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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디지털 뱅크런' 현실화···SVB 파산에 제도 개선 목소리↑

금융 은행 NW리포트

'디지털 뱅크런' 현실화···SVB 파산에 제도 개선 목소리↑

등록 2023.03.15 17:13

차재서

  기자

모바일뱅킹이 불러온 대형은행 '초고속 파산'디지털화 발맞춰 유동성 관리 체계 강화하고 예금자 보호 한도 금액도 1억까지 상향해야

그래픽=박혜수 기자그래픽=박혜수 기자

총자산 2090억달러(약 276조원)를 보유한 40년 업력의 미국 대형은행이 무너지기까진 이틀도 채 걸리지 않았다. 사회적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은행의 위기 소식을 접한 소비자는 곧장 스마트폰으로 예금을 빼내려 했고, 투자 손실로 이미 체력을 소진한 은행은 이러한 요구에 일일이 부응하지 못한 채 불과 36시간 만에 백기를 들었다.

이렇듯 실리콘밸리은행(SVB)의 파산은 디지털 시대의 이면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미국 정부의 무리한 긴축과 국채 가격 하락이 주된 이유였지만, 결과적으로 언제 어디서든 은행과 거래할 수 있는 편리한 모바일뱅킹 시스템이 기존과 전혀 다른 형태의 사고를 불러왔다.

이를 계기로 국내에서도 은행의 안전장치를 재점검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금융업 환경 변화로 뒤따르는 새로운 위험 요인을 들여다보고 그에 발맞춰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SVB '초고속 파산' 부추긴 모바일뱅킹 시스템

스타트업 특화 은행 SVB의 '초고속 파산'을 부추긴 것은 미국 정부의 무리한 긴축 정책만이 아니었다. 금융소비자의 생활 곳곳에 깊이 뿌리내린 '스마트폰'도 위험을 키우는 데 한몫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SVB의 위기설이 확산된 지난 9일(현지시간) 실리콘밸리 일대에선 황급히 예금을 빼내려는 스타트업 사업가의 모습이 속속 포착됐다고 한다. 돈이 묶여 잔고를 옮기긴 어려웠지만, 당일 금융기관이 문을 닫는 시간까지 이들이 인출을 시도한 액수는 총 420억달러(55조6000억원)로 추산된다.

조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미 연준이 물가 상승을 잡으려 기준금리를 크게 올리자 이 은행을 이용하는 기술기업 상당수가 자금난에 봉착한 게 첫 번째 전조였다.

SVB의 사정도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늘어난 예금을 미 국채와 주택저당증권 등에 투자했는데, 금리 인상과 맞물려 채권 가격이 곤두박질친 탓이다. 더군다나 코로나19 대확산 시기 풀린 유동성이 기술기업에 몰리면서 이 은행의 총예금은 예년보다 크게 증가한(2021년에만 86% 급증) 상태였다.

이 가운데 SVB는 예금 인출 요구에 대응하고자 보유 자산을 매각하면서 큰 손실을 입었고, 이를 감당하지 못해 미 금융당국으로부터 폐쇄 처분을 받기에 이르렀다. 1983년 스타트업 특화은행을 표방하며 문을 연지 40년 만이다.

그래픽=박혜수 기자그래픽=박혜수 기자

금융당국도 은행도 속수무책···'디지털 뱅크런' 우려↑

SVB의 파산은 금융시장에서 이른바 '디지털 뱅크런'이 현실화한 보기 드문 사례다. 디지털 뱅크런은 시장에 충격이 발생할 경우 예금자가 온라인 등 비대면 채널을 활용해 일시에 예금을 인출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소비자의 갑작스런 예금 인출 사태로 여러 은행이 사라지긴 했지만, SVB처럼 1~2일 만에 문 닫을 지경에 처한 금융사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예금보험공사의 금융리스크리뷰(2020년 봄호)를 보면 미국 인디맥은행은 2008년 한 상원의원의 부실 위험 경고에 소비자가 약 13억달러의 예금을 인출하는 사태를 빚었는데, 당시 소요된 시간은 10영업일(6월27일부터 7월10일까지) 정도였다. 같은 시기 위기에 놓인 와초비아 은행도 마찬가지다. 세 차례에 걸쳐 총 333억달러가 빠져나가기까지 보름이 걸렸다.

