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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 일' 백낙청 교수 평론집

'문학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 일' 백낙청 교수 평론집

등록 2011.05.26 12:01

김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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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함께하는 문학정신, 백낙청 교수 5년 만에 새 평론집 내

▲ 평론집 '문학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 일' 백낙청/창비


(경남=뉴스웨이 경남취재본부 김태훈 기자) 진보적 문학 진영을 이끌어온 문학평론가 백낙청(73) 교수가 5년 만에 한국과 외국 문학 관련 문학평론집 ‘문학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 일(창비)’을 내놓았다.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문학에서 그 어느 것 보다 근본적이고 중요한 문제이나, 알게 모르게 우리 모두의 무의식 속에서 고리타분하고 고답적인 질문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그의 문학정신은 늘 깨어 있으면서 시대현실•시대정신과 맥을 같이해왔고, 현실과 동떨어진 작가정신이나 예술지상주의와 비판적 거리를 두어왔다. 저자는 무엇보다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 자체가 “필연적으로 세상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지고 세상과 문학의 관계에 대한 물음”인 동시에, 구체적인 작품을 통해 “번번이 새로운 물음으로 진행될 수 있고 되어야 하는” “본질상 완결될 수 없는 성질”(61면)을 지닌 것이라 말한다.

특히 최근 몇 년간 더욱 어지러워지고, 퇴보하고 있는 시대와 현실 속에서 이 근본적인 질문은 그 무엇보다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다. MB정부 출범 이후 촛불집회, 미국발 금융위기와 경제위기, 용산참사, 사대강 사업으로 이어지는 위기의 시대에 직면해 이 질문을 다시 묻는 참된 문학적 감수성이야말로 동시대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고 시대적 방향감각을 일깨울 수 있기 때문이다.

책 제목은 (…) 그 물음을 신실하게 계속 묻는 일이 문학하는 사람에게는 긴요하다는 믿음에서 택한 것이다. 더구나 문학평론이 인문적 교양의 기본이라고 한다면 그 중요성은 문명사회의 누구에게나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그 물음이 중단될 가능성은 많고 실제로 중단되는 일이 너무도 흔하다. 중단하는 방법도 가지가지여서, ‘문학이 무엇이다’라는 정답을 임의로 설정해서 더 이상의 묻기를 끝내버리는 방식도 있고, 정답이 없음에 자족하고 마는 또 다른 정답주의도 있으며, 작품을 실제로 읽고 생각하는 작업을 소홀히 함으로써 묻기를 저버리는 경우도 있다.(책머리에, 7면)

이와 같은 통찰을 거쳐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왜 지금 다시 필요한지를 사유하는 대목은 역시 저자의 오랜 연륜과 깊은 내공이 담긴, 이 시대에 던지는 근본적이면서도 갱신을 요구하는 화두라 할 수 있다.

표제 평론 「문학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 일」에서 저자는 2008년 촛불집회의 경험이 어떻게 익숙한 작품과의 새로운 대면을 유도했는가에 대한 소회를 밝히는 데서 출발해, 최근 한국문학이 사회 상황과 맥락으로부터 동떨어져 있음을 지적한다. 문학적으로도 일대 사건인 촛불항쟁에 직면해 문학인들이 일반 시민들의 문학적 감수성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으며, 평론가들은 자기 부류에서만 읽히는 글쓰기로 자족하고 작가들조차 그런 평론에 언급되기 위해 작품을 쓰는 듯 한 인상을 준다는 비판이다.

따라서 민중현실 및 시대상황과 맞물려 있는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지금에 다시 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의식은 1970년대 이래 민족문학론, 리얼리즘론 등으로 이어져온 저자의 문학론의 궤적이 당대와 어떻게 호흡했는지 짚는 한편으로 그 현재적 재해석으로 이어지고 확장된다.

