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람 한 점 없는 화창한 봄날.
드라이버로 멋지게 날린 공이 경쾌한 타구음을 내며 멀리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카트에 탄 동반자들을 뒤로 하고 홀로 양탄자 잔디를 밟으며 낙하 지점으로 향했다. 가까이 다가선 순간 덜컥 걱정이 앞섰다.
공이 벙커 모레에 반쯤 잠겨 있었다. 흡사 새 보금자리에 알이 놓인 것 같았다. 어떻게 빼내지 싶어 안절부절했다. 계란 후라이(에그 프라이·Egg fried)였다.
골프에는 먹거리를 연상시키는 의외로 은어가 많다. 결정적인 순간에 분위기와 흥미를 북돋우려고 주고받는다.
'에그 프라이'는 원래 '프라이드 에그 라이(fried egg lie)'가 맞다. 공이 포물선을 그리며 벙커에 떨어져 반쯤 묻힌 상태다.
공중에서 바로 떨어져 생기기도 하지만 페어웨이에 맞고 튄 후에 생기기도 한다. 한쪽(side)만 익은 달걀 노른자(sunny side up) 프라이와 비슷해서 붙여졌다.
프라이드 라이 벙커 샷은 고난도 기술이다. 보통 벙커 샷과 달리 어드레스 때 스탠스를 닫는다.
전문가에 따르면 두 발을 모래에 깊게 묻어 단단히 고정하고 체중은 왼발에 60% 정도 싣는다. 공은 두 발 중간보다 약간 오른쪽에 둔다.
그립은 평소보다 짧고 강하게 잡고 페이스를 약간 닫는다. 백스윙을 가파르게 가져가고 공 바로 뒷부분과 모래를 함께 치는 '폭발 샷(explosion shot)'이 정답이다.
"오늘은 모처럼 만났으니 은갈치 아닌 먹갈치로 합니다."
첫 홀로 향하면서 카트에서 동반자가 룰을 정한다면서 갈치를 입에 물고 나왔다. 난데없이 튀어나온 갈치라는 단어에 또 다른 동반자의 눈이 동그래졌다.
핀에서 퍼터 길이 이내에 공이 놓이면 컨시드를 허용하는 범위라며 자신만 아는 용어인 양 의기양양했다. 먹갈치는 그립 끝까지, 은갈치는 그립을 제외한 샤프트 길이 안에 붙였을 때 홀인(Hole-in)을 인정한다는 부가설명을 달았다.
생선 먹갈치는 검정 바탕에 흰 점이 많고 은갈치는 은빛이 나는 데에서 유래했다며 심화 과정에 들어갔다. 그립은 검은색, 샤프트는 은색이 많다는 점에 착안한 은어란다.
먹갈치는 보기 이상, 은갈치는 파 퍼트 이하에 적용한다고 적시했다. 한 타라도 줄이려는 골퍼 심리를 담은 '먹갈치 은갈치' 룰이다.
솥두껑 그린이란 용어도 있다. 공에 핀까지 오르막이었다가 일정 지점을 지나 내리막으로 형성된 지형을 말한다. 힘 조절과 방향 겨누기에 신중을 요한다.
벙커는 모든 골퍼에게 공포대상이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전'은 벙커전이고, 튀김 중에서 최고는 벙커튀김이다.
공이 벙커 앞에 멈췄거나 모래를 맞고 공이 벙커 밖으로 튀면 얼마나 행운인지 모른다. 운이 나쁘면 공을 빼내지 못해 집에 못 갈 수도 있다. 최악은 벙커무침으로 벙커에 공이 묻힌 상태이다.
해저드에선 난데 없이 수제비라는 은어가 등장한다. 공이 몇 번 수면을 튀기고 나아가다가 페어웨이나 그린에 올라갔을 경우다.
당사자는 환호하고 동반자는 머리를 쥐어뜯는다. 밀가루 음식 수제비를 만들 때 뜨거운 물에 던져진 반죽이 튀는 형상에서 따왔다.
경기도 양주CC 짧은 홀에서 동반자 공이 연못 끝 바위에 맞고 거꾸로 튕겨 물수제비를 일으켰다. 이 때 놀란 잉어가 물 위로 솟아오르는 기상천외한 장면을 본 적 있다.
