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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실 前 여성가족부 차관 “사람이 중요하다, 멘토를 잡아라”

[인터뷰] 이복실 前 여성가족부 차관 “사람이 중요하다, 멘토를 잡아라”

등록 2015.02.03 06:00

수정 2015.02.03 11:30

홍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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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출범이래 여성가족부 처음으로 여성 차관으로 임명된 이복실 전 차관이 아이들을 키우며 30년 공직 생활을 한 워킹맘의 심경을 한 권의 책에 담았다.

스물세 살에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사무관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복실 전 차관. 그는 결혼 후 미국으로 유학을 간 남편이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올 때까지 직장생활을 하면서 육아까지 병행하며 직장 생활을 했다.

30년 동안 공직자로서 그리고 워킹맘으로 살아 온 그녀에게 엄마의 자리, 커리어우먼의 자리는 어떤 의미일까. 겨울 늦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1월의 끄트머리에서 이복실 전 차관을 만났다. 잔잔한 미소에 나지막한 음성이 천상 여성같아 보이지만 조리있고 단호한 말투에서 오랜 공직 생활을 해 온 자의 당당함이 느껴진다.

책 '여자의 자리, 엄마의 자리' 저자 이복실 전 여성부차관 / 사진= 카모마일북스 제공책 '여자의 자리, 엄마의 자리' 저자 이복실 전 여성부차관 / 사진= 카모마일북스 제공


◇ 30년 한길만 걸어온 공직, 단 한순간에 끝났다

"지난 2014년 7월24일 30년간 몸 담았던 공직을 떠났습니다. 출근하고 났더니 짐 싸서 나가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정무직은 그래요. 임명 받을 때도 언론을 통해 알게 됐는데, 그만 둘 때도 마찬가지죠. 청와대에서 인사가 나면 하던 모든 일을 그만 두고 짐을 쌓아야 해요. 20대에 직업을 가지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는데 30년이 지난 당시 그 일이 모두 끝이 난거죠"

이복실 전 차관은 그렇게 30년의 공직 생활을 마무리했다. 평생 한 직장에서 한 우물만 파 온 그였기에 처음에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불안감과 걱정이 앞섰다. 정든 직원들과 직장을 떠나게 되니 슬프기도 했다. 하지만 그간 녹록하지 않았던 공직 생활에서 배운 것이라고는 '실패는 있어도 좌절은 없다'였다.

"제 인사 소식을 듣고 주변에서 '축하한다'는 메시지가 쏟아졌어요. 정말 깜짝 놀랐죠. 그러면서 지인과 멘토분들이 하시는 말이 '30년 동안 명예롭게 그리고 열심히 살았으니 할 만큼 했다. 앞으로 다가 올 새로운 인생 축하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러고 났더니 당당히 나갈 수 있었습니다. 황당했던 마음에 반전이 일었죠. 주변에 좋은 사람 있으니 제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을 일깨워 줘 저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는 23세에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공무원으로 입사했다. 남들보다 탄탄대로를 걸었다. 워킹맘으로 살면서 겪은 마음고생 몸 고생은 이루 말 할 수 없을 만큼 많지만 그의 곁에는 늘 그를 지지해주고 도와주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사람이 재산이라는 생각으로 그는 곁에 있는 단 한 사람의 인연도 허투루 다루지 않았다.

지금처럼 멘토라는 말이 등장하지 않았던 시절에도 그는 멘토를 옆에 두고 또한 자신이 멘토가 되어 소통과 관계를 형성했다. 그의 곁에 있는 멘토는 평범한 여성에서 부터 기자, 교수, 의사 혹은 사회운동가 등 다양하다.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모두 아우르며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진심 어린 태도는 모든 공직인 특히 정치인이 가져야 할 소양이 아닌가 싶어진다.

◇ 제2의 인생을 꿈꾸다

이복실 전 차관이 주변인들과 나눈 결실이 30년 공직 생활을 그만 두던 그 날 다시 꽃피게 된 것이다. 각 분야의 멘토들은 나서서 제2의 인생에 대해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회심의 역작 '여자의 자리 엄마의 자리'를 펴낼 수 있는 단초가 됐다.