오늘날 평론가들이 사실주의(寫實主義)와 리얼리즘을 엄격하게 구별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으면서, 그로 인해 리얼리즘을 낡은 것으로만 치부하며 우리 리얼리즘 문학의 성취를 폄하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것도 그러한 맥락이다. 이러한 담론적 비판에 이어 박완서 김애란 신경숙 김려령 등 최근의 구체적인 문학적 성과들을 주목하면서 저자는 일부 작가들이 사실주의적 기율을 ‘함부로’ 어기고 자의적인 묘사와 서사를 되풀이함으로써 독자에 대한 예의조차 방기하고 있다고 따끔하게 지적하기도 한다.

저자는 이 같은 인식 아래 윤영수의 『소설 쓰는 밤』, 박민규의 『핑퐁』을 구체적으로 살피며, 전자는 날카로운 현실비판을 담은 풍성한 이야기와 함께 글쓰기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되묻는다는 점에서, 후자는 ‘촛불’의 정신과도 통하는 경쾌하고 자유분방한 기법으로 문학에서 ‘다음은 무엇?’이라는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한다.

「외계인 만나기와 지금 이곳의 삶」은 문학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새로운 세대와 작품들과 만날 때 갱신을 요한다는 것과, 작품평가가 부풀려지거나 작품자체가 오류에 머무는 것에 현혹되지 않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외계인 만나기’라는 모티프를 통해 최근의 비평담론들을 비판적으로 되새기는 점이 인상적인데, 이 ‘외계인 만나기’란 ‘지금 이곳의 삶’에서 배제된 진실과 타자들을 정직하게 대면하는 문학적 실천의 일환이기도 하다. 특히 이장욱 권혁웅 신형철 김형중 등 젊은 비평가들과 비판적으로 소통하며 2000년대 한국 시단을 뜨겁게 달군 ‘미래파’ ‘다른 서정’ 계열의 시론에서부터 박민규 박형서 등 새로운 감수성의 소설에 대한 논쟁까지 우리 문학담론의 최전선을 가로지르며 빈 곳과 파인 곳, 부풀린 곳을 세밀하게 구별해내는 값진 평론이다.

*. 문학과 정치의 문제

용산사태와 사대강사업 등을 겪으면서 한국문학에서 다시금 중요한 문제로 떠오른 문학과 정치의 관계를 탐문한다는 점에서 「현대시와 근대성, 그리고 대중의 삶」 역시 표제의 문제의식과 연결된다. 저자는 “사회참여와 참여시 사이에서의 분열”을 토로하는 진은영의 진솔한 고민에 공감하며, 언어실험을 감행하는 새로운 어법의 시들을 섬세하게 평가해낸다.

저자는 실험시인들이 수행하는 ‘선승(禪僧)’과 ‘특공대’ 같은 역할의 의의를 높이 사는 한편으로 대중의 삶과 소통하는 대승의 길이 필요함을 강조하며, 문학의 정치성에 대한 우리 시단과 비평담론의 대응, 언어실험에 몰두하는 시, 모더니티/모더니즘의 오해, 새로운 예술체제론의 득과 실, 대중의 삶과 맺는 관계 등을 세세히 따져 좀더 확장된 논점을 제안한다. 나아가 단절과 새로움을 특권화하는 미적 모더니즘/모더니티의 논의가 현대예술로 시야를 국한함으로써 근대성 전반에 대한 통찰을 결여함을 지적한다.

이와 관련해 랑씨에르의 ‘세 가지 예술체제론’(윤리적 체제/ 시학적-재현적 체제/ 미학적-감성적 체제)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저자는 시 장르에서 두드러지는 언어실험 경향에서 진지한 탐구정신을 가려내면서도 그것이 대중의 삶과 괴리될 위험을 경계해야 한다는 논지를 펼친다. ‘미학적-감성적 예술체제’가 예술/비예술의 차별과 위계질서를 넘어 민주적 체제로의 이행을 촉구하는 것이라면, 우리 시에서 대중의 삶과 감동을 이끌어내는 ‘쉬운’ 시의 역설적 실험에도 주목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 한국문학의 오늘과 내일, 그리고 세계화

세계화 과정 속에서의 민족문학의 위상과 역할을 점검하고 조망하는 「세계화와 문학」에서 저자는 국민문학의 창조성을 기반으로 세계문학이 확보해야 할 운동성을 실천적 과제로 제시한다.

