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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면적 구속력, 금감원에 무소불위 권력 주겠다는 것”

“편면적 구속력, 금감원에 무소불위 권력 주겠다는 것”

등록 2022.01.11 07:30

수정 2022.01.11 07:38

이수정

,  

임정혁

,  

차재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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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W리포트]이재명 ‘금융 1호 공약’ 점검 “금융사, 소액 분쟁조정 무조건 수용해야”금융권은 ‘술렁’···“재판청구권 침해 우려”“금감원 분쟁조정, 완벽하다 보기 어려워”‘혼연일체 선언’ 고승범·정은보 판단 촉각

사진=박혜수 기자사진=박혜수 기자

금융감독원의 ‘편면적 구속력’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금융 분야 첫 번째 공약으로 금감원 산하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의 결정에 이 권한을 부여하는 공약을 제시하면서다.

금융권 전반에선 ‘금융소비자 보호’라는 기본 취지엔 공감하면서도 감독기관에 과도하게 힘이 쏠리고 회사의 기본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데 근심을 거두지 않으며 향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나아가 금융당국 투톱인 고승범 금융위원장과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이 뜻하지 않게 얼굴을 붉힐 것이란 우려도 내놓는다. 얼음장 같던 금융위와 금감원이 둘의 취임과 맞물려 ‘원 팀’으로 뭉쳤지만, 편면적 구속력을 다르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양쪽의 숙명 때문이다.

◇李 “보험사, 소액 보험금 분쟁 ‘불복’ 말아야”=11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재명 후보 측은 지난 7일 열린금융위원회 출범식에서 “소액 보험금 분쟁에 구속력을 인정해야 한다”며 이 같은 공약을 발표했다.

2000만원 이하의 소액 분쟁에서 보험회사 등이 정당한 사유 없이 금감원의 조정안에 불복할 수 없도록 이른바 편면적 구속력을 도입한다는 게 이번 공약의 골자다.

편면적 구속력은 분쟁조정 발생 시 소비자가 금감원 조정안을 수락하면 금융회사는 무조건 따라야 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같은 조건 아래서 소비자는 조정안에 대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지만, 금융사는 불가능하다는 점도 제도가 지닌 특징 중 하나다.

이는 소송으로 인한 개인 소비자의 피해를 막고 분쟁조정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마련된 개념이다. 현행 금융분쟁조정제도에선 소비자와 금융사가 모두 조정 결정을 수락해야 재판상 화해와 같은 효력이 발생하는데, 어느 한 쪽이 거부해 법정 분쟁으로 이어지면 상대적 약자인 소비자가 불리하다는 데서 출발했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소비자는 분조위 결정만으로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 현재 영국·호주·독일 등에선 금액 제한을 두고 편면적 구속력을 인정한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업계에선 이 후보가 금융분야 첫 공약으로 제시한 사안인 만큼 조만간 여당이 국회에서 이를 공론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관련 내용을 담은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금융소비자보호법 개정안을 법안소위에 올리려할 것이란 관측이다.

이 후보는 “분조위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확보하려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보험뿐 아니라 금융 영역에 편면적 구속력을 확대할 것임을 예고했다.

◇“금융사 기본권 침해···악용 가능성 우려”=다만 문제는 소비자 보호란 긍정적 취지 이면엔 부작용 또한 상당하다는 점이다.

기본권인 ‘재판받을 권리(재판청구권)’를 침해한다는 게 그 첫 번째다. 통상 금감원의 조정안에 이견이 생겼을 때 금융사와 소비자는 소송을 통해 법원의 판단을 받는데 회사 측으로부터 그 기회를 박탈하는 셈이 되는 탓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최상위법인 헌법에 재판청구권이 명시된 이상 ‘편면적 구속력’을 도입하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법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이는 우리보다 먼저 관련 제도를 도입한 주요국과 근본적으로 다른 부분이다. 영국엔 성문 헌법이 없고, 호주엔 성문 헌법에 재판청구권이 명시돼 있지 않다.

