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빠진 도시정비법 시행···동의 절차 간소화, 유권해석에 반쪽 적용'조합 동의 간주' 조항 누락 확인...서울시도 '통합 동의서' 전면 수정국토부 보완 입법 착수했지만...동의서 재작성 등 현장선 혼란 불가피
서울시는 지난 21일 각 자치구에 보낸 공문에서 "정비사업 동의 절차 간소화 지침을 변경한다"며 기존의 '통합 의제 동의서'에서 조합 설립 관련 내용을 제외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5일 서울시는 정비계획 입안 동의만으로 추진위원회 구성과 조합 설립까지 포괄 동의한 것으로 간주하는 새 양식을 배포했지만 불과 한 달 반 만에 이를 스스로 뒤집은 셈이다.
배경에는 국토교통부가 법제처로부터 받은 유권해석이 있다. 국토부는 정비계획 입안 동의만으로도 후속 절차까지 간주할 수 있도록 법령을 설계했다고 설명했지만, 법제처는 "조합설립 동의는 법조문에 명시되지 않았다"며 간주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에 따라 유권해석 회신을 받은 서울시가 기존 지침을 급히 수정한 것이다.
문제는 이번 유권해석이 정부 스스로 밝힌 입법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이다. 이번에 시행된 도시정비법 개정안은 지난해 8월 발표한 '8차 주택공급 확대방안'(8·8대책)의 핵심 과제로, 정부는 정비계획 입안 단계의 동의만으로도 조합설립까지 연결되는 통합 절차가 가능하다고 설명해 왔다.
하지만 입법 과정에서 '조합 설립 동의 간주' 조항이 누락됐고, 국토부는 추진위 구성 동의만 추가하면 자동으로 조합까지 연결된다고 판단했다. 결국 핵심 조항이 빠진 상태에서 법이 시행됐고, 법제처는 이를 문제 삼은 것이다.
국토부는 현재 관련 보고 절차와 보완 입법 준비를 진행 중이며, 조만간 국회에 수정 법안을 제출한다는 방침이다. 조우민 국토교통부 주택정비과장은 "8.8대책과 개정안의 취지가 달라진 것은 아니다"라며 "법제처에서 지적한 부분은 보완 입법을 통해 해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만 국토부 장관 인사청문회와 임명 절차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실제 입법까지는 물리적으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 사이 현장에서는 동의서 제출 방식에 대한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혼선은 현장 곳곳에서 혼란을 키우고 있다. 입안 동의서를 걷고 있는 자치구와 추진준비위원회, 예비추진위원회 등은 어떤 동의서가 유효한지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특히 같은 지역 내에서도 정비계획 입안 단계에서 동의한 주민은 조합 설립 동의자로 간주되지 않지만, 추진위 구성 단계에서 동의한 주민은 간주되는 등 동의 효력 기준이 엇갈리고 있다.
결국 일부 주민은 정비계획 입안 단계에서 제출한 동의서를 철회한 뒤, 조합 설립까지 포함된 추진위 구성 동의서를 다시 제출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동의서를 두 번 써야 하는 구조가 된 것이다. 이는 당초 정부가 내세운 '절차 간소화'라는 취지와는 정반대 결과다.
일각에서는 법안 공포부터 시행까지 6개월이나 준비 시간이 있었던 점을 감안할 때 정부의 대응이 부실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개정안은 지난해 12월 4일 공포됐고, 시행일은 올해 6월 4일이었다"며 "비상 상황이 있었다고 해도 법 시행 한 달이 더 지난 7월에 유권해석을 받고, 이제야 보완 입법을 검토한다는 건 명백한 실수"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제도 공백기에 대한 명확한 보완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장귀용 창파트너스 대표는 "정부의 실수로 발생한 문제인 만큼 보완 입법 이전에 받은 동의서에 대해선 통합 동의로 소급 인정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며 "주택공급 확대라는 본래 정책 방향을 지키기 위한 의지 표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뉴스웨이 주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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