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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정주영 회장의 글로벌 경영 성공법칙

50돌 맞은 현대重③

故 정주영 회장의 글로벌 경영 성공법칙

등록 2022.03.22 08:30

수정 2022.03.22 09:41

윤경현

  기자

미래 내다보는 직관력·행동 우선주의 신념 담겨경영철학, 글로벌 현대 브랜드 초석 다지는 계기'고령교' 현대 사운 건 모험과 도전 정신 결과물"나는 행복한 노동자" 노동에 대한 진심 내면에노사화합, 인간종중에서부터 시작된다 아산의 철학'사업보국'의 일념으로 대한민국의 산업화 이끌어

아산 정주영 현대 창업자. 사진=현대중공업그룹 제공아산 정주영 현대 창업자. 사진=현대중공업그룹 제공

"나는 어떤 일을 시작하든 반드시 된다는 확신 90%에 되게 할 수 있다는 자신 10%를 가지고 일을 해왔다. 안될 수도 있다는 '회의'나 '불안'은 단 1%도 끼워 넣지 않는다. 기업은 행동이요 실천이고 신용이다" 아산 정주영 명예회장의 경영철학이 담긴 메시지다. 미래를 내다보는 직관력과 행동 우선주의 신념을 일찌감치 자신의 경영철학으로 받아들인 결과이다. 그의 삶은 자신의 경영철학을 글로벌 시장에 입증하는 과정으로 행동했다. 스스로의 경영철학을 믿으며 세계 시장을 목표로 한 공격적인 해외 시장 진출이 지금의 '현대' 브랜드를 글로벌 기업으로서 위상을 확립하는 초석을 다졌다.

◇막노동을 하더라도 '신용'이 있어야 = 정 회장의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을 신용으로 꼽았다. 아산은 1915년 11월 25일 강원도 통천군 송천면 아산리에서 태어났지만 인천과 서울에서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냈다. 그는 인천 및 서울에서 막노동을 하면서도 제일 먼저 일했고 가장 늦게 남은 것으로 유명하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신용을 잃으면 안된다는 자신의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당동에서 '복흥상회'라는 쌀가게 배달원으로 일을 하다가 주인으로부터 가게를 물려받고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도 '믿을만한 청년'이라는 신용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결국 이를 기반으로 '경일상회'의 경영자가 되었고 이후 '아도 서비스' 자동차 수리공장을 설립하며 글로벌 '현대'의 성공신화를 써 나갈 수 있었다.

정주영 명예회장은 성실과 신용을 경영의 최우선 가치로 여기며 어떤 순간에도 책임감 있게 공사를 마무리 지었다. 사진=현대중공업그룹 제공정주영 명예회장은 성실과 신용을 경영의 최우선 가치로 여기며 어떤 순간에도 책임감 있게 공사를 마무리 지었다. 사진=현대중공업그룹 제공

1953년 4월 수주한 낙동강 고령교 공사는 아산이 신용으로 현대라는 기업의 성공발판을 마련한 큰 계기가 됐다. 당시 휴전협정이 가조인되자 미군들은 서서히 일본으로 철수하기 시작했다. 정 회장은 미군을 대체할 새로운 발주처를 확보해야 했고, 정부가 발주하는 복구공사에 적극 뛰어들기로 했다. 이듬해 따낸 것이 낙동강의 '고령교' 공사였다. 많은 악조건 속에서 현대의 사운을 건 모험과 도전의 공사였지만 정 회장은 혼신을 다했다. 

하지만 당시 모든 물가가 120배로 상승하여 재정이 바닥났고 공사는 지지부진한 상황. 신용이 재산이라고 생각한 정 회장은 손해를 감수하더라고 계약기간 안에 공사를 끝내기 위해 자금조달에 매달렸다. 결국 이 공사는 엄청난 적자를 보고 계약공기보다 두 달 늦게 완공됐다.  이 공사는 정 회장의 소신대로 신용을 지킨 대표적 사례이다. 그는 사업은 망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지만 신용은 잃으면 그것으로 끝장임을 강조한 '신용 최우선주의' 보여준 단면적인 일화다.

◇아산의 인간존중 "나는 행복한 노동자" = 아산 정주영 명예회장은 땀 흘려 성실히 일하는 노동 자체를 삶의 귀중한 가치로 여겼다. 정 회장은 자신이 재벌이 아니고 "부유한 노동자"라고 자신의 자서전에 표현했다. '현대'라는 대기업 총수가 된 그는 스스로를 '노동자'로 분류할 만큼 스스로 노동에 대한 진심을 내면에 담았다. 정 회장은 자서전을 통해 기회가 될 때마다 직원들과 팔씨름, 배구 등을 함께 했고, 창사 이래 매년 개최한 신입사원 수련회에 빠지지 않고 참석해 젊은 사원들과 씨름을 했다고 회상했다.

