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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 “‘관상’ 속 수양대군, 사실 연기하기 정말 겁났다”

[인터뷰] 이정재 “‘관상’ 속 수양대군, 사실 연기하기 정말 겁났다”

등록 2013.09.23 08:51

수정 2013.09.23 08:52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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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김동민 기자사진 = 김동민 기자

벌써 18년이나 됐다. 그런데도 배우 이정재에게 드라마 ‘모래시계’의 젊은 보디가드 ‘백재희’가 보인다. 강하지만 속으론 한 없이 여린, 그래서 상처 받기 쉬운 그의 모습이 이정재의 진짜 얼굴 같았다. ‘태양은 없다’의 ‘홍기’가 그래서 더 안타까웠는지도 모른다. ‘정사’의 ‘우인’은 또 어떠했나. 애인의 언니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남자의 심정을. ‘하녀’ 속 ‘훈’이란 인물 또한 거만하고 인간미 떨어지는 겉모습이지만 왠지 모를 슬픔이 묻어 있었다. ‘도둑들’의 2인자 콤플렉스에 시달린 ‘뽀빠이’의 ‘속앓이’도 이정재의 여린 감성이 묘한 시너지로 작용했다. 그렇게 이정재는 ‘여린 남자’로 관객들을 파고들었다. 그런 이정재가 작심을 했나 보다. 조선시대 최대 파란인 ‘계유정난’ 한 복판으로 ‘여린’ 이정재가 걸어 들어갔다. 그것도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세조’ 즉 수양대군이란 이름으로.

개봉 전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그와 마주했다. 인터뷰 전 언론에 공개된 영화 ‘관상’ 속 ‘수양대군’의 강렬함은 단연 압권이었다. 카리스마와 존재감면에서 ‘수양대군’은 정점을 찍을 수밖에 없는 역사적 실존 캐릭터다. 하지만 진짜 놀라웠던 점은 ‘색다른 해석’이었다.

이정재는 “기본적으로 왕은 완전무결해야 한다는 선입견이 있다”면서 “그래서 얼굴이나 수염도 아주 가지런하고, 그런데 ‘진짜 그랬을까?’란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실제 ‘수양대군’은 사냥을 무척 좋아했단다. 그는 “그렇게 사냥을 다녔는데, 산에서 나뭇가지에 얼굴도 긁히고, 또 큰 짐승 사냥에선 좀 다치기도 하고 그랬지 않을까”라며 극중 얼굴 흉터의 탄생 배경을 전했다.

사진 = 김동민 기자사진 = 김동민 기자

그 작은 흉터가 수양대군의 여러 얼굴 중 하나인 ‘야욕’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흥미로운 점은 그 강렬함을 경험하기 위해선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영화 상영 후 정확히 1시간이 지날 때까지 이정재의 모습은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정재는 “처음 시나리오를 읽는데 많이 당황했다”면서 “분명히 내가 할 배역이 수양대군이라고 하던데 시나리오 반이 지날 때까지 한 장면도 안 나오는 거다”며 웃었다. 하지만 막상 접하게 된 ‘수양대군’은 만만한 배역이 결코 아니었다. 너무나 하고 싶은데 너무 겁이 났다고. 그는 “시나리오를 다 읽고 드는 생각이 ‘이거 할 수 있을까’ 였다”면서 “나와 다른 사람이 해야 하는 것 아닌가를 많이 고민했다”고 담담히 말했다.

이정재가 말한 ‘다른 사람’은 연기 방식을 의미했다. 이정재는 지금것 안으로 누르는 듯한 캐릭터를 소화해 왔다. 바로 전작인 ‘신세계’만 봐도 그랬다. 반면 수양대군은 겉으로 터트려야 하는 캐릭터다. 이정재는 “내가 선호하는 연기 방식은 결코 아니었다”면서 “무엇보다 수양대군은 가만히 있어도 위협적으로 보여야 했다. 그런데 내가 그런 마스크는 아니지 않나”라며 웃었다.

그의 이런 고민은 오롯이 연출자인 한재림 감독의 신뢰로 씻어냈다. ‘신세계’를 찍고 있던 부산으로 직접 내려온 한 감독이 ‘나만 믿어 달라’며 이정재를 설득했다고. 그는 “먼 길을 온 분을 내 작은 걱정 때문에 혼자 올려 보낼 수는 없었다”면서 “물론 역할에 매력을 느낀 점도 컸다. 배우라면 수양대군은 탐을 내야 정상 아닌가”며 다시 웃었다.

그렇게 이정재는 수양대군의 밑그림을 잡아갔다. 한 감독과 함께 많은 얘기를 했다고. 두 사람이 접점을 찾은 포인트는 ‘조폭’이었다.

사진 = 김동민 기자사진 = 김동민 기자

이정재는 “한 감독이 좀 ‘건들건들’ 해보라는 요구를 많이 했다”면서 “귀족적인 기품을 유지하면서도 깡패 같은 느낌을 내게 요구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묘한’ 느낌이 나올 것 같았다”고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 겉모습에 중저음의 보이스톤을 더했다. 억양은 최대한 단순화시켰다. 그는 “동선을 최소화 시키는 작업으로 수양대군의 악함을 강조했다”면서 “결과물을 보니 최선의 선택이었던 것 같다”고 만족해 했다.

수양대군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세조다. 조카를 죽였다는 오명에 악인으로 그려져 왔지만 실상은 성군에 가까운 정치를 편 인물로 보기도 한다. 물론 ‘관상’에선 악인으로 그려진다.

이정재는 “사실 편집 과정에서 삭제된 장면이 꽤 있는 걸로 안다”면서 “삭제된 분량 가운데 수양대군이 왕위에만 눈이 멀어 조카를 죽인 게 아닌 이유를 담은 장면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아마도 계유정난이란 사건이 아닌 각각의 인물들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한 감독이 선택한 방식이 지금의 버전 같다”면서 “지금의 버전에선 수양대군이 악인으로 그려지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연이어 작품을 한 그는 짧지만 잠시 휴식을 취할 생각이란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 ‘절친’ 정우성과 함께 작품 논의도 하고 있단다.

그는 “‘태양은 없다’와 같은 영화가 기획단다면 꼭 우성씨와 함께 하고 싶다”면서 “우리 둘이는 매번 같이 하자고 얘기를 한다. 진짜 하고 싶은데 제작자 분들이 판을 안 깔아준다”며 농담처럼 투정을 부린다.

그 투정 속에서도 이정재는 순간적으로 번뜩이는 눈빛을 숨기지 않았다. 상대방의 숨통이 끊어질 때까지 물고 늘어지는 ‘이리’의 얼굴을 한 남자 수양대군, 그리고 이정재. 눈을 비비고 다시 봤다. 분명 이정재인데 말이다. 아니 수양대군인가.

사진 = 김동민 기자사진 = 김동민 기자

23일 ‘관상’의 누적 관객수는 무려 700만을 바라보고 있다. 하루 평균 50만에 가까운관객 동원력을 보여준다. 분명한 것은 이정재의 수양대군이 이번 결과의 한 축을 이뤘다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단 확신이다.

영화 ‘관상’의 수양대군, 그리고 이정재와의 인터뷰였다.


김재범 기자 cine517@

뉴스웨이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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