면 불완전 판매를 주장하며 배상을 요구한다는 지적이다.
금융당국은 올해에도 여러 차례 투자자 보호 원칙을 강조하며 규제를 강화해왔다. 금융투자시장의 성장을 위해서는 시장 참여자들이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판매사들이 실적을 올리기 위해 위험성 높은 상품을 무턱대고 추천했다면 엄중히 처벌해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투자자 책임 원칙 역시 지켜야 할 원칙이다. 투자상품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들었다면 수익과 손실은 모두 투자자가 선택한 결과로 감내해야 한다. 손실을 회피하기 위해 불완전 판매를 주장하는 투자자에게도 보호 원칙을 적용한다면 이 또한 시장의 신뢰를 훼손하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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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류소현 기자
sohyun@newsw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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