이러한 논의는 ‘괴테-맑스적 기획’에 관한 고전적 논의에서 출발하여 까자노바, 댐로쉬, 그리고 모레띠의 세계문학론에 대한 검토를 거쳐 동아시아 지역문학 및 제3세계 민족문학의 대안적 가능성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필자가 꾸준히 연구해온 민족문학의 이론적/실천적 경계의 지평을 독자들에게 한층 폭넓게 제시하는 것으로 의미가 깊다.

세계적 시야에서 한국문학의 사례를 들여다보는 「우리시대 한국문학의 활력과 빈곤」은 지난 2천년대 우리문학의 성과와 빈곤을 짚어낸다. 저자는 1987년 6월항쟁 이후 20여년, 멀리는 1970년대 이래를 ‘우리시대’로 파악하되 지난 10년간에 집중하여 문학작품의 주요 성과를 선별적으로 검토하고 한국문학의 ‘활력과 빈곤’을 균형잡힌 시각으로 가늠한다.

시에서는 소위 ‘미래파’ 시들이 난해한 언어와 낯선 감각으로 한국 시에 가한 충격의 성취와 함정을 분별하며, 또 비평계에서 자주 등장하는 ‘시와 정치’ 논의가 추상화나 편협한 정치주의로 빠질 위험을 지적하고 보편성의 차원을 도입할 것을 주문한다.

소설장르에서는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세계시장에 내놓음직한 많지 않은 문제작”(132면)으로 평가하는 한편으로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 대한 평단의 무관심을 지적하면서, 자칫 두 작품을 신파로 치부하는 것을 경계한다. 이 두 작품이 보인 성취를 정교하고 면밀하게 분석하는 대목에서 저자만의 비평적 안목을 새삼 실감할 수 있다.

저자는 현 시기 한국문학의 빈곤이 엄연한 현실이지만 비평 및 창작에서 발견된 활력이 쉽게 사그라지지는 않을 것이며, 시장에 의한 문학의 황폐화라는 세계적 추세에 비추어볼 때 한국문학이 세계문학과 동아시아 지역문학의 거점이 되리라 예상한다.

그밖에도 ‘선시(禪詩)와 리얼리즘’을 거론하면서 송경동 시와 고은의 『만인보』를 평가하는 「시와 소통에 관한 단상」은 짧은 글임에도 깊은 사유를 동반한다. 특히 평론가 염무웅의 토론문과 이에 대한 저자의 응답(댓글)은 ‘시와 소통’에 대한 흥미진진한 대화를 선사한다.


*. 서양문학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제2부에서는 디킨즈와 토마스 하디, 에밀리 브런티 등의 대표작에 대한 평론과 더불어, 콘래드의 작품읽기를 통해 주체적 인문학의 정립을 위한 단초를 제시한다. 대부분 발표한 지 20년이 넘었음에도 해당 명작들을 읽는 데 흥미진진함과 깊이를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현재성을 가지고 생동하는 글들이다.

「디킨즈 소설 속의 빅토리아조 신사」에서 저자는 『피크윅 페이퍼즈』 『마틴 처즐윗』 『데이비드 코퍼필드』 『블리크 하우스』 『거대한 유산』 등 디킨즈(C. Dickens)의 대표작들 속에 나타난 ‘신사’(紳士, gentleman)의 정체성과 작품과 시대에 따른 의미의 변화를 따라가면서 짚어내고 분석한다.

‘신사’란 단순한 낱말의 의미를 넘어 ‘귀족적인 이상과 시민계급의 이상을 묘하게 융합한’(174면) 계급성과 사회성, 당대의 현실에 대한 비판적 시각까지 담은 개념으로, 이를 디킨즈 소설의 탁월성과 위대성을 드러내는 요소로 파악하면서 당대의 시대상을 읽어낼 수 있게 하는 분석은 평론 읽는 재미를 선사한다.