'여자의 자리 엄마의 자리'는 이복실 전 차관이 30여 년간 공직생활을 하며 여성 인권 향상을 위해 추진해온 여성정책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다. 워킹맘으로서 사회생활을 먼저 한 선배로서 여성후배들에게 직장생활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지혜도 알려준다.

"'여자의 자리 엄마의 자리'는 제 30년 공직생활 그리고 워킹맘으로의 생활이 고스란히 담긴 책이예요. 여성 정책을 20년간 하면서(그전에는 교육부) 15명 장관을 모시며 다양한 정책을 만들고 시행하면서 이 정책이 국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숱한 밤을 새우며 고민했죠. 특히 국민들은 정책이 어떻게 나오게 됐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 과정을 써봐야겠다 싶었죠. 이 지점에서도 멘토들의 조언이 주요했습니다. 제게 책을 쓸 수 있는 용기와 함께 기교 부리지 말고 진솔하게 쓰라고 말씀해 주시더라구요. 책을 어떻게 써야 하나 막막했는데 반짝 등불이 켜지듯 길이 보이더라고요"

책 '여자의 자리, 엄마의 자리' 저자 이복실 전 여성부차관 / 사진= 카모마일북스 제공책 '여자의 자리, 엄마의 자리' 저자 이복실 전 여성부차관 / 사진= 카모마일북스 제공


"책을 쓰기로 마음먹고 장관님들께 허락을 구하기 위해 연락을 드리니 '잘 생각했다.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면 아무 모른다'고 격려해 주시더라고요. 그렇게 하고 나니 30년 동안 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욕이 일었고 제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었어요. 특히 어릴적 같이 있어 주지 못했던 딸이 있는 미국에 가서 옆에 있어 주고 싶기도 했죠. 결심을 하고 일주일 만에 제가 미국행 비행기안에 있더라고요"

이복실 전 차관의 추진력은 여성가족부에 있을 당시에도 유명했다. 보육업무를 담당하던 시절 보육행정전산망구축, 보육교사 국가자격증제 도입, 보육시설 평가인증제 등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를 규제로 받아들인 기존 보육 시설장들의 반발이 심했다.

"이 정책은 워킹맘들에게 꼭 필요할 뿐만 아니라, 직장 다니는 엄마가 안심하고 아이들을 맡길 수 있도록 장치가 필요했죠. 정책을 주진하고 설득하고 극복하는 것 역시 정책을 펼치는 저희가 걸어갈 과정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니 망설일 필요가 있나요. 여성가족부에서도 추진력 하면 저라고들 했었죠"

◇ 원고 쓰면서 스스로 치유 받아

미국에 도착한 이복실 전 차관은 서울에서와는 정반대인 한가로운 생활을 영위했다. 오전에 딸 도시락 싸주고 나서, 대학 도서관에 배낭 매고 가던지 인근 카페에서 책을 썼다. 매일 매일이 똑같은 날 똑같은 풍경이 반복됐지만 그 느림이, 변함 없음이 그에게는 평안을 선사했다. 40일간 100여 페이지에 해당하는 초고를 완성하고는 두 달 뒤 다시 서울에 돌아왔다.

"글을 남편에게 보여주니 '재미있다'라는 말을 하면서 '여성가족부에서 참 많은 일을 했구나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여성가족부에 대한 편견이 사회 전반에 팽배한데, 이 책을 통해 사회를 바꾼 일들이 공개되면 그 시각이 많이 바뀌겠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비록 남편의 말이긴 하지만 누군가 제가 한일이 보람된 일이라고 해 주니 그리고 그 결과물을 내 힘으로 써 냈다는 생각을 하니 이루 말할 수 없이 벅차 올랐습니다"

이어 출판사 대표를 만나 초고를 보여주고 워킹맘으로서 사적인 이야기를 추가하기로 했다. 책이 여성가족부 정책에 대한 이야기만 들어가면 너무 딱딱하다는 것이 출판사 대표의 의견. 사적인 이야기를 공개한다는 것이 망설여졌다. 하지만 여성으로서 직장과 육아를 동시에 할 수 밖에 없는 모든 여성들을 위해 그의 경험담이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털어 놓자는 것이 결론이었다.

