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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형범 회장 |
옛날 무게의 단위 푼 0.375g 돈 3.75g 냥 37.5g
정조실록에 부사직 강유가 적곡 및 산삼의 폐단을 상소 천하(天下)의 보배로서 금(金)과 옥(玉)만한 것이 없다고 하는데, 금 한 푼(分)의 가격은 겨우 돈으로 6전(錢).
그런데 유독 인삼(人蔘)만은, 나삼(羅蔘) 한 푼의 가격이 4냥(兩)이고 강삼(江蔘) 한 푼의 가격이 1냥 4전(錢)으로서, 금과 옥보다도 훨씬 더 귀하다는 것.
옛날에는 강삼(江蔘) 한 돈쭝의 가격이 1냥 하던 것이 지금은 14냥. 기묘년에 경주(慶州)에서 나삼(羅蔘) 한 돈쭝의 가격이 20냥 이었는데 지금은 40냥이 되었다.
또 계묘년에 신이 종성(鍾城)의 지방관으로 있을 적에 북삼(北蔘) 한 돈쭝의 가격이 4냥이었는데 지금은 10여 냥이나 나가고 있으니.....기록이 남아있다.
정조 실록의 기록을 바탕으로, 요즘 금 1돈(3.75g)의 시세를 24만원으로 환산해 계산해 보면 1전을 4000원 1냥을 4만원으로 계산했다.
▲영·호남산삼 - 나삼(羅蔘)한푼 (0.375g) 40만원, 나삼(羅蔘)(3.75g)돈쭝 400만원, 나삼(羅蔘)(37.5g) 한냥 4000만원 ▲강원도산삼 - 강삼(江蔘)한푼 (0.375g) 14만원, 강삼(江蔘)(3.75g)돈쭝 140만원, 강삼(江蔘)(37.5g) 한냥 1400만원 ▲북한 간도산삼 - 북삼(北蔘)한푼 (0.375g) 4만원, 북삼(北蔘)(3.75g)돈쭝 40만원, 북삼(北蔘)(37.5g) 한냥 400만원 ▲조선시대의 금(金) 가격은 한푼 (0.375g)에 3만원 금(金) (3.75g)돈쭝에 30만원의 시세였다.
결론적으로 소백산·지리산 영·호남의 나삼(羅蔘)이, 강원도 강삼(江蔘)의 약3배, 북한산이나 중국 국경지대인 북삼(北蔘)보다 10배의 가격에 거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산삼은 옛 부터 금(金)보다 귀한 가치의 진귀한 산삼(山蔘) 이다.
산삼(山蔘)에 대한 고서(古書)의 기록을 보면 중국 양나라 도홍경(陶弘景, 456~536년)의 신농본초경집주(神農本草經)에는 백제와 고려산삼에 대한 기록이 있다.
산삼은 백제의 산삼이 최고 좋은 품질로 되어 있으며, 모양은 가늘어 단단하고 색은 흰 편이다.(백조삼: 산삼의 겉 껍질을 대나무로 벗기고 말린데서 유래) 고려는 요동(옛 고구려 땅)이라 하는데, 고려삼은 크고 무르며 조직이 치밀하지 못하여, 백제의 산삼에 미치지 '못한다' 라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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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동복의 백조삼과 양각삼 신라 가야산의 인형을 닮은 삼 |
이와 같이 산삼의 품질은 백제의 것이 가장 좋으며, 뛰어난 약성도 확인 할 수가 있다.
고려인삼의 시원지로 고증 되고 있는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현(모후산)은 옛 백제의 영토로 1770년 홍봉한의 '증보문헌비고'와 1824년 김이재의 중경지에는 고려인삼의 첫 재배에 관한 기록이 있다.
전라도 동복현에 사는 여자가 산에서 산삼의 종자를 얻어 심고, 이를 최씨 성을 가진 자에게 전해 번식시킨 것이 가삼(家蔘·지금의 인삼)의 시초, ‘최씨가 인삼을 쪄(홍삼 법제) 청나라에 팔아 갑부가 되었다고 하며, ‘개성에서 인삼을 심고 찌는 법은 동복에서 배워 왔다’고 적고 있다.
동복은 지금의 전남 화순군 동복면을 말한다.
삼국사기에는 서기 734년 (신라 성덕왕 33년) 당 현제에게 하정사를 보내어 산삼 200근을 선물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이 시기에는 고구려 백제가 멸망한 이후의 시기로 동복현 역시 신라로 통일이 되어 통틀어서 나삼으로 불리어졌다는 것을 추측 할 수 있다.
/한국전통심마니협회 정형범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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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정형범 회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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