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간 쌓아온 프리미엄 위상과 디자인 내공GV80 이름표 떼내고 오직 자신감으로 승부풀체인지·전동화로 미래 시장 준비 필요
처음 이 차가 세상에 나왔을 때 사람들은 멋진 디자인에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론 의구심을 던졌습니다. "과연 국산 SUV가 이 가격을 받는 게 맞냐"는 물음표였지요. 그로부터 7년이 흐른 지금, 도로 위에서 마주치는 GV80은 이제 더 이상 누군가에게 증명할 필요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화려한 수식어나 요란한 광고 없이도 두 줄 실루엣만으로 '제네시스'라는 이름을 온전히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억대 가격표가 무색하지 않은 관록을 갖추기까지, 이 차가 쌓아온 내공과 우리가 놓치고 있던 디테일을 살폈습니다.
시간을 잠시 2019년 말로 되돌려보겠습니다. 제네시스는 브랜드의 명운을 건 첫 번째 SUV GV80을 공개했습니다. 거대한 방패를 형상화한 크레스트 그릴과 날카로운 두 줄의 쿼드램프는 이전까지의 국산차와는 확연히 다른 문법을 보여줬죠.
당시 업계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파격적인 시도에 대한 우려도 있었으나, 결과적으로 이 디자인은 제네시스라는 브랜드를 전 세계 시장에 각인시킨 결정적인 한 수로 자리잡았습니다. 한국적인 여백의 미와 역동적인 우아함이 공존하는 모습이었죠. 생소하게 느껴졌던 두 줄 램프는 이제 멀리서 봐도 제네시스라는 존재를 알리는 상징으로 자리 잡았으니, 브랜드 정체성 측면에서는 성공한 셈입니다.
어느덧 출시 7년 차에 접어들었습니다. 2023년 부분변경을 거쳤지만 전체적인 외형은 크게 바뀌지 않았죠. 그런데 2026년형 모델에서 제네시스가 보여준 행보가 무척 흥미롭습니다. 최근 연식변경 모델의 뒤태를 유심히 살펴보셨나요? 그곳엔 수년간 자리를 지키던 'GV80'이라는 모델명과 사륜구동을 상징하는 'AWD' 레터링이 홀연히 자취를 감췄습니다.
오직 차체 중앙에 큼지막하게 새겨진 'GENESIS' 브랜드 레터링만이 당당하게 남았습니다. 사실 이건 롤스로이스나 벤틀리, 람보르기니 같은 하이엔드 브랜드가 주로 구사하는 고도의 브랜드 전략입니다. 구구절절하게 "나는 어떤 모델이고 어떤 구동 방식을 쓴다"라고 설명하지 않아도, 오직 차의 실루엣과 그 독보적인 두 줄 램프만으로 "나는 제네시스다"라고 증명할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의 표현이지요. 이제 GV80에게 이름표는 거추장스러운 수식어일 뿐입니다. 7년의 세월 동안 도로 위에서 쌓아온 데이터와 존재감이 곧 이 차의 가장 확실한 명함이 된 셈이니까요. 이 자신감, 멋집니다.
실내로 들어서면 시대를 앞서가는 테크놀로지의 정수가 펼쳐집니다. 가장 먼저 눈을 사로잡는 것은 대시보드를 가로지르는 광활한 파노라믹 디스플레이입니다. 요즘 운전자들은 스마트폰을 무선으로 연결하는 카플레이나 안드로이드 오토에 익숙해져 있지만, 적어도 GV80 안에서만큼은 그 연결선을 잠시 내려놓으셔도 좋습니다.
제네시스의 순정 내비게이션은 이제 스마트폰 앱의 편리함을 넘어선 품격을 보여줍니다. 이음매 없이 매끄럽게 연결된 두 개의 화면은 단순히 지도를 보여주는 도구를 넘어서 차량의 모든 정보와 유기적으로 소통합니다. 특히 감탄스러운 대목은 사용자 배려입니다. 낯선 길을 운전하다 보면 갑자기 전화가 오거나 각종 알림 팝업창이 떠서 결정적인 회전 구간을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지요?
GV80은 그런 불상사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길 안내가 한창일 때 뜨는 각종 안내창을 계기판이나 화면 한쪽으로 슬쩍 밀어 넣어줍니다. 메인 화면의 길 안내는 단 1초도 끊기지 않고 계속 흐르지요. 운전자의 시선이 흩어지지 않도록, 그리고 그 여정이 방해받지 않도록 배려하는 이 치밀한 로직. IT 강국 코리아 디테일이 럭셔리라는 옷을 입었을 때 어떤 시너지를 내는지 보여주는 완벽한 사례입니다.
많은 분이 GV80을 논할 때 늘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질문이 있습니다. "왜 에어 서스펜션은 안 넣었냐?" 하는 의구심이죠. 하지만 실제 도로 위에서 느껴지는 질감은 그런 선입견을 보란 듯이 타파합니다.
차 안을 가득 두른 이중접합 유리와 차체 곳곳에 아낌없이 투입한 흡음재가 외부 세계와 나만의 세계를 갈라 놓습니다. 고속도로를 시속 100km로 달릴 때 들려오는 풍절음이나 하부 소음은 마치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질 뿐입니다. 프리뷰 전자제어 서스펜션은 전방 카메라로 노면의 상태를 미리 읽고 댐퍼의 감쇠력을 조절합니다.
그 결과, 에어 서스펜션 특유의 둥실거리는 느낌과는 또 다른 감각을 선사합니다. 쫀득하면서도 단단하게 노면을 움켜잡는 고급스러운 안락함을 선사합니다. 물론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기에, 여기에 에어 서스펜션까지 얹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하도록 만들죠. 아마 그 욕망은 올 연말 나올 형님이자 진정한 플래그십, GV90으로부터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이제는 조금 냉정하고 솔직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GV80은 분명 여전히 멋지고 훌륭한 차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영화라도 열 번 스무 번 반복해서 보면 감흥이 떨어지듯, 7년째 큰 틀에서 변하지 않은 디자인은 슬슬 '모델 노후화'라는 숙명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부분변경을 거치며 디테일을 다듬었지만 도로 위에서 너무 오랜 시간 마주하다 보니 처음 느꼈던 신선한 감정은 희미해진 지 오래입니다.
실제로 최근 제네시스의 전체적인 글로벌 판매 실적 수치가 예전만큼 폭발적이지 않다는 점은 뼈아픈 대목입니다. 시장은 이제 더 자극적인 변화, 혹은 더 효율적인 대안을 원하고 있습니다. 이제 정말 풀체인지를 해야 할 때지요.
제네시스가 다시 한번 도약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겉모습 치장을 넘어 시대의 요구인 '전동화' 숙제를 풀어야 합니다. 순수 전기 모델은 물론,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REV) 또한 투입해 정숙성과 효율성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죠. 1세대 GV80이 제네시스의 이름을 알렸다면, 이제 나올 다음 세대는 제네시스의 미래를 책임져야 합니다.
우리는 이름표를 떼고도 당당히 서 있는 뒷모습에서 국산 프리미엄 자동차의 괄목할 만한 성장을 목격했습니다. 이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며, 동시에 다음 장을 준비해야 할 시점에 와 있습니다. 더 강력한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과 정교한 전동화 전략이 맞물릴 때, 제네시스는 비로소 수입 브랜드의 대안을 넘어 글로벌 시장의 강력한 경쟁자로 올라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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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권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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