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T·바이오 2012년과 다르다···제약·바이오, 집단행동 대신 각자도생

ICT·바이오 ICT일반 약가인하 명과암

2012년과 다르다···제약·바이오, 집단행동 대신 각자도생

등록 2026.01.21 07:14

이병현

  기자

중소·중견기업 위기, 대형사 비교적 안정매출 감소·영업이익 하락 불가피정부, 건강보험 재정 부담 완화에 집중

그래픽=박혜수 기자그래픽=박혜수 기자

정부가 약가제도 개편을 본격화하면서 제약·바이오 업계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제네릭(복제약)을 중심으로 가격이 평균 20% 이상 내려갈 것으로 예상되는 이번 개편은 2012년 일괄 약가 인하 이후 14년 만의 대형 정책 변화로 평가된다. 다만 업계의 대응 방식은 당시와 크게 달라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2012년 약가 인하를 앞두고 제약업계는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대규모 궐기대회를 열며 집단 반발에 나섰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런 공개 행동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현재 한국제약바이오협회를 중심으로 한 비상대책위원회가 정책 대응의 창구 역할을 맡고 있다. 업계 전반에 원안 철회보다 인하 폭 조정과 단계적 적용, 보완책 마련이 현실적인 목표라는 인식이 확산된 결과로 풀이된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의 약가 개편 정책을 전면 거부하기에는 명분이 뚜렷하지 않다"며 "최대한 설득하는 쪽으로 진행하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비대위는 정부안이 그대로 시행될 경우 연간 최대 3조6000억원의 매출이 감소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특히 기등재 제네릭 약가가 53.55% 수준에서 40%대로 낮아진다면, 제조시설을 보유한 제약사 59곳의 연간 매출 손실액은 1조2000억원을 웃돌 것으로 진단한다. 기업당 평균 손실액은 233억원, 평균 영업이익 감소율은 50%를 웃돌 것이란 분석이다.

충격은 중견 제약사에 집중될 공산이 크다. 인하 대상 품목의 75% 이상을 이들 기업이 보유하고 있어서다. 매출 손실률은 중소기업이 가장 크지만, 품목 수와 영업이익 감소 폭을 고려하면 중견기업의 체감 부담이 가장 크다는 평가다.

업계 관계자는 "내수·제네릭 중심 구조를 유지한 중견 제약사가 이번 개편의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대형 제약사와 일부 바이오 기업은 상대적으로 충격이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글로벌 사업 비중이 높거나 신약·바이오시밀러 파이프라인을 확보한 기업은 제네릭 의존도가 낮아 약가 인하 영향이 분산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지난 2012년 약가 개편 시행 이후 제약·바이오 업계 시가총액이 2012년 약 60조원에서 지난해 기준 250조원을 넘어섰다는 점을 들어 약가개편 반대의 명분이 약한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약가개편 이후 결국 산업이 위기를 극복하고 발전을 이어왔다는 점에서다.

정부 역시 건강보험 재정 부담 완화와 신약 개발 장려를 명분으로 개편 추진 의지를 굽히지 않는 상황이다. 이에 업계 내부에서도 집단 행동보다는 각자의 생존 전략이 더 중요해졌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셈이다.

이미 일부 중견 제약사는 약점으로 지적받는 점을 보완하며 사업 구조 재편에 나섰다. 제네릭 비중을 줄이고 신약·개량신약, 바이오 파이프라인 강화에 투자하거나, 코프로모션과 해외 사업을 통해 수익원을 다변화하는 방식이다. 이번 약가 개편이 중견·중소 제약사 체질을 가르는 분기점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국내 제약사와 다국적 제약사 간 온도차도 뚜렷하다. 국내사는 제네릭 약가 인하에 따른 수익성 악화를 우려하며 공동 대응에 나선 반면, 다국적사는 약가 유연계약제 확대와 비용효과성 평가 기준 조정 등 요구 사항이 일부 반영됐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관망하는 분위기다. 일부 바이오 기업 역시 이번 약가 개편의 영향이 크지 않은 만큼 상황을 지켜보는 것으로 파악됐다.

업계에서는 이번 약가 인하와 함께 병행 추진되는 약가유연계약제(이중약가제) 확대가 향후 시장 판도에 또 다른 변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신약뿐 아니라 바이오시밀러와 특허 만료 의약품까지 이중 약가 적용 대상을 넓힌다는 방침이다. 국내 약가가 해외 가격 산정의 기준으로 활용되면서 발생한 이른바 '코리아 패싱'을 완화하겠다는 취지다.

이번 약가유연계약제 확대안을 놓고 약가 결정 과정의 투명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약가유연계약제가 위험분담제와는 다른 제도로, 오히려 협상 과정에서 실질 거래 가격을 낮출 여지도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한 제약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이번 개편안이 각 기업에 주는 영향은 과거와 다를 것"이라며 "각 기업의 포트폴리오에 따라 희비가 갈리는 구조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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