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혜진 “‘남자가 사랑할 때’ 속 ‘호정’ 자존심 지켜주고 싶었다”

[인터뷰] 한혜진 “‘남자가 사랑할 때’ 속 ‘호정’ 자존심 지켜주고 싶었다”

등록 2014.02.03 10:10

김재범

  기자

사진 = 김동민 기자사진 = 김동민 기자

영화 ‘26년’을 찍을 때 만났던 기억이 난다. 사실 한혜진은 그저 인형처럼 예쁜 그런 외모의 배우로만 알고 있었다. 얼굴 생김새가 결코 현실적이지 못하기에 배우로서의 매력은 오히려 떨어진다는 주관적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결코 연기력이 떨어지는 그런 배우는 아니지만 그 외모가 한혜진의 능력치를 갉아먹는 약점은 아닐까라고 말이다. 하지만 ‘26년’을 보고 내 판단의 잘못을 느꼈다. 자신의 역할을 분명히 알았다. 더욱이 그는 자신을 작품 속에서 감추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몇 년 뒤 황정민과 함께 멜로 영화 한 편을 찍는단 기사를 접했다. 멜로란 장르에 눈길이 쏠렸다. 제목 자체도 ‘남자가 사랑할 때’란다. 황정민이 사랑하는 여인이 한혜진이다. 인생 막장에 다다른 남녀의 사랑이란 진부함에 한숨이 나온다. 그런데 극장에서 나오면서 두 남녀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진부함이 있지만 진실함이 더욱 강했다. 한혜진에게 물었다. 관객들이 느끼는 그 진실함이 무엇인지.

개봉 직후 만난 한혜진은 참 밝은 느낌이었다. 8세 연하의 축구스타 기성용과의 결혼으로 장안의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결혼 직후 남편의 트위터 글 파문이 축구계를 들썩여 놓은 바 있다. 갓 신혼에 접어든 그에게 그것도 타국에서 이 같은 사건을 접하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두 사람이 신접살림을 차린 영국의 도시는 한국사람이 없는 시골이란다. 속앓이가 보통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때 어땠나’라고 돌직구를 날렸다. 그냥 웃는다.

“살다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고 하잖아요. 이미 지나간 일이고, 내가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할 것은 아닌 것 같아요. 남편도 많이 힘들어 했고, 또 반성도 했구요. 그냥 나도 그렇고 남편도 그렇고 각자의 위치에서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게 주변 사람들에게 보답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남편이 그렇게 할 수 있게 옆에서 지켜봐 주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구요.”

사진 = 김동민 기자사진 = 김동민 기자

그렇게 한혜진은 바라보는 사랑으로 남편의 곁을 지켜왔고 지켜갈 것이다. 그런 감정은 ‘남자가 사랑할 때’의 호정과는 좀 상반된 느낌이었다. 이 영화는 한혜진이 결혼 직전 국내에서 찍은 마지막 영화다. 때문에 시나리오를 받고 색다른 감정이 들었단다. 아니 사실 이 영화의 얘기에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고.

“호정이란 인물에 대해 이해를 할 수 있을까란 두려움이 컸었죠. 데뷔 후 제대로 된 첫 멜로 영화였어요. 더 나이가 들면 이런 영화, 이런 배역이 올까란 생각에 덥썩 하겠다고 했죠. 하지만 결정을 하고 나선 호정이란 인물을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었어요. 자신이 처한 주변 상황 때문에 ‘사랑’을 할 수도 받아 들일 수도 없는 여자에요. 그런데 사랑을 하라니. 그럼 호정이 그런 상황 속에서 버틸 수밖에 없는 어떤 자존심마저 꺾어야 하나? 그것도 아닌 것 같았죠. 정말 힘들었어요.”

결국 ‘남자가 사랑할 때’는 영화적인 어떤 기교나 장치를 철저히 배재한 채 배우의 감정으로만 굴곡을 만들어 내야 했다. 무대포처럼 자신에게 달려는 건달 태일(황정민)의 대시에 호정이 단계적으로 마음을 열어가는 모습이 오롯이 스크린에 살아나고 그것을 관객들이 느껴야 했다.

한혜진은 “한동욱 감독님에게 단 한 가지만 지켜달라 했다”면서 “호정의 자존심만큼은 꼭 지켜달라고 했다. 같은 여자로서 멜로란 장르안에서 누구 하나가 꺾어지는 것은 결코 사랑이 아니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태일과 호정의 주고받음이 이 영화에서 말하는 사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사진 = 김동민 기자사진 = 김동민 기자

이 영화, 제목이 ‘남자가 사랑할 때’이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다른 생각이 들 법하다. ‘여자가 사랑한 후에’란 느낌이 강하다. 그만큼 이 영화는 태일보단 호정의 감정이 중요하고 그의 감정선과 동선 자체가 스토리의 맥이라고 봐도 된다. 남자의 사랑 얘기가 아니다. 여자의 삶에 한 남자가 ‘쓱’하고 들어왔다가 ‘쓱’하고 빠져나가는 그런 느낌이다.

