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러그인 하이브리드로 만난 효율성과 성능패밀리카로 손색없는 포르쉐만의 승차감
영화 '어벤져스'에서 화려한 수트를 입고 우주를 누비며 대중의 환호를 받는 인물은 단연 아이언맨입니다. 현실적인 느낌으로 한 발자국 가까이 들어가 볼까요? 최첨단 장비를 제작하고 거대한 기지를 유지하면서 천문학적인 연구비를 대는 등 팀의 살림을 실질적으로 책임지는 존재는 바로 지구에 남아 있는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재정 시스템이죠.
포르쉐라는 거대한 스포츠카 세계관에서도 똑같은 공식이 성립합니다. 마니아들은 만인의 드림카 911을 브랜드의 영혼이라 부르지만, 현실에서 911을 먹여 살리면서 탄탄한 재정을 구축해 준 진짜 효자는 단연 카이엔입니다. 스포츠카의 날카로운 자존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대중의 현실적인 필요를 완벽하게 끌어안은 결과물이죠.
이번에 만난 모델은 지붕 라인을 유려하게 다듬고 친환경 파워트레인을 품은 '포르쉐 카이엔 S E-하이브리드 쿠페'입니다. 스포츠카의 유전자에 지갑 사정까지 살피는 알뜰함을 더했다는 이 차를 타고 긴 주행에 나섰습니다.
첫인상부터 강렬합니다. SUV에다가 지붕을 슬쩍 눌러놓은 듯한 쿠페 실루엣 덕분에 덩치가 큰데도 제법 날렵해 보이기 때문이죠. 실제로 작은 차는 아닌데요, 길이는 4.9m가 넘고 너비는 2m를 살짝 넘지 않는 덩치입니다. 그런 와중에도 가까이 다가가면 '역시 포르쉐구나' 싶은 익숙한 얼굴이 보이죠.
운전석 시야는 높고 공간은 넉넉해서 영락없는 SUV입니다. 넓게 펼쳐진 디스플레이와 깔끔하게 정돈된 구성이 눈에 들어옵니다. 화려하게 꾸미기보다 필요한 것들을 가지런히 배치했죠. 누군가 '독일차 무엇인가'라고 묻거든 '오늘날의 포르쉐를 보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포르쉐 마니아라면 운전석 정면에 자리한 타코미터와 높은 센터콘솔, 왼쪽에 따로 자리한 시동 버튼 등을 보고 '역시 포르쉐구나' 하실 겁니다. 요즘 자동차들이 화면을 앞세워 비슷비슷해지는 와중에도 이런 익숙한 구성이 포르쉐라는 사실을 은근하게 드러냅니다. 밖에서는 날렵한 쿠페, 안에서는 편안한 SUV.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성격을 한 차에 넣었습니다.
하이브리드라는 이름을 제대로 맛보기 위해 이번 시승은 효율성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포르쉐와 V6 엔진, 그리고 2톤이 훌쩍 넘는 덩치를 떠올리면 '길거리에 기름을 뿌리고 다니는 차'라는 선입견이 먼저 떠오르기 마련입니다. 과연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이 고정관념을 깨뜨릴 수 있을까요?
먼저 다소 가혹한 조건을 설정했습니다. 성인 남성 3명이 탑승했고, 푹푹 습기가 올라오는 날씨 탓에 에어컨도 시원하게 틀었습니다. 도심과 국도가 섞인 길을 지나며 잔여 배터리와 엔진의 개입을 유심히 관찰했습니다. 처음엔 배터리가 가득 차 있는 상태로 출발했는데, 약 85km를 달리고 나서야 엔진이 개입했습니다. 환경부 인증(56km)보다 절반 이상 달린 셈이죠. 효율이 참 좋습니다.
