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송료 인상' 넘어 '노동자성' 놓고 정면충돌
수도권 레미콘 운송노조가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하면서 건설·시멘트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노사 간 잠정합의안이 조합원 투표에서 부결되면서 레미콘 공급 차질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2년마다 반복되는 레미콘 운송 갈등이 또다시 건설현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반면, 노조는 물가 상승과 비용 부담을 고려하면 생존권 보장을 위한 정당한 요구라는 입장이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전국레미콘운송노동조합은 전날 사측과 마련한 잠정합의안에 대한 찬반투표를 실시한 결과 조합원의 68.3%가 반대표를 던지며 부결시켰다. 앞서 노사는 장시간 조정회의 끝에 레미콘 운송단가를 기존 회당 7만5800원에서 8만원으로 5.5%(4200원) 인상하는 방안에 잠정 합의했다. 그러나 노조가 당초 요구했던 회당 8000원 인상에는 미치지 못하면서 조합원들의 동의를 얻지 못했다.
노조는 유가, 차량 유지비, 인건비 상승 등을 감안하면 현행 운송료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특히 수도권 운송료가 일부 지방보다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현실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반면 레미콘 제조사들은 건설경기 침체 장기화로 수익성이 악화된 상황에서 과도한 운송료 인상은 경영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맞서고 있다. 업계는 최근 몇 년간 반복된 원가 상승 압박 속에서 운송비마저 급격히 오를 경우 가격 경쟁력 약화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이번 갈등이 단순한 운송료 협상을 넘어 운송기사의 법적 지위와 단체교섭 체계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노조는 행정법원 1심 판결과 전국 단위 노조 설립을 근거로 통합 단체교섭을 요구하고 있다. 레미콘 운송기사들이 사실상 사용자에 종속된 특수고용노동자인 만큼 노동3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제조사들은 해당 판결이 아직 항소심 절차를 밟고 있어, 법적 판단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국 단위 교섭에 응하기 어렵다고 선을 긋고 있다. 자칫 기존 거래 구조와 계약 체계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앞서 수도권 레미콘 운송노조와 제조사 간 갈등은 2년 단위 운송단가 협상 시기마다 반복돼 왔다. 2022년에는 운송료 인상이, 2024년에는 단체협약 체계가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며 공급 차질이 발생했다. 당시 수도권 주요 레미콘 업체들의 출하량은 평상시 대비 10% 안팎 수준까지 감소했고 일부 건설현장에서는 콘크리트 타설 일정이 연기되기도 했다.
이번에도 파업이 장기화할 경우 건설업계와 시멘트업계 피해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레미콘은 아파트, 오피스, 물류센터, 도로, 교량 등 대부분의 건설공사에 사용되는 필수 자재다. 특히 골조 공사의 핵심인 콘크리트 타설 작업은 레미콘 공급이 중단되면 사실상 진행이 불가능하다.
건설사들은 최근 나타난 실적 회복 흐름이 꺾일 수 있다고 우려한다. 대우건설과 DL이앤씨, GS건설, IPARK현대산업개발 등 주요 상장사들의 영업이익과 이익률이 크게 뛰며 실적 개선세에 무게감을 더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미콘 공급 차질이 장기화되면 공정 지연과 공기 연장, 지체상금 부담 등으로 실적 개선세가 제약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대한건설협회는 '레미콘 휴업 관련 기업애로 지원센터'를 설치하고 정부에 중재를 요청한 상태다. 협회는 공급 차질 장기화에 대비해 현장 배치플랜트 설치 기준 완화 등 대체 공급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업계에선 이번 갈등이 과거 운송료 중심 분쟁을 넘어 레미콘 운송시장 구조 자체가 변화할 수 있는 사안인 만큼 사태 장기화 가능성을 언급한다.
시멘트 업계 한 관계자는 "운송료 상승 기준에 더해 운송기사의 법적 지위와 단체교섭권 문제가 전면에 등장했다"며 "이번 사태는 단순히 '2년 주기 레미콘 운송 분쟁'의 연장선이 아니라, 레미콘 운송시장 구조를 가를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2년마다 반복되는 레미콘 운송 갈등의 근본 원인은 운송단가가 아닌, 운송기사의 지위와 교섭 구조에 있었다. 20년 가까이 유지된 레미콘 믹서 증차 금지 조치로 시장 진입 장벽과 레미콘 운송노조의 교섭력이 높아진 상황에서, 뚜렷한 제도 개선과 지원책이 빠진 임시방편 합의가 나오면 갈등은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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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권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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