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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내서 돈 구하자” 은행 대출 창구의 이유 있는 문전성시

[NW리포트|‘묻지마 대출’ 전쟁]“빚내서 돈 구하자” 은행 대출 창구의 이유 있는 문전성시

등록 2020.05.19 10:00

수정 2020.05.21 12:19

정백현

  기자

금리 낮아지며 은행권 대출 접근 여건 낮아져코로나19 여파에 자금 조달 사정 악화도 한몫올 1~4월 대출 증가규모, 예년 2배 수준 폭증세대초월 주식 투자 신드롬도 대출 증가 요인은행권, 신용대출 문턱 낮추며 공격영업 행보

#1. 금융권에 종사하는 40대 중반 A 씨는 최근 은행 세 곳에서 주택담보대출(이하 주담대)로 1억원, 신용대출로 2억원의 대출을 받았다. A 씨는 이 돈으로 서울 근교에 새로 이주할 주택 마련에 사용할 예정이다. 다만 앞으로 빚에 걸린 이자 부담이 만만찮게 생겼다.

#2. 모 대기업 대리인 30대 회사원 C 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한시적 휴직 상태다. C 씨는 생활비 충당과 주식 투자를 위해 3000만원을 은행에서 빌렸다. C 씨는 “주식 투자만 성공한다면 빚은 금방 갚게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3. 기존에 1억8000만원의 전세보증금대출과 2000만원 한도 마이너스통장을 갖고 있던 30대 회사원 B 씨는 최근 한 은행에서 500만원의 신용대출을 또 받았다. 지출이 유난히 많은 5월을 버티기 위해서다. B 씨는 “요즘 은행이 아니면 쉽게 돈 구할 곳이 없다”고 말했다.

요즘 은행 대출을 통해 돈을 구했다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면 은행에서 새로 대출 받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다. 지난 4월 초 증시 폭락장 속에서 ‘묻지마 주식투자’가 유행을 탔던 것처럼 최근에는 ‘묻지마 대출’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기업들은 코로나19로 인해 국내외 판로가 막히면서 은행 대출을 자금 운영의 지지대로 삼는 이른바 ‘버티기 대출’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비슷한 시기 가계대출도 꾸준히 늘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 봐야 할 점이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은행권 가계대출의 증가 규모는 27조4000억원이다. 4월 말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915조7000억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은행권 가계대출이 11조원 늘어난 것을 감안한다면 증가 규모가 1년 새 2.5배 가까이 늘어났다. 특히 최근 4년간 1~4월 대출 증가 규모가 줄곧 20조원 미만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올해 1~4월의 가계대출 폭증세는 상당하다고 볼 수 있다.

은행권 대출 사례가 많아진 배경으로는 낮아진 기준금리를 들 수 있다. 지난 3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5%포인트 내린 연 0.75%로 결정하면서 은행이 책정하는 대출 금리도 낮아졌다. 이에 시중 소비자들이 은행 대출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

무엇보다 올해 가계대출 증가 폭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담대를 주목할 만하다. 지난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연초 4개월간 주담대 증가 규모는 10조원 안팎에 그쳤다. 그러나 올해는 같은 기간 주담대가 무려 20조원 이상 늘었다.

주담대가 최근 몇 년간의 추세와 달리 폭증한 것 역시 금리 하락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기준금리와 함께 주담대 결정 기준이 되는 자금조달비용지수(코픽스)도 꾸준히 내려가면서 주담대 금리도 내려갔다. 당연히 과거보다 소비자들의 접근이 용이해졌다.

대출 받은 사람들이 은행에서 빌린 돈으로 무엇을 했느냐도 관심거리다. 대부분은 주택 거래에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한은은 지난 2월 한 달간 7조8000억원의 주담대가 늘어난 것에 대해 “주택거래 수요 증가에 따른 영향”이라고 해석한 바 있다.

이른바 ‘동학개미운동’으로 일컬어지던 대규모 주식 투자 신드롬도 대출 증가의 한 요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다만 꾸준한 수요를 보이는 주택거래와 달리 주식 투자는 일시적 현상으로 그치는 바가 많아 장기적 증가 요인으로 보기 어렵다.

코로나19로 인해 수입이 줄어든 이들에게는 은행 대출이 한줄기 빛이 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소상공인과 영세 자영업자들은 소비 위축으로 매출이 제로에 가까워진 탓에 은행 대출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어쨌든 금리 인하라는 이슈 덕에 금융 소비자들이 대출 상품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면서 은행들도 소비자 유인을 위한 적극적 영업에 나서고 있다.

다만 은행의 상황은 소비자들의 상황과 다소 다르다. 소비자들이 낮아진 금리에 일부분 미소를 짓는 것과 달리 은행은 그야말로 울면서 겨자를 먹는 심정으로 대출 영업을 진행하고 있다. 금리가 낮아진 탓에 대출이자로 이익을 벌어도 크게 티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은행권은 일제히 신용대출의 문턱을 완화하면서 대출 영업의 폭을 넓히고 있다. 우리은행은 개인 신용대출 심사에 ‘자산평가지수’를 신설해 신고소득이 적은 개인사업자나 은퇴자 등에 대출이 가능하도록 내부 정책을 바꿨다.

농협은행과 하나은행은 금융거래 정보가 취약한 사회초년생들에 대출을 공급하기 위해 비금융 분야 이용 정보를 활용해 신용평가에 나서기로 했다. 예를 들면 휴대전화 이용 패턴 등을 평가 기준으로 사용하는 셈이다.

은행이 이처럼 적극적으로 대출 영업에 나서는 배경은 간단하다. 과거보다 대출이자로 벌어들이는 이익의 규모가 줄어든 만큼 많이 팔아서 이익을 조금이나마 키우려는 ‘박리다매’ 전략이다.

은행들의 박리다매 전략은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한 분기 만에 올해 연간 대출 성장률 목표치를 넘겼기 때문이다. 국내 5대 은행의 1~4월 누적 원화대출 잔액은 1189조6815억원으로 지난해 말 기간보다 4.35% 늘어났다.

한 은행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의 영향으로 돈이 뜻대로 돌지 않은 탓에 자금 조달을 원하는 개인 고객들이 은행 대출 창구로 다수 몰려들고 있다”면서 “다만 가계대출이 늘어난다고 해도 금리 여건상 은행이 벌어들일 수 있는 이익은 한정적”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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