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지만 대출이 늘었다는 것만으로 위기를 단정짓는 건 다소 성급해 보입니다. 물가가 오르고 주거비가 높아지면 대출 수요가 늘어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특히 실수요자 중심의 매매 회복이 이뤄지는 구간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짜장면 한 그릇 가격을 떠올려 보시면 이해가 더 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1000원이 채 되지 않았던 자장면은 이제 8000원, 9000원이 기본입니다. 직장인의 평균임금도, 생활비도, 집값도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같은 집을 사기 위해선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빌려야 합니다. 매년 가계대출 잔액이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울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게다가 현재 은행들은 자본여력을 충분히 확보한 상태입니다. 주요 시중은행의 보통주자본비율(CET1)은 13% 안팎으로, 규제 기준을 충분히 웃돌고 있습니다. 평균 임금이 상승하면서 1금융권 차주들의 상환능력 역시 개선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정상적인 실수요 대출까지 '위험'으로 몰아가는 건 무리한 해석일 수 있습니다.
최근 정부는 주택담보대출의 평균 위험가중치를 기존 15%에서 25%로 상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 조치가 기존 대출 잔액 전체에 적용되면 은행들의 위험가중자산(RWA)은 평균 3.8% 증가하고, 보통주자본비율은 최대 48bp 하락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자본비율 방어를 위해 은행이 여신을 조일수록 실수요자에게 돌아가는 금융의 문은 더욱 좁아질 겁니다.
대출을 억제하면 단지 부채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경제 전반의 흐름도 함께 위축될 수 있습니다. 실수요자들이 집을 사거나 이사하기 어려워지면 주택 거래가 줄고, 이사에 따라 발생하는 가전·가구·인테리어 등 소비도 함께 얼어붙습니다. 민간소비 회복이 지연되면서 내수는 더욱 둔화될 것이란 얘깁니다.
은행이 자본비율 방어에 집중하면서 대출 심사가 더 보수적으로 바뀌면 가계뿐 아니라 자영업자와 중소기업까지 자금줄이 막힐 수 있습니다. 결국 잠재성장률을 끌어내리는 결과로 이어지겠죠. 정부는 지난 23일 30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총량 중심의 대출 규제에 민생 회복의 발목이 잡힐지도 모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정책의 방향성과 일관성입니다. 잦은 규제 변화와 모호한 메시지는 시장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은행권의 자본관리 전략을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실수요자는 예측 불가능한 규제 환경 속에서 더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정책이 시장과 따로 노는 상황이 반복되면 결국 정책 자체가 시장에서 외면당할 겁니다.
총량 규제의 틀에만 갇혀 실수요자까지 틀어막는 것은 대단히 우려스럽습니다. 이는 '실용주의'를 내세운 새 정부의 정책 방향과도 일치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자산 급등기에 집중되는 투기성 대출과 다주택자·고위험 차주에게 쏠리는 비정상적인 신용을 어떻게 막을 것인지에 초점을 맞춰야 할 시점입니다.

뉴스웨이 박경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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