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술수출 강국 K-바이오, 왜 M&A엔 약할까

오피니언 기자수첩

기술수출 강국 K-바이오, 왜 M&A엔 약할까

등록 2026.05.29 16:14

현정인

  기자

reporter

최근 글로벌 빅파마 일라이 릴리가 GC녹십자의 미국 관계사 큐레보를 비롯한 백신 개발 기업 3곳을 인수했다. 마운자로와 젭바운드로 막대한 현금을 확보한 릴리가 이번에는 백신 시장까지 영역을 넓힌 것이다.

업계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녹십자가 거둘 투자 수익에 쏠린다. 큐레보가 개발 중인 차세대 대상포진 백신 '아메조스바테인'의 가치를 글로벌 빅파마가 인정했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다만 이번 거래를 보며 한 가지 의문도 든다. 왜 한국에서는 이런 인수합병(M&A)을 찾아보기 어렵냐는 점이다.

글로벌 빅파마들의 성장은 M&A와도 맞닿아 있다. 자체 연구개발(R&D)만으로 기업을 키워 온 곳은 드물다. 필요한 기술이 있으면 플랫폼 기업을 사고, 유망 후보물질이 있으면 개발사를 품었다. 릴리의 행보도 크게 다르지 않다. 비만치료제로 벌어들인 현금을 다시 미래 성장동력 확보에 투입하고 있다. 자본이 기술을 흡수하고, 확보한 기술이 다시 더 큰 수익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다.

반면 국내 바이오 산업은 어떨까. 기술수출에는 강하지만 기업을 사들이는 데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이다. 유망 바이오텍이 등장하면 국내 기업이 이를 인수해 키우기보다는 해외 빅파마로의 기술이전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상당하다. 실제 한국 바이오 업계의 대표 성공 사례로 꼽히는 것들도 대부분 기술수출 계약이다.

국내 기업들은 글로벌 빅파마를 목표로 삼는다고 말한다. 3상까지 자력으로 완주해 글로벌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비전도 자주 제시한다. 하지만 성장 방식은 빅파마와 다르다. 공동개발에는 적극적이지만, 기업 자체를 인수하는 데는 신중한 모습을 보여왔다. 실패에 따른 부담이 큰 만큼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는 선택일 수 있지만, 실패 가능성이 큰 투자를 감수하며 성장동력을 확보해온 결과가 오늘날의 빅파마다.

물론 여기엔 기술특례상장 제도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이 제도는 매출이 부족해도 기술력이 있으면 코스닥 시장에 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며 산업 성장을 견인했다. 하지만 상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되면서 M&A 필요성은 낮아졌고, 높아진 기업가치 역시 M&A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시선도 존재한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투자금 회수 수단으로 IPO와 M&A가 모두 활용되는 반면, 국내에서는 각자 상장해 독립적으로 생존하는 모델이 일반화됐다. 그 결과 상장 이후에도 매년 억단위의 연구개발비를 감당하지 못해 유상증자나 정부 지원금에 의존하는 사례도 반복된다.

문제는 이런 구조가 산업 전체의 역량 분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국내에는 현금은 있지만 신약 개발 역량이 부족한 기업도 있고, 반대로 기술은 있지만 임상을 진행할 자금이 부족한 바이오텍도 있다. 심지어 유사한 플랫폼과 적응증을 개발하는 기업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들은 결합보단 각자 생존을 모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신약 개발의 핵심 승부처인 글로벌 임상 3상과 상업화 단계는 막대한 자금과 조직 역량이 필수다. 결국 상당수 국내 바이오텍은 초기 단계에서 기술을 이전하고 계약금과 마일스톤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성장한다. 임상 3상 성공 이후 발생하는 대규모 시장 가치와 상업적 성과는 기술을 사간 글로벌 빅파마의 몫이 된다.

이번 큐레보 인수는 한국 기술이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보여준 사례다. 다만 그 가치를 알아보고 품에 안은 기업은 한국 기업이 아닌 일라이 릴리였다.

기술수출 성과는 분명 K-바이오의 경쟁력이다. 그러나 기술을 파는 것만큼 기술과 기업을 사들이며 성장하는 구조 역시 중요하다. 한국 바이오 산업이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기술수출 계약이 아니라 산업 안의 자본과 기술, 인재를 결집할 수 있는 M&A 생태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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