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기준 미달 기업 대부분 주식 수 조정으로 대응1000원 기준 넘겨도 기업 펀더멘털에는 변화 없어추가 병합도 제한···실적·사업 경쟁력 개선 필요
국내 상장사들이 강화된 상장폐지 기준 시행 이후 잇달아 주식병합에 나서고 있다. 여러 주식을 한 주로 합쳐 주당 가격을 높이는 방식으로 1000원 미만 동전주에서 벗어나기 위한 움직임이다. 다만 주식 수와 주당 가격만 달라질 뿐 기업의 실적이나 현금흐름, 시가총액에는 변화가 없어 상장폐지를 늦추기 위한 임시방편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가 미달 18곳 중 15곳 병합···코스피는 3곳 모두
1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3일 시가총액이나 주가 기준 미달로 총 36개 종목이 관리종목 지정 대상에 올랐다. 이 중 30개 종목은 관리종목으로 새로 지정됐고 기존 관리종목 6개에는 지정 사유가 추가됐다. 유가증권시장에서는 9개 종목, 코스닥시장에서는 21개 종목이 새롭게 관리종목에 편입됐다.
신규 지정된 30개 종목을 지정 사유별로 나눠보면 주가 미달에 해당하는 동전주는 총 18개다. 시가총액 미달만 해당하는 종목은 9개였고 주가와 시가총액 기준에 동시에 미달한 종목은 3개였다.
주가 미달만으로 관리종목에 신규 지정된 18개 종목 가운데 15개(83.3%) 기업은 이미 주식병합을 예고하거나 공시했다. 신규 관리종목 전체 30개를 기준으로 봐도 절반 이상이 병합에 나선 셈이다.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주가 미달로 지정된 대영포장과 형지엘리트, 일신석재 등 3개 종목 모두 주식병합을 예고했다.
코스닥시장에서도 주가 미달 종목 15개 가운데 티케이지애강과 에스에너지, 뉴인텍을 제외한 12개 종목이 병합에 나섰다. 우리엔터프라이즈와 CMG제약, 샤페론, 좋은사람들, 제이엠아이, SDN, 옴니시스템, 이노인스트루먼트, 이스트에이드, 노을, 랩지노믹스, 에이비온 등이 해당한다. 거래소는 해당 기업들을 주식 액면병합 등이 예고·공시된 기업으로 분류했다.
주식 수 줄여 1000원 넘겨도 기업가치는 그대로
주식병합은 여러 주를 한 주로 합쳐 발행주식 수를 줄이고 같은 비율만큼 1주당 가격을 높이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주가가 500원인 주식 5주를 1주로 병합하면 이론적으로 주가는 2500원이 된다. 대신 발행주식 수가 기존의 5분의 1로 줄어드는 만큼 기업의 전체 시가총액이나 자본금이 병합 자체로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상장사들이 잇달아 병합에 나선 것은 지난달부터 동전주 상장폐지 요건이 본격 시행된 영향이다.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가 지난 2월 발표한 상장폐지 개혁방안에 따라 지난달 1일부터 주가 1000원 미만 기준이 새롭게 적용됐다.
30거래일 연속 주가가 1000원을 밑돌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되고 이후 90거래일 동안 45거래일 연속 기준을 웃돌지 못하면 최종 상장폐지된다. 이에 따라 병합을 통해 주가를 1000원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기업 입장에서는 가장 즉각적으로 시도할 수 있는 대응책이 된 셈이다.
그러나 병합만으로 기업의 영업 상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주당 가격이 높아지더라도 매출액과 영업이익, 영업현금흐름이나 사업 경쟁력 등 기업가치를 결정하는 기초 체력은 그대로다. 병합 이후 높아진 주가를 유지하려면 결국 실적이나 사업 전망에 대한 시장의 재평가가 뒤따라야 한다.
엄수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액면병합은 상폐를 회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추진되는 경우가 많아 좋은 신호로 해석되기 힘들다"며 "주식병합만으로는 기업가치를 높이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재무건전성과 수익성, 신사업 발굴 등 펀더멘털 개선이 뒤따르지 않으면 효과가 지속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반복 병합도 차단···주가 유지가 관건
금융당국도 기업들이 반복적으로 주식병합을 통해 동전주 기준을 우회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를 마련했다. 지난 5월 승인된 거래소 상장규정 개정안에는 반복적이거나 과도한 주식병합·감자를 즉시 상장폐지 사유로 적용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최근 1년 안에 주식병합이나 감자를 한 기업이 동전주 사유로 관리종목에 지정되면 이후 90거래일 동안 추가적인 주식병합이나 감자를 할 수 없다. 같은 기간 10대 1을 초과하는 과도한 주식병합이나 감자도 금지된다.
병합으로 일단 1000원 기준을 넘겼더라도 주가가 다시 밀릴 경우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기 어려워지는 셈이다. 특히 주식병합으로는 시가총액 기준을 높일 수 없다는 점도 한계다. 현재 상장 유지에 필요한 시가총액 기준은 유가증권시장 300억원, 코스닥시장 200억원이다. 내년부터는 각각 500억원과 300억원으로 한 단계 더 높아진다.
주식병합은 당장의 주가 기준을 해소할 시간을 벌어줄 수 있지만 상장 유지 여부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수단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병합 이후에도 실적과 사업 경쟁력이 개선되지 않으면 다시 관리종목이나 상장폐지 기준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 교수는 "부실기업 퇴출 강화는 장기적으로 시장 체질을 개선하는 호재이지만 단기적으로는 투자자들에게 '상장폐지 리스크'로 인식돼 오히려 투자 심리를 위축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며 "우리나라도 무조건 퇴출 속도를 높이기보다는 정상기업이 일시적인 시장 변동으로 퇴출되는 것을 막을 수 있도록 충분한 개선 기간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뉴스웨이 김호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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