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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건전성만으로는 부족하다. 포용이 금융의 경쟁력이다

전문가 칼럼 이혜민 이혜민의 금융이 핀다

건전성만으로는 부족하다. 포용이 금융의 경쟁력이다

등록 2025.10.28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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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민 핀다 공동대표. 사진=핀다 제공이혜민 핀다 공동대표. 사진=핀다 제공

2025년은 그 어느 해보다도 다양한 금융 규제와 제도 변화가 있었다. 리테일 금융 산업에서 핀다, 오픈업 등을 운영하는 필자에게 올해는 특히 '소비자 보호'와 '위험 관리'라는 두 축이 동시에 강조된 한 해였다. 예금자 보호 한도 상향, 소상공인 금융지원 확대, 청년 금융지원 등은 반가운 조치였지만,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축소, 규제지역 확대, 대환대출 제한 등은 시장에 갑작스러운 충격을 주었다. 10·15 부동산 정책 강화 직후 대환대출에 대한 규제도 강화되었다가 다시 일부 완화된 점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범국가적 차원에서 볼 때 가계부채 총량 관리와 DSR 강화는 금융 건전성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규제가 강화될수록 금융의 사각지대는 더 넓어진다. 특히 저신용자·저소득자·청년층 등 제도에 취약한 계층은 금융 접근성이 후퇴하고, 새로운 부 창출의 기회를 얻기 어려워진다. AI와 데이터 기술로 리스크를 정밀하게 예측할 수 있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총량'이라는 거친 잣대가 규제의 중심에 있다. 금융 시스템은 더 안전해졌을지 모르나, 그 과정에서 더 많은 사람이 금융의 기회 밖으로 밀려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더 적극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핀다가 운영하는 대출 비교 플랫폼에서 최근 1년 간 약 500만 건의 대출 조회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약 40%가 '조건 미충족'으로 중도 탈락하거나 승인을 받지 못했다. 그중에는 안정적인 소득과 충분한 상환 능력을 가진 이용자도 적지 않았다. 핀다 및 파트너사의 AI 기반 신용평가 모델로 재평가한 결과, 이 중 약 60%는 충분히 상환 가능한 집단으로 다시 분류되었다. 위험을 피하기보다는 정확히 구분하고 관리하는 기술적 역량이 있다면 건전성과 포용은 충분히 동시에 달성 가능한 목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위험 회피가 아니라, 위험을 정밀하게 이해하는 새로운 금융 접근 방식이다.

이러한 변화는 해외에서는 이미 시작됐다. 영국의 Monzo는 AI를 기반으로 한 리스크 관리와 고객 중심 서비스를 통해 건전성과 포용을 동시에 달성한 대표적인 챌린저뱅크다. 현재 Monzo는 900만 명 이상의 고객을 보유하고 있으며, 2024년 회계연도 매출은 전년 대비 2배 이상 증가한 7억9200만 파운드(약 1조3000억 원)를 기록했다. 공격적인 성장에도 불구하고 손실률은 3년 연속 하락했고, 창사 이후 처음으로 연간 흑자(세전 이익 1,500만 파운드)를 달성했다. Monzo는 고객의 소비 패턴, 급여 흐름, 거래 주기 등 수천 개의 비정형 데이터를 학습해 상환 능력과 재정 건전성을 지속적으로 평가한다. 이상 징후가 감지되면 한도를 선제 조정하거나, 오픈 뱅킹 기반의 'AI 예산 관리 도우미'를 통해 소비 습관을 교정하도록 돕는다. AI가 부실을 예측하고, 고객의 재무 회복을 유도하는 구조인 것이다.

Monzo의 성장 뒤에는 '스마트 규제(Smart Regulation)'라 불리는 영국 정부의 제도적 토대가 있었다. 2016년 금융감독청(FCA)은 세계 최초로 금융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해 신생 금융회사가 제한된 환경에서 실거래 데이터를 활용한 서비스를 실험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 덕분에 Monzo, Revolut, Starling Bank 등은 시장 진입 초기부터 실제 데이터를 기반으로 AI 모델을 검증하며 고객 중심의 서비스를 빠르게 고도화할 수 있었다.

또한 2018년 시행된 '오픈뱅킹(Open Banking Standard)' 제도는 고객 동의 하에 은행이 API를 통해 거래·대출 정보를 핀테크 기업과 공유하도록 의무화했다. 덕분에 Monzo는 고객의 타행 데이터까지 통합 분석하여 AI 모델의 정확도와 예측력을 높일 수 있었다. 데이터 접근권이 규제에 의해 보장된다는 점에서, 영국의 제도는 혁신을 '허용'한 것이 아니라 '촉진'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영국은 또한 신생 은행의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해 '단계별 은행 인가(two-step licensing)'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제한된 범위의 영업을 허용한 뒤 리스크 통제 능력이 검증되면 정식 라이선스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Monzo는 이 제도를 통해 2017년 정식 은행 인가를 획득했으며, AI 기반의 대출 및 예산관리 서비스를 빠르게 확장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영국은 2022년 이후 AI Standards Hub를 설립해 AI 금융 모델의 설명가능성(XAI)·편향성 검증을 감독하는 윤리 체계를 제도화했다. Monzo는 내부적으로 'AI Governance Board'를 두고, AI 모델의 편향성·설명력·데이터 오류율을 FCA에 보고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결국 Monzo의 성장은 기업의 기술력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국가의 제도적 실험정신과 AI 규제의 유연성이 결합된 결과였다.

영국의 규제 환경은 한국에도 이미 존재한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표준화된 마이데이터 제도를 운영하고 있고, 오픈뱅킹 역시 글로벌 벤치마크로 평가받는다. 그럼에도 결과가 다른 이유는 제도의 유무가 아니라 운용 철학의 차이에 있다. 영국의 샌드박스는 '예외 허용'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혁신 인프라'로 작동한다. 한 번의 실험이 끝나면 제도가 고도화되고, 데이터가 정책으로 환류되는 구조다. 반면 한국의 샌드박스는 여전히 '버전 고정'과 '망분리 제약'에 묶여 있다. AI 모델이 발전해도 기존 인가 범위를 벗어나면 다시 처음부터 절차를 밟아야 하고, 최근 글로벌 모델들이 cross-region 전용으로 전환되면서 기술 업데이트 시 사용이 불가능해지는 문제도 있다. 제도가 혁신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혁신은 일회적 허가로 완성되지 않는다. 지속 가능한 제도 설계가 뒷받침될 때, 기술은 비로소 산업의 신뢰로 이어진다. 지금의 제도는 '시작은 허락하지만, 진화는 불허'하는 상태에 머물러 있다. AI 산업의 속도를 고려하면, 이 격차는 머지않아 경쟁력의 단절로 이어질 것이다. 우리의 혁신이 일회성 실험으로 그치지 않으려면, 기술의 버전업(Version-Up)과 인프라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지속형(evergreen) 샌드박스'로 진화해야 한다. 혁신은 단순히 관리의 대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금융 산업의 성장 엔진으로 재정의할 때 제도는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앞으로 금융의 경쟁력은 자본 규모나 금리 경쟁뿐 아니라 얼마나 정교하게 위험을 다루고, 얼마나 새로운 사람을 많이 포용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AI 시대의 금융은 건전성과 포용의 균형 위에서 새롭게 정의되어야 한다.

기술이 신뢰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신뢰를 재설계하는 시대, 그 중심에 한국의 AI 금융이 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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