“토씨하나 안 틀리고 감독님이 시나리오 대본 리딩 당시 강조했던 부분이에요. 남자 영화가 절대 아니라고. 호정의 삶에 태일이 어느 날 들어왔고, 또 어느 날 빠져 나가는 얘기라고. 그 얘기를 듣고 나 혼자 고민하던 부분이 어느 정도 해결이 됐었죠. 황정민 선배님의 호흡에 내 호흡을 따라가는 부분과 내 호흡에 황 선배님이 따라오는 부분으로 크게 나눠질 거에요. 물론 그게 태일과 호정이 주고받는 사랑의 감정이 됐구요.”

그는 이 영화를 찍으며 상대 배우인 황정민에게 크게 고마움을 전했다. 드라마에서 주로 활동한 한혜진은 아직도 영화 현장이 낯설기만 하단다. 때문에 호흡 자체가 틀린 영화 현장에서 감정을 틀어쥐고 가는 법에 조금은 서툴단 속내를 전했다. 이번 영화 촬영에선 황정민이 현장에서 틀어 놓은 가수 김민기의 ‘아름다운 사람’이란 곡이 그 서툰 방법을 해결해 줬단다. 또한 황정민의 충고가 그에게 다른 마음가짐을 갖게 했다고.

 한혜진 “‘남자가 사랑할 때’ 속 ‘호정’ 자존심 지켜주고 싶었다” 기사의 사진

“전 드라마를 할 때 되도록 작가님이 쓴 대사를 토씨 하나 안 틀리게 하려고 노력해요. 그런데 황 선배님이 그러더라구요. 감독님이 오케이 사인을 내셨는데 내게 ‘더 잘할 수 있는데 한 번 더 해보겠단 소리를 왜 안 해’라고요. 내가 너무 안일했나. 아니면 내가 너무 갈증이 부족했나. 그것도 아니면 집념이 부족한가. 별 생각이 다 들었죠. 그 이후부턴 꼭 감독님 오케이 사인이 나와도 꼭 ‘다시 해보겠단’ 말을 많이 했어요. 나부터가 달라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의 말을 듣고 있자면 황정민의 구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듯싶다. 하지만 한혜진은 격하게 손사래를 쳤다. 온통 남자들만 바글거리는 현장에서 제대로 공주 대접을 받았다고. 그는 “날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몰라서 감독님부터 스태프 그리고 배우들 모두가 쩔쩔맸다”면서 “특히 한 장면을 놓곤 감독님부터 제작자 프로듀서 촬영 스태프 들이 머리를 맞대고 ‘이럴 땐 이게 맞나’라며 상의를 하는 데 얼마나 웃음이 나던지”라며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아마도 유부남은 황정민 선배 한 명 뿐이었을 거에요. 공교롭게도 영화에 관련된 거의 모든 스태프가 연애 한 번 여자 친구도 없는 숫(?)총각들이었다니까요. 그러니 그런 분들이 멜로를 찍는데 얼마나 고민을 많이 했겠어요. 한 장면 찍고 나선 ‘호정아 이럴 땐 여자들이 이런 감정이 진짜 드냐’라며 질문에 질문을 반복하고. 진짜 한 장면 한 장면 거의 명품 수공을 하듯 만들었다니까요.(웃음)”

사진 = 김동민 기자사진 = 김동민 기자

그렇게 사랑에 서툰 감독과 스태프들도 영화 속 최고 하이라이트 장면에선 한혜진, 아니 호정의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다고. 한혜진은 “내가 오열하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에선 사실 어떤 디렉션도 받지 않았다. 그냥 ‘우리 영화 최고 하이라이트다. 그 감정을 따라가 봐라’란 말만 해주셨다”면서 “정말 자연스럽게 그런 눈물이 나오더라. 감독님이 이 한 장면을 찍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단 생각이 이해가 됐다”고 조용히 말했다.

현재 SBS 드라마 ‘따뜻한 말 한마디’에서 불륜녀로 출연 중이다. 사랑에 관해선 정말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고 있는 듯했다. 한혜진은 농담처럼 “에이, 난 이래봬도 사랑에 대해선 심플한 사람이다. 다 알고 있지 않나”라며 웃는다.

사진 = 김동민 기자사진 = 김동민 기자

2월 중순 쯤 남편 기성용이 있는 영국으로 다시 건너간다는 한혜진. ‘남자가 사랑할 때’가 언제인지 알고 있는 사랑스런 여인이었다. 그리고 ‘여자가 사랑한 후에’의 모습이 어떨지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아니 그는 지금 열렬히 사랑 중이다. 멋진 남자와. 그래서 한혜진의 ‘남자가 사랑할 때’ 속에서 그 진실함이 묻어나왔나 보다.

김재범 기자 cine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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