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정책 기조 발 맞추기···경영전략 뜯어고치는 회장들AI·특허·전담팀·민생지원 등 금융지주별 차별화 전략 부각실효성 제고·피해구제 없으면 '보여주기식' 비판 불가피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4대 금융지주가 소비자보호 대책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규제·제재 리스크를 피하고 당국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소비자보호를 그룹 전략의 핵심축으로 끌어올리는 모양새다.
KB금융지주는 지난 21일 '소비자보호 가치체계'를 새로 정립하며 정부의 정책 기조에 발을 맞췄다. 인공지능(AI) 기반 피해분석 모델을 개발하고 보이스피싱 모니터링시스템(VMS)과 이상거래탐지시스템(FDS)을 고도화해 금융사기 대응력을 높이고 금융취약계층 전담창구 이용 대상을 확대했다. 이는 기술력과 포용성을 동시에 강화하는 방식이다.
또한 KB금융은 고객·직원 대상 보이스피싱 예방 교육과 홍보도 강화하고 있다. 예방부터 사후 관리까지 전 과정을 포괄하는 종합적 체계를 마련해 단순한 이미지 제고를 넘어 실행력 있는 소비자보호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복안이다.
신한금융지주는 지난 9일 금융감독원이 주최한 '금융소비자보호 거버넌스 모범관행 간담회'에서 최근 강화한 전략을 공개했다. 신한은행은 올해 들어 소비자보호부서를 8개 전담팀으로 세분화하고 경영진 평가 지표(KPI)에 소비자보호 과제를 의무 반영하도록 체계를 개편했다. 상품 기획부터 사후관리까지 전 과정에 전담 조직을 배치해 내부 통제력을 높였다.
모범관행 이행으로 '정책 파트너십' 확보
그룹 차원에서는 전 계열사 CCO가 참여하는 소비자보호위원회를 운영하며 통합 거버넌스를 제도화했다. 또 취약계층 금융접근성 확대를 위한 전담팀을 신설하고, 보이스피싱 공동 대응 체계와 고객소통 플랫폼을 구축하는 등 당국 모범관행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은 지난 1일 창립 24주년 기념행사에서 "미래 경쟁환경 변화 속 금융의 본질은 고객의 자산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공공의 이익을 배분하는 것"이라며 "미래 기술을 통한 차별적 안정성을 확보해 보이스피싱·불완전판매·금융사기 방지 등 소비자 보호를 위한 기술로 고도화할 때 미래에도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하나금융지주는 지난 6월 투자상품 리스크 관리 체계와 관련해 금융권 최초로 특허를 취득했다. 투자성 상품 제조·판매 단계에서 위험 요인을 사전에 점검하고 판매 이후 이상 징후를 실시간 모니터링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불완전판매 논란을 줄이고 상품 리스크를 상시 관리하는 체계 구축에 방점을 찍었다.
아울러 하나금융은 지난해 발표한 3557억원 규모의 민생금융 지원 프로그램을 올해 100% 집행했다. 소상공인 대출이자 환급, 신용보증기금 출연, 에너지비용 지원 등 맞춤형 프로그램을 통해 정부의 민생금융 기조에 보폭을 맞췄다. 정책 기조와 보조를 맞추면서 동시에 사회적 책임 이행을 강화한 것이다.
우리금융지주는 지난 18일 서울 본사에서 '그룹 금융소비자보호협의회'를 열고 은행권 최초로 금융사기예방 전담부서를 신설하기로 했다. 3개 팀, 21명으로 꾸려질 이 조직은 금융사기 기획·정책, 사전예방·대응, FDS 고도화를 맡는다. 아울러 소비자보호 총괄책임자(CCO) 임기를 최소 2년 보장하고 KPI 설계권과 사전합의권을 부여하는 등 제도적 거버넌스 강화책도 병행했다.
이날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은 모두발언에서 "금융소비자보호는 우리금융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최우선 가치"라며, "단순한 내부통제를 넘어 그룹의 궁극적인 경영 방향이자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 회장은 거버넌스 모범관행 이행, 보이스피싱 예방, 불완전판매 근절, 보험 민원 개선 등 4대 과제를 지시하며 전 계열사 CEO와 CCO가 신속히 체계를 구축할 것을 주문했다.
갈 길 먼 소비자 신뢰 회복···영업현장·분쟁구제 개선 필요
4대금융이 소비자보호를 전면에 내세우는 배경에는 뚜렷한 위기감이 깔려 있다. 규제와 제재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관리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현실적 압박이 금융권 전반에 작용하는 모양새다.
다만 각 지주가 내놓은 대책은 제도·시스템 정비 차원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당국의 모범관행을 충실히 이행하는 모습은 긍정적이지만 여전히 소비자 신뢰 회복으로 이어지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현장 실행력과 피해구제 속도, 불완전판매 차단 같은 '실질적 변화'가 뒤따르지 않으면 보여주기식 대응으로 비칠 수 있다.
향후 과제로는 영업 현장 직원들의 교육과 인센티브 구조 개선이 꼽힌다. 단기 실적보다 소비자보호 성과가 중시되는 평가·보상 체계를 구축해야만 현장에서 불완전판매와 민원 발생을 실질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의견이다.
피해구제 절차의 신속성과 접근성 강화도 핵심이다. 분쟁조정이나 배상 과정에서 지연이 반복되면 소비자 불신은 도리어 커질 수 있어서다. AI·FDS 등의 시스템 고도화와 함께 실제 피해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절차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주사들이 앞다퉈 소비자보호를 강화한 건 새 정부가 내세운 정책 목표에 발맞추려는 흐름"이라며 "얼마나 실효성을 갖추느냐에 따라 규제 회피용 이벤트로 끝날지 신뢰 회복의 출발점이 될지 판가름날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웨이 박경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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