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전성·소비자보호·자본규제 금융권 부담 높아져은행 가계대출·보험 회계제도·증권 자본활용 '골머리' 시장 위축 막을 균형 잡힌 감독과 제도 보완 요구
18일 정부와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이억원 후보자의 취임을 앞두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청와대를 거친 경제관료 출신인 이 후보자는 생산적 금융과 자본시장 활성화를 정책 기조로 내세우며 정책 설계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후보자는 부동산담보대출 등 비생산적 부문에 쏠린 자금 흐름을 첨단산업·벤처기업 등 생산적 분야로 돌리고 자본시장 활성화 정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할 방침이다. 이 같은 '생산적 금융' 드라이브는 침체된 자본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호재로 평가되며, 증권업계는 시장 활성화 정책이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길 기대하는 모양새다.
금융감독원도 지난 15일 이찬진 원장을 새 수장으로 맞이했다. 참여연대 출신 변호사이자 대통령 측근으로 분류되는 이 원장은 "금융시장을 불안하게 할 행동은 없을 것"이라며 시장 안정에 방점을 찍었다.
이 원장은 참여연대 집행위원장,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 등을 지내며 금융소비자 권익과 공적 자금 운용 감시에 힘써왔다. 변호사로서 금융 피해 구제 활동에도 참여한 경험이 있어 감독당국이 강조하는 불완전판매 점검과 내부통제 강화 과제에 적합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규제 강화 신호에 금융권 긴장감 확산
하지만 대통령 측근이 감독당국 수장을 맡게 되면서 관치금융 색채가 짙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임자에 이어 또다시 대통령 최측근 인사가 금감원장에 오른 만큼, 새 정부의 정책 기조에 맞춰 금융권에 각종 청구서가 쏟아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은행권은 새 금융당국의 건전성 규제 강화 기조에 가장 큰 압박을 느끼는 업권이다. 이 원장은 취임사에서 "가계부채 총량의 안정적 관리 기조를 확고히 유지하고 부채와 주택가격 사이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내겠다"고 강조했다. 대출 증가율을 억제하는 기조가 이어지는 가운데 은행들은 가계대출과 기업대출을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고 있다.
시중은행들은 자산 건전성을 지키면서도 정부가 요구하는 정책금융과 중소기업 지원까지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미 은행들은 가계대출 증가 억제를 위한 총량 규제 준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생산적 금융 확대는 결국 가계대출은 줄이고 기업대출을 늘리라는 뜻인데 경기 여건상 우량 기업도 줄고 있다"며 "대출 억제와 정책금융 확대를 동시에 맞추려면 수익성과 건전성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고 호소했다.
은행권은 막대한 비용 부담을 초래할 수 있는 '상생' 현안에도 긴장하는 분위기다. 새 정부는 부동산 PF 부실채권 해소를 위해 은행들이 출자하는 배드뱅크 설립을 검토 중이고, 금융권 전체에 부과되는 교육세 인상 논의도 진행되고 있다.
이복현 전 금감원장도 취임 직후 각 은행들을 돌며 금리인하 등 상생금융 계획을 이끌어낸 바 있다. 새 정부 들어서도 중소기업 대출 확대, 취약차주 채무조정 등 사회적 책임 이행 요구는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금융당국은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를 핵심 기조로 내세우고 있다. 금융회사 입장에서 불완전판매에 대한 감독당국의 현미경 검사가 일상화되고 내부통제 기준도 한층 높아질 것이란 얘기다. 상품 판매는 물론이고 사후관리까지 전 단계에 걸쳐 소비자 보호장치를 견고하게 갖추지 않으면 제재 리스크에 직면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확산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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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업계는 새로운 회계·자본 규제 도입 이후 자본 변동성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IFRS17과 K-ICS 시행으로 금리 변동이 곧바로 지급여력비율에 반영되면서 재무지표가 크게 요동치고 있어서다. 올해 1분기 보험사 평균 K-ICS 비율은 200% 밑으로 떨어지며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보험사별로 자본확충 노력이 이어지고 있지만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후순위채·신종자본증권 발행으로 당장의 비율은 방어했지만 경과조치가 끝나면 지표 하락이 불가피하다. 금융당국이 추가적인 보완책을 내놓지 않을 경우 일부 중소형사는 규제 비율을 맞추기 어려워 경영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증권업계도 자기자본 규제 강화와 영업행위 감독 강화라는 이중 부담에 직면해 있다. 금융당국은 대형 증권사가 조달한 자본을 모험자본 공급 등 생산적 금융에 얼마나 활용하는지 점검하고, 성과가 부족하면 더 많은 자본을 쌓도록 요구할 방침이다. 여기에 레버리지 한도와 유동성 관리 규제까지 강화되면서 위험투자 여력은 더욱 줄어드는 상황이다. 자본을 더 확보하라는 압박이 커질수록 투자 기회는 좁아지고 비용 부담만 가중되는 셈이다.
정책 효과 VS 산업 활력 균형점 관건
금융권은 건전성 관리, 소비자보호 강화, 자본규제 대응이라는 3중 압박 속에서 전략을 재정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업권별로 부담 요인은 차이가 있지만 대출·자본·영업 전반에 걸친 규제 환경 변화가 가시화되면서 비용 증가는 물론 자율성 위축이 불가피하다는 평가다.
금융권 안팎에선 규제 강도만 높이는 방식으로는 금융산업의 체질 개선을 이끌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선제적 리스크 관리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함께 금융산업 전반의 건전성을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소비자보호라는 원칙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금융회사가 새로운 서비스와 기술을 시도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주는 유연한 감독기조도 요구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규제만 강화한다면 시장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건전성과 소비자보호를 지키면서도 금융권이 혁신을 추진할 수 있도록 균형 잡힌 감독 기조를 세워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뉴스웨이 박경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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