아산 정주영 명예회장이 직원들과 스스럼 없이 어울리며 소탈하게 웃고 있다. 사진=현대중공업그룹 제공아산 정주영 명예회장이 직원들과 스스럼 없이 어울리며 소탈하게 웃고 있다. 사진=현대중공업그룹 제공

술자리에서는 20대들이 즐기는 최신 노래를 배워와 부르며 젊은 사원들을 놀라게 한 일화는 현대중공업에서도 유명하다. 정 회장은 당시 재계 분위기와 상반된 노사문화 발언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1989년 현대중공업 사내 훈시에서 나온 정 회장은 "노동조합은 있어야 합니다. 중역들이 근로자의 고충을 다 알 수가 없으므로 근로자들은 노조를 만들어 자신의 환경, 고충을 회사에 전달해야 해요. 모든 회사가 노조를 결성하고, 노조가 건전하게 발전하도록 하는 것이 현대의 기본 방침입니다"라고 말하며 노동자에게도 애정을 갖고 현장의 정서와 요구를 이해하려 노력한 장본인이다.

아산은 회상했다. 그는 작업복에서 배어나오는 땀 냄새를 사랑했고, 직원들의 진지한 눈빛과 웃음을 그리워했다. 또 햇볕에 그을리고 땀과 먼지로 얼룩진 얼굴에 깃든 그들의 열정과 패기를 자랑스러워했다. 노동자에서 과거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현장을 사랑했다. 노동자와 함께일 때 꾸밈없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고, 그들과 운동을 할 때 여흥을 즐길 때 그의 객기 또한 한껏 발산했다. 정 회장의 인간존중은 기업이 곧 사람이 중심이라는 신념으로 기업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구성원의 만족도 제고와 자기실현 그리고 복지를 중요시 여겼기 때문이다. 

1975년 현대건설 하계수련회에서 직원들과 씨름을 하고 있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사진=현대차그룹 제공1975년 현대건설 하계수련회에서 직원들과 씨름을 하고 있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사진=현대차그룹 제공

노사화합은 인간종중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게 아산의 철학이다. 정 회장은 '노사화합(勞使和合)'을 경영에 최우선 순위로 꼽았다. 노사는 적대관계가 아닌 가족의 입장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종업원을 가족처럼 아껴야 한다는 것이 정 회장이 추구하는 기업경영이다. 1977년 7월 정 회장은 아산재단을 설립했다. '국민 모두가 더불어 잘 사는 사회' 꿈꾸며 사재를 털어 만들었다. 정 회장은 기업인의 사회적 책임과 관련해서도 후대 기업인들에게 본받는 기업가이다. 아산은 그의 자서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를 통해 "기업은 규모가 작을 때는 개인의 것이지만 규모가 커지면 종업원 공동의 것이요, 나아가 국가·사회의 것"이라고 밝히고 "내 경우, 옛날 쌀가게를 했을 무렵까지는 그것이 나 개인의 재산이었지만, 그 후에는 국가·사회로부터 기업을 수탁해서 관리하는 청지기일 뿐"이라며 경영자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아산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 사진=현대중공업그룹 제공아산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 사진=현대중공업그룹 제공

◇아산, 아무도 가지 않는 세계시장 '사업보국' 외치다 = 정주영 명예회장의 진취적 기계에 기술주의와 개척정신이 더해져 만들어낸 성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업보국'의 일념으로 대한민국의 산업화를 이끌고, 국민 모두가 잘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일생을 바친 정주영 명예회장의 행적은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존경받는 기업인의 좋은 모범 사례로 꼽힌다. 아산은 자동차 산업의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에서 고유 모델을 제작, 생산해 세계시장 개척하여 60여개 국가에 수출하는 쾌거를 이룬 주인공이다.

이는 아산의 기술주의와 일맥상통한다. 조선사업 이외에도 건설, 자동차, 중공업 등 창의적인 기술을 통해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완전한 자립을 꿈꿨다. 한국경제사에 있어서 정 회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전후복구사업에서 공업입국, 중화학공업화, 첨단산업화로 이어지는 우리 경제사의 주요 물줄기를 민간부문에서 이끌어 온 주역을 담당한 게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초일류기업으로 도약을 하기 위한 당면 과제는 공격적 경영이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기술을 기반으로 도약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대적인 신념으로 창의와 독자적인 기술 확보에 사활을 걸었다. '세계 1위 조선 강국' 현대중공업, '글로벌 톱3 위협'하는 현대차 신화의 기반을 만든 것 역시 정주영 회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뉴스웨이 윤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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