물론 디지털 뱅크런의 특징이 포착된 곳도 있다. 자금조달 난항으로 뱅크런을 겪은 영국 노던 록 은행이 그 주인공이다. 2007년 9월14일부터 단 3일 만에 전체 예금의 8%에 해당하는 20억파운드가 유출됐는데, 소매예금의 경우 비대면 계좌 예금이 지점 계좌 예금보다 더 크게 감소했다.

디지털 뱅크런이 유독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전개 양상이 전통적 개념의 뱅크런과 다르다는 데 기인한다. 과거엔 소비자가 직접 지점을 찾아야 했다면 지금은 온라인 매체로 대기시간 없이 자금을 옮기는 만큼 그 속도가 기존보다 월등히 빠른 탓이다. 피해 규모도 더 클 수밖에 없다. 예금자의 물리적인 움직임이 보이지 않아 은행이나 금융당국의 즉각적인 대응이 어려워서다.

그래픽=박혜수 기자그래픽=박혜수 기자

"은행 건전성 관리 강화하고 예금자 보호한도 늘려야"

이에 정치권과 업계에선 SVB 사태를 교훈 삼아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초고속 디지털 뱅크런'이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인 만큼 제도를 개선하고 은행의 건전성 점검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국내에서도 인터넷전문은행의 등장과 맞물려 온라인으로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꾸준히 늘고 보다 정교한 안전판이 요구되고 있다. 실제 한국은행의 '2022년 중 국내은행 인터넷뱅킹서비스 이용현황' 자료에서 작년말 국내은행의 인터넷뱅킹 등록자는 2억704만명으로 전년 대비 8.5% 증가했다. 모바일뱅킹 등록자(1억6922만명)가 10.3% 늘어 전체 인터넷뱅킹 이용자수 증가세를 견인했다.

현재 거론되는 대책은 인출 금지 명령을 할 수 있도록 금융당국에 권한을 주거나 은행의 건전성 기준을 높이는 방안 등이다.

먼저 예보 측은 금융리스크리뷰에서 뱅크런 발생 시 영업시간 종료 후 인터넷뱅킹을 통한 자금이체를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영업시간 종료 후 다음 영업 개시까지 비대면 예금 인출을 조율하는 게 골자다.

동시에 예보는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산출 모형과 같은 금융회사 유동성 관리 체계를 수정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온라인을 통해 즉시 해지·인출 가능한 예금에 대해선 높은 기준을 설정해 리스크를 관리하자는 얘기다.

LCR은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30일간 예상되는 순현금유출액 대비 고(高)유동성자산의 비율로, 2008년 금융위기 기간 중 경험한 충격을 하나로 통합한 시나리오 아래 도출된다. 그 중 현금유출액은 유형별 예상 이탈률을 곱해 산출하는데, 소매예금엔 5~10%의 이탈률을 적용한다. 다만 디지털 뱅크런 국면에선 더 많은 예금이 유출될 수 있으니 이탈률을 상향해야 한다고 예보 측은 진단했다.

이소영 예보 조사역은 "금융회사의 부실 징후가 시장에 알려지면 불안 심리로 인해 소비자가 예보제도에 따라 보호되는 소액예금까지 일시에 인출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예금자가 일정 시간을 갖고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간 이뤄진 금융의 디지털화를 반영해 금융사의 유동성 관리 체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온라인을 통해 즉시 해지·인출 가능한 예금에 대해선 높은 이탈률을 적용해 유동성 리스크에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예금자 보호 한도를 늘리는 것도 과제다. 2001년 이후 22년째 5000만원으로 묶여있어서다. 이 가운데 시장에선 물가 인상 등을 반영해 보호 금액을 1억원까지 끌어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일단 금융위원회는 뱅크런 발생 시 금융회사의 예금 전액을 정부가 지급 보장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에 착수한 상태다. 미 정부가 SVB 예금 전액을 지급 보증하겠다고 선언한 것처럼 국내에도 비슷한 제도적 기반이 갖춰졌는지를 점검하고 있다.

이와 관련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은 전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스마트폰과 인터넷뱅킹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은행은 필연적으로 특정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단기간에 대규모의 예금이 인출될 수밖에 없는 근본적 구조"라면서 "금융소비자의 이용 편의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에 대응해 금융당국은 단기간 공포의 디지털 뱅크런이 발생하지 않도록 금융 안정을 최고의 목표로 보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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