"책을 쓰면서 아이들 어렸을적 혼자 발 동동 구르며 힘들었던 시절이 떠오르더라고요. 특히 신혼 초기 남편이 미국 유학을 바람에 육아는 모두 제 몫이었어요. 다 잊어 버린줄 알았는데, 글을 쓰면서 하나하나 다 기억 나더라고요. 담담할거라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게 쓰면서 울었어요. 그렇게 남몰래 가슴에 묻어둔 과거 일들을 끄집어 내 속시원이 컴퓨터에 옮겨 놓으니 마음이 한결 후련해 지더라고요. 뭔가 묶은 찌꺼기를 닦아낸 듯, 오랫동안 가슴을 짓눌렀던 무거운 짐이 빠져 나간듯 가벼워 지고 힐링이 됐어요. 제가 제 글을 쓰면서 치유 받은 셈이죠. 때문에 이 책이 무겁고 딱딱한 공부하는 책이 아닌, 읽는 사람들 공감하고 위로와 위안이 됐으면 좋겠어요"

책 '여자의 자리, 엄마의 자리' 저자 이복실 전 여성부차관 / 사진= 카모마일북스 제공책 '여자의 자리, 엄마의 자리' 저자 이복실 전 여성부차관 / 사진= 카모마일북스 제공


"이 책이 나는 자랑하는 책이 아니길 바래요. 그래서 제 경험 대신 정책에 관한 이야기에 집중했어요. 여성, 가족, 청소년 정책이 어떻게 탄생했고 여성가족부가 국민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써보고 싶었어요. 그렇게 되면 여성가족부를 향한 비난의 시선이 자연스레 사라지겠죠. 여성가족부의 정책은 여성 자신, 내 엄마, 내 아내와 관련된 현실적인 정책일뿐 페미니스트의 구호가 절대 아니다. 실질적으로 와 닿는 정책인데 불구하고 일부에서는 편견이 있는 것이 안타깝다"

그렇게 이복실 전 차관은 30년간 공직에서 쏟았던 열정을 책 한 권에 쏟아 부었다. 돌이켜 보니 많은 일들이 있었다.

◇ "백희영 장관 대변인 해라"... 대변인 업무 180도 바꿔

"백희영 장관님이 대변인을 시킨적이 있어요. 대변인은 보통 신참 국장이 하는 일인데, 당시 저는 고참급이었어요. 마음 속으로 조금 싫었죠. 그런데 백 장관님이 '이 국장 스타일대로 일 해라'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하시더군요. 저는 항상 보직을 맡을 때마다 전임자가 하던 방식을 따르지 않고 내 방식대로 새롭게 하려고 했어요. 때문에 대변인도 각 과에서 마련한 보도자료가 아닌 과장들과 직접 기획해서 이슈를 만들곤 했죠. 또 이슈가 터지면 성명을 발표하는 것 아닌 이슈에 적극 개입했어요. 덕분에 당시 쌓은 언론과의 친분은 이후 좋은 자산이 됐어요. 또 언론 이해하는데 도움도 됐고요"

이외에 이연숙 장관은 남성들 고유의 영역이었던 총무과장 업무를 맡겼다. 총무과장은 인사와 예산 담당하는 부처의 기본 골격과 같은 곳이었다. 남성들이 하는 일을 여성도 할 수 있음을 보여 주시려 했던 것. 이후 여성들이 더 적극적으로 활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 인맥 관리 노하우, 진정성 있는 인간 대 인간으로 다가가라

이복실 전 차관이 공직에 임명됐던 1980년대는 여성 사무관이 10여명으로 공직자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남성들의 영역에서 일하려면 완벽한 업무 능력도 필요하지만 인간 대 인간으로 다가가 서로 믿고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꾸리는 것이다.

