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지연되는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14년의 숙원' 속 커지는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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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되는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14년의 숙원' 속 커지는 아쉬움

등록 2025.11.13 07:23

김명재

  기자

보험업법 개정 의미 퇴색 위기의원·약국 확산 속도 더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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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업계 출입 기자로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을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2년 전 이 시기를 꼽을 것이다. 실손의료보험 보험금 청구를 전산화하도록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보험업법 개정안이 마침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던 때였다.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제도 개선에 몸소 기여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간 보험업계는 디지털 전환을 통해 다양한 방면에서 소비자 접근성과 편의성을 크게 높여왔지만, 실손보험금 청구만큼은 여전히 불편했다. 병원을 방문한 소비자가 진료비 서류를 발급받아 보험사에 서면으로 제출해야 하는 기존 방식에서 이렇다 할 변화가 없었다.

이러한 시스템 개선 필요성이 최초로 언급된 건 디지털 전환보다 훨씬 이른 시점인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 때부터다. 이후 수차례 제도화 논의가 있었지만 청구 전산화 관련 법안은 14년이 넘도록 입법을 통과하지 못했다. 발의 때마다 의료계의 강한 반발이 뒤따라서다. 보험사가 마땅히 책임져야 할 업무를 소비자 권익을 빌미로 의료기관에 떠안기려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다 2023년 개정안이 돌연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하며 최초로 '7부 능선'을 넘었다. 이어 그간의 기다림이 무색할 정도로 느껴질 만큼 빠른 속도로 본회의를 통과했다. 가입자 수가 4000만 명에 달하는 실손보험의 청구 간소화가 국민 편익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여야 모두 이견을 보이지 않았던 점이 기인했다.

이후 금융당국은 법안 공포 직후 곧바로 전산 개발에 착수했다. 이듬해인 2024년 10월에는 단계적으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실시했다. 당시 보험업계는 제도 시행 2년차가 되는 2025년에는 국내 모든 병원에서 무리없이 실손보험금 청구 전산화가 시행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현실은 이상과 괴리가 큰 실정이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달 22일 청구 전산화 대상 병원·보건소 7800여개 가운데 연계를 완료한 기관은 4300여개로 전체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지난 25일부터 의원·약국 9만6700개에도 확대 시행됐지만 금융당국이 연계 실시를 예상한 기관 역시 4만8400개로 절반 수준에 그쳤다.

사단법인 소비자와함께가 지난 8월 실시한 실손보험 서비스 플랫폼 '실손24' 이용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88.6%가 기존 청구 방식보다 전산 청구 방식이 훨씬 편리하다고 응답했다. 업계가 예견한 바와 같이 전산화 시행이 소비자 편의 증진와 직결됨을 보여주는 결과다.

하지만 의료계의 미진한 참여가 이어지면서, 어렵게 공포된 제도가 '반쪽짜리'로 전락할 위기에 내몰려 있다. 여기에 청구전산을 담당하는 전자의료기록(EMR)업계의 소극적인 협조 태도 역시 참여기관 확산 속도를 늦추는 주된 요인으로 지목되는 상황이다.

지난달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금융당국이 나서 의료기관의 적극적인 실손보험금 청구 전산화 연계를 추진해야 한다는 김용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지적에 "다양한 방법을 활용해 소비자들이 효용을 얻을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금융당국의 적극적 개입이 없다면 청구 전산화 제도는 여전히 일부 기관에만 제한적으로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업계 역시 입을 모은다. 실효성을 갖춘 유인책 마련이 업계의 '14년의 숙원'을 끝낼 마침표가 될 것으로 기대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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