게다가 금감원 분조위의 결정이 무결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 사태처럼 사법기관과 감독당국이 판단을 달리한 사례도 있어서다. 2013년 법원은 은행이 키코 사태에 대해 배상할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지만, 6년 뒤인 2019년 금감원은 은행에 피해액의 평균 23%를 배상할 것을 권고했다. 금감원 안팎의 여건, 즉 수장이 누구냐에 따라 결과가 얼마든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를 악용하는 사례도 나올 수 있다. 금융사가 중재안을 거절하지 못한다는 점에 주목해 비슷한 케이스를 찾아 배상을 요구하는 ‘블랙컨슈머’가 속출할 것이라고 업계는 주장한다.

분위기는 조금 다르지만 라임과 디스커버리 등 사모펀드 불완전사태를 거치면서도 금감원의 조정안에 불복한 쪽은 오히려 소비자였다. 투자 손실액의 40~80%를 배상하라는 조정안을 각 금융사가 수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은행이나 BNK부산은행 소비자 일부는 여전히 100% 배상을 요구하며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이 가운데 감독당국의 권한이 지나치게 커지는 데 대한 반감도 상당하다. 형식적으로는 ‘민간 기관’인 금감원에 무소불위의 권력이 주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분쟁조정은 어디까지나 당사자간 합의를 바탕으로 이뤄지는 것”이라며 “아무리 소액이라 할지라도 편면적 구속력을 도입하면 이 제도의 본질을 흐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금감원이 특정 사례를 ‘간접손해’로 인정하면 비슷한 블랙컨슈머를 대거 양산할 수 있다”며 “이에 보험사에서 문제가 될 상품을 아예 팔지 않으면 결국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것”이라고 언급했다.

◇‘편면적 구속력’ 공약에 복잡한 고승범·정은보=이와 함께 ‘편면적 구속력’ 도입 논의 과정에서 금융위와 금감원이 다시 불필요한 감정싸움에 휩싸일 수 있다는 것 역시 걱정스런 부분으로 지목된다. 금감원은 환영하는 반면, 감독당국에 지나치게 많은 권한이 옮겨가는 것을 불편해하는 금융위가 이번에도 앞길을 막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사실 윤석헌 전 금감원장 시절 법제화까지 거론됐던 이 사안이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데는 금융위도 한몫했다. 당시 은성수 전 금융위원장이 “소비자보호 측면에선 이해가 되지만 한편으로는 헌법에서 보장하는 재판상 권리를 박탈하는 게 맞느냐는 의문도 있다”며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한 바 있어서다.

금융위 측이 공식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이는 결국 금감원을 견제하기 위함이란 게 전반적인 시선이다. 앞서 금융위는 사모펀드 판매사 징계, 특별사법경찰(특사경) 운영 등 문제로 금감원과 사사건건 이견을 빚자 예산을 축소하는 등 맞불을 놨다. 또 금융사의 방어권을 확대하는 내용으로 검사·제재 규정을 개정하기도 했다. 제재 과정에서 금융당국과 독립적으로 금융회사의 의견을 청취하고 입장을 대변하는 ‘권익보호관제도’를 명문화한 게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금융위 내부에 별도의 특사경도 꾸렸다.

따라서 이를 놓고는 현 금융당국 수장인 고승범 위원장의 견해도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은보 금감원장의 입장은 다르다. 금융위와 한 몸처럼 움직이겠다고 약속하긴 했으나, 내부 여론도 살펴야 하는 만큼 마냥 금융당국에 동조할 순 없을 것으로 점쳐진다. 이미 정 원장은 취임 이후 검사 시스템 개편의 일환으로 종합검사의 폐지 가능성을 시사했다가 직원으로부터 한 차례 반발을 샀다.

이에 업계에서는 향후 편면적 구속력 도입 논의 과정에서 두 사람이 어떤 태도를 취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악의 경우 두 기관의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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