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4 양산에도 '본더 발주' 감감 무소식 "기존 장비 개조해 대응 가능하다는 판단" "우도할계"···곽동신 한미반도체 회장 어록 재조명
1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HBM4 개발을 마무리하고 세계 최초로 양산 체제를 구축했는데, 아직까지 추가적인 설비 투자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고 있다.
당초 일각에선 SK하이닉스가 시장 변화에 대응하고자 올해 60대 안팎의 TC 본더를 새로 들여놓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그 수량이 40대 수준에 머무를 것으로 점쳐진다. 상반기 발주한 물량에 수렴하는 수치다.
SK하이닉스는 3월과 5월 한화세미텍에 총 805억원(부가세 미포함) 규모 TC 본더를 주문했고, 비슷한 시기 한미반도체로부터 428억원(부가세 포함)어치의 제품을 매입한 바 있다. TC 본더 가격이 1대당 35억원 수준인 점을 고려했을 때 SK하이닉스가 이미 확보한 장비는 40대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SK하이닉스가 추가 발주에 뜸을 들이는 이유는 기존 생산 체제로 대응해도 무리가 없다는 판단에 기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신규 투자보다 기존 장비를 최적화하는 쪽이 더 효율적이라고 봤을 것이란 분석이다.
실제 HBM3E 생산에 활용 중인 본더를 일부 개조하면 HBM4 제조에 충분히 활용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SK하이닉스로서는 무리한 지출 없이도 생산 역량을 확보할 수 있다. 게다가 양산 체제를 완성하긴 했지만 거래처 인증, 즉 '공급'이 확정된 것은 아니어서 회사 입장에서도 투자 시기를 조율하는 게 여러모로 유리하다.
이와 맞물려 곽동신 한미반도체 회장의 어록도 재조명되고 있다. 7월 그는 '우도할계(牛刀割鷄)'라는 사자성어와 함께 시장 내 입지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소 잡는 칼로 닭을 잡는다'는 뜻의 이 말은 작은 일에 필요 이상의 큰 도구를 사용할 때 쓴다. 당시 일각에서 HBM4 생산에 TC 본더 대신 하이브리드 본더를 투입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자 곽 회장은 TC 본더로 HBM4와 HBM5를 충분히 뒷받침할 수 있다며 현 기술력이 여전히 시장의 요구를 상회하는 수준임을 재확인했다. 결론적으로 그의 진단은 맞아떨어진 셈이 됐다.
업계에선 반도체 장비 시장의 흐름이 바뀌기까진 1~2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미반도체의 경우 올초 착공한 인천 7공장을 통해 2027년 말부터 하이브리드 본더를 생산할 계획이다. 차세대 첨단 패키징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한화세미텍 역시 하이브리드 본더 출시 시점을 내년 초로 잡았다.
업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의 조용한 행보는 전략적 선택으로 읽힌다"면서 "당장 큰 돈을 쏟기보다 기존 장비를 최적화하며 수율을 끌어올리고, 시장 수요가 본격화하는 시점에 맞춰 투자를 단행하겠다는 계산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각 업체가 하이브리드 본더 양산 체계를 갖추면 신제품이 TC 본더와 공존하는 과도기가 최소 1~2년 이어질 것"이라며 "성능과 비용 그리고 안정성 여부가 시장의 선택을 좌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뉴스웨이 차재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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