「소설 『테스』의 현재성」은 토마스 하디(T. Hardy)의 작품을 당대의 역사적・사회적 현실과 연관시켜 해석하는 동시에 기본적으로 사실주의적인 해석을 견지하면서 현재적 의의를 찾음으로써 다각적인 독법을 하게끔 만든다.

「『폭풍의 언덕』의 소설적 성과」 또한 에밀리 브런티(Emily Brontë)의『폭풍의 언덕』의 복잡한 배경과 사건에 얽힌 인물들과 인간 욕망의 관계를 다층적으로 파악함으로써 탁월한 소설적 의의를 짚어낸다. 이 글들은 국내에서도 대중적으로 성공한 명작들에 대해 독자들이 한층 더 흥미를 가지고 심도 있게 읽어낼 수 있게끔 길잡이 역할을 해준다.

엘리엇(T.S. Eliot)의 대표적인 명제 ‘감수성의 분열’에 대한 논의를 심화시킨 뒤 「프루프록 연가」 등 엘리엇의 시를 분석하는 「‘감수성의 분열’ 재론」 역시 시를 전공하는 사람들이 오늘날 읽어도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뛰어난 평론이다.

제2부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콘래드의 중편 「어둠의 속」을 집중적으로 읽고 강연하고 토론한 「주체적 인문학을 위한 서양명작 읽기」인데 이는 최근 서울대 출판문화원에서 단행본(『백낙청―주체적 인문학을 위하여』)으로 출간하기도 한 ‘관악 초청강연’의 일환이다. 이 글에 담긴 저자의 ‘주체적 인문학’에 대한 견해 역시 문학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즉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데 필요한 인문적 교양이 문학비평적 능력”(책머리에, 6면)이라는 믿음에 닿아 있다.

‘주체적 인문학’에 대한 저의 생각, 또 그것과 문학비평과의 관계, 이런 일반적인 이야기로 시작할까 합니다. (…) 인문학은 사람이 자기 삶의 주인 노릇을 하며 사람답게 사는 실천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주체성을 띠어야 합니다. 동시에, 그런 목적을 위해서도 사람다움과 세상의 됨됨이를 학문적으로 탐구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 나름의 객관성 내지 일반적 타당성을 지녀야 옳습니다. 그래서 주체적 인문학이라 하더라도 인문학 나름의 객관성에 대한 지향은 분명히 있다는 점을 먼저 말씀드립니다.(304~305면)

정리하자면 저자에게 인문학이란 인간다운 삶을 제대로 살기 위한 실천적이면서도 종합적인 학문이고, 이 인문학의 기초를 이루는 것은 ‘문학비평적’ 능력이다. ‘문학비평적’ 능력을 강조하는 저자는 명작을 읽음으로써 생각의 깊이를 더하며 인문적인 교양도 갖추게 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그는 소위 ‘서양 고전’을 보는 편중된 관점에 함몰되는 걸 경계하며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주체적 읽기를 제안한다. 따라서 문학비평적 능력을 쌓아갈 때 서구 제국주의나 식민주의, 제3세계의 좁은 시각에 매몰되지 않는 주체적 명작읽기가 가능하다는 점을 역설하는 것이다. 즉,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전지구적인 보편적 사고가 가능하도록 하는 인문학적 훈련이라는 관점에서 서양문학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실제적인 해답을 독자들과 함께 찾고 있는 것이다.

백낙청의 문학과 삶에 대한 자세는 ‘멈추지 않는, 깨어 있음’이라 표현할 수도 있겠다. 거기에서 뿜어져나오는, 주체성과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갱신하는 문학정신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는 젊은 비평가들 이상으로 작품을 폭넓게 읽고 더 치열하게 활력 있는 비평 활동을 전개하는 현역이다. 비평가로서 끊임없이 쓰고 화두를 던지며 실천하는 지식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것이 이번 평론집인 것이다.

/김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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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김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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