"서로에게 배운다는 마음으로 진정성을 가지고 다가가야 해요. 인맥 관리 노하우는 이 진정성을 가지고 인간 대 인간으로 다가가면 됩니다. 상대의 어려운 점에 귀 기울이고 권위주의적이지 않고 소탈하고 인간적으로 다가가다 보면 누구나 내 편(?)이 되더군요. 그래서인지 주위 분들이 저는 공무원 특유의 느낌 없다고들 하세요"

뿐만 아니다. 여성정책을 하다 보니 사고가 유연해졌다. 여성 정책은 항상 타 부서와 협력이 필수. 때문에 항상 협조와 합의가 모든 일에 따라붙는다. 때문에 파트너십 구축하는 것 몸에 벴다.

"멘토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늘 내 옆에서 내 마음을 보듬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멘토가 되죠. 제가 쓴 책을 보고 위로를 받고 치유 받는 다면 제 책이 바로 멘토인 것이죠. 멘토를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먼곳에서 찾지 마세요"

◇ 공직에서 물러난 뒤가 더 바빠

지난해 여름 공직에서 물러나 해가 바뀌고 겨울의 끝자락이 되기까지 책을 썼던 40여일 만 빼고 매일매일이 열정적으로 살았다. 그것이 이복실이라는 여자의 본 모습이다. 뭐든지 일을 만들어야 하고 뭐든지 작당모의(?)를 해 추진해야 한다.

지난 가을부터 모 언론사 두 곳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일주일에 두 편을 글을 쓴다. 그리고 여기 저기서 특강과 강연이 쇄도중이다. 특히 성폭력 예방 교육과 성희롱 폭력 전문 강의 등 그의 주특기를 십분 살린 강의는 준비하는 것 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오는 3월부터는 숙명여대 가족자원경영학과에서 교수로 초빙교수로 일주일에 9시간 강의도 예정 돼 있다. 이외에 한국 장학제단에서 멘토링, 각종 단체에 재능기부,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봉사 등 할 일이 산더미다. 책 2탄도 고려중이다. 여성이 여성의 적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는 책을 쓰고 싶다. 여자가 좋아하는 여자들이 성공한다는 콘셉트가 2탄의 내용이 될 것이라고.

"딸들이 엄마 그만두고 우울증 걸릴 줄 알았는데 더 활발하게 활동하니 보기 좋다고 하더라고요. 지금이 잘 어울리고 더 생기가 있어 보인다고요"

이는 이복실 전 차관이 묵묵히 지난 30년을 앞만 보고 걸었기 때문이리라. 한 걸음 한 걸음 몸소 걸으며 다져 놓은 그 토대가 있었기에 지금의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인간 이복실이 있는 것이다.

◇ 딸들에게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마지막으로 이복실 전 차관은 성장해 이제는 성인이 된 두 딸과 이 땅에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조언했다.

"자기 인생에 한 번은 성공을 해야 합니다. 그 사회적인 성공일 필요는 없어요. 요즘 청년들은 자신감이 부족하고 뭘 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마음먹은 걸 한 번은 이뤄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어떤 시험을 준비할 때 그 시험이 뭐든 통과할 수 있도록 최선을 최고의 열정을 쏟아 부어 보라는 것이죠. 그렇게 작은 것에도 성공의 기쁨을 맛본 자만에 또 다른 성공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원동력을 마련할 수 있어요. 그것이 자존감 자신감으로 이어지죠"

이어 일하는 여성들에게는 "주변의 도움이 없이는 일과 가사 병행은 불가능해요. 가사가 아내의 일만이 아니라 부부의 공동일이라는 의식 개혁이 필요해요. 남편이 아내를 도와주는 것이 아닌, 가정과 육아는 공동으로 책임져야 할 부분이라는 의식 변화가 필요한 시점인 것 같아요"

한편 이복실 저 차관의 첫 책 '여자의 자리 엄마의 자리'에는 여성이 '유리천장을 깰 수 있는 7가지 리더십'을 제시한다. 그가 30년 동안 공직생활을 하면서 모신 15명의 여성장관에게서 배운 리더십이다. 추진력, 카리스마, 변화와 도전, 열정, 냉정, 소통, 당당함. 공직생활에서의 에피소드를 통해 7가지 리더십을 알기 쉽게 풀어냈다.

홍미경 기자 mkhong@

뉴스웨이 홍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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