이후 고속도로를 포함해 총 250km를 달린 뒤 계기판의 평균 연비를 확인했습니다. 숫자는 18.3km/L. 성인 3명의 하중과 에어컨 부하를 짊어진 SUV가 준중형 하이브리드 이상의 연비를 뽑아낸 셈이죠. 관성 주행과 회생 제동을 알뜰하게 짜내는 포르쉐의 하이브리드 로직은 유류비 걱정에 머뭇거리던 운전자의 가속 페달을 한결 가볍게 만들어 줍니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을 타는 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순간은 외부 충전을 제때 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과연 전기 도움이 거의 없는 '노 배터리' 상태에서도 이 차가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시험해 봤습니다. 이번에는 승차 인원을 늘려 성인 4명이 꽉 차게 탑승했습니다. 연료 탱크는 기름으로 가득 채웠지만, 전기 배터리 게이지는 바닥을 드러낸 상태였습니다.
이 조건으로 고속도로 위주로 200km를 더 달렸습니다. 주행을 마친 뒤 기록된 평균 연비는 12.5km/L였습니다. 전기 충전의 수혜를 직접적으로 받지 못하고 4명의 무게를 견디면서도 고속도로에서 12km/L 이상의 효율을 유지합니다. 감속할 때마다 정교하게 회수되는 회생 제동 덕분에 엔진의 부담을 효과적으로 덜어낸 덕분입니다. 배터리가 다 닳아도 카이엔 하이브리드는 여전히 똑똑한 소식가입니다.
이번엔 달리기 실력 차례. 출발 직후 차는 마치 전기차처럼 소음과 진동 없이 미끄러지듯 나아갑니다. 조용히 전기로만 주행을 이어가다가 가속 페달을 깊게 밟으면 비로소 엔진이 잠에서 깨어납니다. 놀라운 점은 전기모터에서 내연기관 엔진으로 주행 주체가 넘어가는 과정에서 이질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하이브리드 차에서 흔히 겪는 덜컥거림이나 울컥임을 완벽히 통제하죠. 운전자가 계기판의 엔진회전계를 유심히 관찰하지 않는다면 언제 엔진이 개입했는지 눈치채기 어려울 만큼 부드럽게 바통을 터치합니다.
정교한 완성도를 체감하다 보니 소소한 욕심도 생겼습니다. 최근 전동화 흐름에 맞춰 계기판을 통해 순간 전비(전기연비, km/kWh)나 세부적인 전력 소비 데이터를 조금 더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면, 이 차를 타는 재미와 뿌듯함이 한층 커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포르쉐를 논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무기는 하체 기술입니다. 이번 시승에서도 포르쉐 특유의 에어 서스펜션 조율 능력은 단연 최고였습니다. 노면의 포트홀이나 불쾌한 잔진동은 고급 세단처럼 비단결같이 걸러내면서도, 코너에 진입하면 대형 SUV라는 사실을 잊게 만들 만큼 바닥에 딱 붙어 롤링을 억제합니다. 단단함과 부드러움이라는 양극단의 가치를 버튼 하나로 완벽하게 오갑니다.
포르쉐 카이엔 S E-하이브리드 쿠페는 화려한 퍼포먼스 뒤에 숨겨진 반전의 효율성으로 운전자를 매료시키는 모델입니다. 성인 여럿을 태우고도 놀라운 연비를 보여주고, 배터리가 없는 상황에서도 하이브리드다운 훌륭한 성적표를 내놓죠. 엔진과 모터의 부드러운 교대, 최고 수준의 승차감을 제공하는 에어 서스펜션까지. 패밀리 SUV로는 흠 잡을 곳이 없습니다.
다만, 감성적인 영역에서는 한 가지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시승 차량에는 가변 배기 옵션이 빠졌는데요. 가속 페달을 깊게 밟았을 때 등 뒤에서 터져 나오는 포르쉐 특유의 우렁찬 배기음이나 팝콘 소리를 기대했던 운전자라면 다소 심심하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가급적이면, 아니 저라면 무조건 가변 배기 옵션은 꼭 넣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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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권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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