막창이란 희한한 은어도 있다. 오른쪽으로 크게 휜 홀에서 공을 잘 날렸는데 캐디가 막창이라고 조심스레 말했다. 대구의 별미 막창인가 싶었다.
너무 잘 맞아 코스 휜 부분 너머로 아웃 오브 바운스(OB) 낸 것을 뜻한다. 막창은 소의 마지막 위(제4위)를 고기 부위로 칭할 때 사용하며 홍창으로도 부른다.
마지막 경계를 넘겨버렸다는 의미다. '가로질러 넘기다'를 표현하는 영어 '크로스 오버(Cross over)'가 정확한 용어다.
막 포장을 벗긴 새 공을 물이나 숲으로 날려보내면 짜장면 한 그릇을 날렸다고 말한다. 타이틀리스트 골프 공 12개들이 한 박스 인터넷 가격 7만3000원을 감안하면 6080원이 단 10초 만에 사라졌다.
고물가 시대 짜장면 값 7000원 선에 못 미치지만 몇 년 전만 해도 비슷했다. 계란 한 판 값을 날렸다고도 말한다.
언젠가 그린에서 4퍼트를 범한 동반자가 허공을 쳐다보며 "너무 맵다"고 해서 어리둥절했다. 파4 홀 스코어 더블 파를 몹시 맵다는 양파로 표현한 것이다.
식재료 양파와 더블 파를 의미하는 양(兩) 파의 동음이의를 사용한 은어다. 정식 용어는 쿼드러플(Quadruple) 보기이다.
골프 초기 치킨 윙(Chicken wing)으로 엄청 고생했다. 맥주 안주 치킨처럼 스윙 도중 올바르게 팔 회전이 이뤄지지 않아 닭 날개처럼 꺾인 현상이다.
거리 손실은 물론 슬라이스를 일으키는 요인이다. 박영민 한국체대 골프부 지도교수는 "편하게 빈 스윙을 하면 어느 순간 헤드가 일정한 궤도를 그린다"며 "간격을 기억했다가 공을 티 위에 올려놓고 목표 방향을 보고 스윙하면 고칠 수 있다"고 조언한다.
멀리건 대신 '씨 없는 수박'이라는 순수 우리말도 사용한다. 스킨스 게임에서 멀리건을 사용하되 해당 홀에서 이겨도 상금은 못 챙긴다는 뜻이다. 부화하지 못한다고 해서 '무정란'으로도 부른다.
동반자가 먼 거리 두 번째 샷을 앞두고 캐디에게 감자를 달라고 요청하자 바로 하이브리드를 건네줬다. 캐디가 하이브리드의 은어 표현인 고구마로 즉각 알아들은 덕분이다.
하이브리드는 롱 아이언과 페어웨이 우드처럼 샷하기에 어려운 클럽을 대체하는 신무기다. 아이언과 우드의 장점을 합쳐 만든 것으로, 우드를 반 토막 낸 것처럼 생겼다고 해서 고구마란 별칭이 붙었다.
참고로 유틸리티는 넓은 페이스에 낮은 우드 모양이지만, 길이는 상대적으로 짧아 편하다. 보통 페어웨이 우드 대용으로 다룬다. 하이브리드와 유틸리티는 서로 기원은 다르지만 요즘은 혼용해서 사용된다.
아무리 군자 골퍼라도 평생 알까기를 한 번도 저지르지 않을까. 알까기는 동반자가 보지 않는 곳에서 잃어버린 공 대신 다른 공을 몰래 놓고선 경기하는 속임수다.
알까기를 범하지 않더라도 OB나 페널티 구역으로 미세하게 넘긴 공을 살짝 옮겨 놓고 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유사 알까기다.
골프에서 알까기 유혹은 너무나 강렬하다. 들키지 않고 그 홀 승부에서 이겨도 다음 홀부터 문제다.
내내 양심에 시달리다가 결국 자멸한다. 몰래 급하게 알을 까먹다가 체한 것이다.
골프에서 의외로 은어가 많이 사용된다. 은어를 많이 알고 있는데 정작 스코어는 별로인 골퍼도 의외로 많다.
정현권 대한변리사회 미디어 전문위원 겸 지식재산뉴스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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